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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과 민추협 그리고 '의리'의 돌쇠 황명수
황명수, 생선회로 YS와 신의 키워
1984년 민추협 유일 원내 인사
2014년 08월 31일 (일) 정세운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서청원은 1984년 김영삼(YS)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정치경험을 쌓았다.”

한 대형언론사가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의 이력을 위와 같이 기술하면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이를 인용하고 있다.

맞는 말일까? 시곗바늘을 1984년을 되돌려보자. 그 해 5월 18일, YS 단식투쟁 1주년을 기해 외교구락부에서 ‘민주화 투쟁 선언’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민추협은 발족을 대내외에 알렸다. 민추협 가입 인사 대부분은 정치규제에 묶여 있었다.

민추협 결성과 관련, YS는 자서전을 통해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민추협을 만들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전두환 정권의 핍박으로 곤욕을 치르거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를 만나서 민추협 동참서명을 받으면 그 사람은 당장 어딘가로 불려갔다. 서명하기로 약속하고 해외로 나간 인물도 있었다. 내가 약속을 하고 찾아갔는데 어디론가 나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민추협 발기인 서명용지를 보면 먹으로 지운 명단이 상당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서명용지가 걸레가 되다시피 했을까.”

현역의원 민추협 가입, ‘상상할 수 없는 일’

한마디로 전두환 정권은 민추협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민추협 활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서울 종로일대의 건물주들에게 사무실을 주지 말라고 협박을 할 정도.

서청원 최고위원은 1981년 11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 온 정치인. 1984년 민추협 결성 당시 서 최고위원은 민한당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이 민추협에 가입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예로, 그 해 말 민추협이 1985년 12대 총선 참여를 선언하자 민한당 국회의원이었던 김현규 홍사덕은 탈당을 계획했다. 신당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알아챈 안기부는 이들을 연행, 3일 간 모진 고문을 했다.

서 최고위원은 1985년 12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상도동과 인연을 맺고 민추협과 YS 사조직인 민주산악회에서 활동했다. 때문에 서 최고위원이 1984년 민추협 활동을 했다는 것은 억측이다.

YS 복심으로 불렸던 김덕룡 전 의원은 최근 필자와 만나 “민추협 결성 당시 현역의원이 들어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84년 말 총선 참여를 결정하고서야 현역의원들이 눈을 민추협으로 돌렸다”고 회고했다.

   
▲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YS와 인연은 1985년 이후다.ⓒ뉴시스

YS, "정치는 신의, 상징적 인물 황명수”

그렇다면 민추협 결성 당시 현역 의원은 한 명도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 시절 민한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11대 원내에 들어온 황명수. 황명수는 과거 유진산 김의택 이민우 유치송 등과 함께 진산계의 핵심이었다.

어떻게 보면 YS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YS 가택연금 시절부터 거의 매일 상도동으로 위로 전화를 하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황명수는 안기부에 끌려가 전화를 금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YS와 황명수가 가까워진 일화가 있다. YS 1차 연금 중이던 1981년 봄.

황명수는 YS가 평소 생선회를 즐겼다는 생각을 했다. 연금을 당해 생선회를 못 먹겠구나라고 생각해, 회 5인분을 주문한 뒤 상도동에 전화를 걸어 ‘점심을 들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상도동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이 ‘혹시 비밀문서를 감춰놓은 것 아니냐’며 회를 다 휘저어놓았다.

결국 가져간 회를 먹을 수 없게 되자 황명수는 ‘이런 놈들하고 무슨 정치를 하냐’고 탄식했다. 그런 후 황명수는 거의 매일 YS에게 전화를 걸어 “민의를 역행하는 전두환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얼마 안가 망할테니 몸을 추슬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명수는 1984년 5월 18일 민추협 결성 전부터 가입했다. 하지만 정작 발족 때는 불허됐다. 안기부의 방해가 아니라 YS가 의도적으로 황명수를 배제했다. YS는 황명수에게 “원내는 당신 하나다. 민추협에 들어왔다가 피해를 당하면 원내 소식을 알 수 없다. 전략적 차원에서 당신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만류했다. 그러다가 그 해 가을 YS는 황명수를 불러 “국회의원이 없으니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민추협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며 가입을 허락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 YS와 의리를 쌓아왔던 황명수. YS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정치를 하며 가장 존중하는 것은 의리와 신의다. 그것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 황명수다”고 말했다.
때문에 문민정부 시절, YS는 국회의장으로 황명수를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부속실에 근무했던 김모 비서관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YS는 청와대 들어와서도 황명수 칭찬을 계속했다. 입버릇처럼 ‘저런 사람이 입법부 수장을 한 번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황명수를 차기 국회의장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15대 총선에서 황명수가 낙선해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요즘 의리하면 생각하는 사람이 탤런트 김보성이라고 한다.  필자는 의리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황명수다.


 

정세운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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