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는 축구와 비슷하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겨뤄야 하고, 승자와 패자도 생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점은, ‘사람’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축구 팬들은 잔디 위에서 뛰는 ‘사람’에게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고,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영하고 미래를 건다. 다른 듯 닮은 정치계와 축구계의 ‘사람’을 비교해 본다.
'왕의 남자' 이재오와 로이 킨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에게는 ‘왕의 남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명박 前 대통령(MB)을 만든 일등공신이자, MB의 ‘오른팔’이었기 때문이다. MB는 제18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이 의원이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로 복귀하자마자 특임장관으로 임명할 정도로 신임을 보냈고, 이 의원 역시 아직까지도 MB를 ‘친형님’처럼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로이 킨은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절대적 신임을 받던 선수였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등 불세출의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팀이었음에도,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심장은 킨”이라며 “나에게 그는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일꾼이었다”고 극찬했다. MB에게 이 의원이 있었다면, 퍼거슨에게는 킨이 있었다.
이처럼 이들이 큰 믿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 ‘할 말은 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여당 속 야당’이라는 별명처럼, 이 의원의 비판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야당보다 여당의 비판에 더 날을 세울 때가 많다. 그는 지난해 11월 <시사오늘>과 가진 인터뷰에서 “신한국당에 들어갈 때 대한민국의 정치가 바로 서려면 보수가 바로 서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수를 위해 진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수를 위해 보수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이 의원이 추구하는 방향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이재오 의원이 야당과 같은 강도로 우리 당을 비판하는 것이 섭섭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킨 역시 ‘무차별적 비판’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 상대 선수와의 다툼은 물론, 경기 도중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동료 선수들에게 욕설을 섞어가며 질책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한때 킨과 한 팀에서 뛰었단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은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 눈을 부라리며 뛰어오는 킨의 모습이 ‘악마’처럼 보였다고 고백했다.
2005년에는 자팀 방송국인
한없이 터프해 보이지만, 이미지와 달리 두 사람 모두 매우 명석한 두뇌를 갖췄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 의원은 이른바 ‘민주화 투사’ 출신이면서도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고, MB정권에서는 2인자 역할을 했다. MB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때가 안 오면 때를 기다리는 게 정치인”이라며 “지금은 자중하고 자애하면서 침묵하고 있을 때”라고 했다. 권력과 맞서면서 민주화를 이뤄내고, 권력의 편에서 2인자 자리에 올랐다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하며 침묵한다는 것은 그가 투쟁심과 영리함을 고루 갖췄다는 증거다. 민중당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 의원과 정치 역정을 함께하고 있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이 의원을 ‘정치적 지략이 많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킨 역시 매우 영리한 선수였다. 축구 팬들의 뇌리에는 강한 태클과 터프한 수비만 남아 있지만, 사실 킨의 최대 강점은 공을 소유할 줄 아는 기술과 정확한 패스 능력, 넓은 시야, 그리고 경기 흐름을 읽는 눈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플레이 메이커였던 킨은 경기 완급을 조절하는 데 능했으며, 언제 어디로 어떻게 패스하고 공격할지에 대한 탁월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다. 선수 시절 킨이 ‘미래의 명감독 후보’로 항상 거론됐던 이유는 주장으로서의 리더십과 함께 ‘축구를 잘 아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1인자가 되기에는 2%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 의원은 5선 의원이자 MB정권 시절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던 ‘성공한 정치인’이지만, 대권 후보와는 거리가 있다. ‘MB의 남자’라는 꼬리표에다 ‘싸움닭’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까닭이다. MB를 1인자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이미지 소모가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킨도 지도자로서는 실패를 맛봤다. 2부 리그에 속했던 선더랜드 감독을 맡아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키는 등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팀을 아우르고 선수들을 다독이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의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주변 집기들을 부쉈으며, 선수들을 군대 캠프에 보내는 등 ‘스파르타식’ 운영으로 불만을 샀던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선더랜드 시절에는 킨이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선수단이 축하 파티를 열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현재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일하고 있는 킨은, 감독 시절과 달리 코치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1인자보다는 2인자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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