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영화이야기>영화 〈조선마술사〉는 한겨울밤의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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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영화이야기>영화 〈조선마술사〉는 한겨울밤의 소나기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5.12.30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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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로 다시 번지점프를 하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조선마술사> 포스터

어언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해가 목전인 동지섣달의 극장가에는 연말연시의 훈훈함을 기하기 위해 의례히 가족 단위를 타겟팅한 감동극화나 애니메이션, 또는 연인 간의 달콤한 사랑을 꿈꾸는 로맨틱 멜로들이 득세하기 나름이다.

이러한 세모 끝의 풍경을 반영하듯 영화 <조선마술사> 는 두 젊은 청춘 남녀의 애틋하고도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한편의 동양화 화폭처럼 수놓으며, 한국영화계의 2015년도 마지막 날을 야심차게 장식하고자 한 듯하다.

자신의 전작들에서 이미 등장인물의 세밀한 감정 투입과 영화 전체의 미장센을 잡아내는 데에 특출한 내공을 자랑한 김대승 감독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여심을 사로잡는 훈남으로 잘 성장한 유승호와 <응답하라 1994> 로 상종가를 치고 오랜만에 스크린에 나온 고아라와의 앙상블로 조선시대의 따사로운 멜로를 구현해 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감독은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 의 그 아름답고도 슬픈 선율의 남녀 간 감정선을 시대극 <혈의 누>, <후궁 : 제왕의 첩> 등에서 선보였던 고혹적 영상미를 통해 애절하고도 섬세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승부수를 띄운다.

얼핏 보면 마치 조선시대 배경의 <소나기> 를 연상시키는,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의 며칠간 사랑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타이타닉> 처럼 신분을 초월한 애틋하고도 진한 여운의 서정을 이끌어 내며 관객과 호흡하고자 하는 듯하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노란색과 빨간색 질감의 원색적 톤 속에서 셋트와 의상이 뿜어내는 화려하고도 몽환적인 미장센은 그러한 서정적 멜로가 일순 빛을 발하게끔 하는 감독의 차별화된 무기이며,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조선시대 멜로는 인물들이 얽히고 설킨 사연의 갈등 구조를 적절히 묘사하면서, 마술이 주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전달하는 데에 현격한 한계를 노정한다.
이른바 ‘환술’ 로 불리웠던 마술은 멜로를 이끌어 가는 양념 역할에 그치기만 할 뿐, 그 장치가 주는 특유의 기대감과는 유리된 무척이나 밋밋한 스토리 구조가 120여 분간의 러닝 타임을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데에 오히려 피곤한 짐으로 전락시킨다.

더불어 때로는 과하게 설정된 비현실적 판타지 요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조선시대의 동화로 착각하게끔 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흡사 번지점프를 하듯) 절벽에서 떨어지며 종국에 사라진 두 남녀 주인공의 행방을 유추케 하는 마지막 엔딩 장면이 사뭇 허허로운 이유이다.

그러한 와중에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이끄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곽도원과 손병호의 뭔가 미진한 존재감은 그 허전함을 배가시킨다.

동시에 어느 영화에서건 소금 같이 늘 맡은 몫을 다 하는 박철민은 사기스러우나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자신의 역할을 계속 수행한다. 성공작 <시라노 연애조작단> 의 기시감을 여실히 불러일으키는 이번 배역의 이미지와 연기 스펙트럼이 이대로 고착화 될까 우려될 정도다.

군 제대 후 명실공히 성인 남자로 완벽해진 유승호가 택한 첫 스크린 복귀작의 카메라는 그의 미모에 올곧이 매달리지만, 그만큼 다소 늘어난 남자 주인공의 연기 폭을 받쳐주어야 하는 상대역 고아라의 연기력과 대사 처리는 시종일관 개선의 여지를 남긴다.
그나마 의동생에게 품은 연정을 애써 감추며 스러지는 조윤희의 맹인 연기가 차라리 애잔하다.

비록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정통 사극은 아니나, <사도> 를 제외한 <상의원>, <순수의 시대>, <간신>, <협녀> 그리고 <도리화가> 이후 계속해서 맥을 못 추고 있는 한국영화의 시대극 장르와 그 궤를 같이 할까 안쓰럽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중심 무대로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인 공간인 ‘물랑루(勿朗樓)’ 의 작명이야 관객을 의식한 감독의 애교 섞인 언어적 유희로 너그러이 치부한다 쳐도, 어감 때문인지 장르는 다르지만 마치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2001년 작 <비독> 처럼 색채와 미장센만 잔뜩 강조된 프랑스 영화 한편을 본 듯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한겨울을 장식할 훈훈한 해피엔딩의 <소나기> 를 선보이고 싶었던 감독의 소망은 조선시대의 번지점프만 휘날린 채, 미려한 색채의 셋트를 완성한 선에서 만족해야 할 듯싶다.

특별출연을 했던 전작 <도리화가> 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배우 진희경이 거의 같은 자태로 또다시 짧은 우정출연을 선보인다.
특정 여배우의 비슷한 카메오에 따른 징크스가 생길 지도 모르겠다. 

 ·한양대학교 정치학 박사
·트리즈 뉴스 전문기자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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