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FC 바르셀로나가 위대한 팀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강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공격은 수비에서, 수비는 공격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바르셀로나는 ‘정통 토털 풋볼’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해냈고, 수비진에서부터 시작하는 후방 공격 전개와 공격진에서부터 시작하는 전방 압박을 유행시켰다.
그러나 22명이 105m × 68m에서 공 하나를 두고 뛰는 축구에서 전술 싸움은 ‘가위바위보’나 마찬가지다. 바르셀로나가 몰고 온 후방 공격 전개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감독들은 ‘가위’를 무찌르기 위한 ‘바위’를 찾기 위해 골몰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특유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사장된 것 같았던 ‘롱볼 축구’가 대안으로 떠오른 모양새다.
후방에서부터 짧은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방식의 장점은 보다 확률 높은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을 계속 소유하면서 능동적으로 공격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므로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 많은 팀들이 ‘바르셀로나식’ 패스 축구를 도입한 이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수비 입장에서는 상대의 후방 공격 전개를 자유롭게 내버려둘 경우 경기 내내 수세적인 입장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수비 상황에 놓인 팀들은 상대의 공격 전개를 방해하기 위해 압박의 시작점을 높였고, 자연스럽게 현대 축구는 강한 전방 압박으로 후방 공격 전개를 방해함과 동시에 상대의 전방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쪽으로 진행됐다. 수비수에게 뛰어난 기술과 패스 능력을, 공격수에게 활발한 수비 가담을 요구하게 된 배경이다.
문제는 뛰어난 수비력과 기술,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능력을 모두 갖춘 수비수가 귀하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수비수들은 상대의 전방 압박에 당황한 나머지 공을 빼앗기거나 엉뚱한 곳으로 차내 소유권을 잃었고,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들이 롱볼 축구를 다시 꺼내든 원인이 여기 있다. 롱볼 축구는 짧은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방식에 비해 수비수들에게 기술을 덜 요구하면서, 높이 올라온 상대의 압박 라인 배후 공간을 공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지난달 17일 펼쳐졌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경기가 좋은 예다.
리버풀은 ‘게겐프레싱’의 대명사와 같은 위르겐 클롭 감독 부임 후 압박 라인을 높여 강한 전방 압박을 구사하는 팀으로 재탄생했다. 이 경기에서도 리버풀은 크리스티안 벤테케, 로베르토 피르미누, 조던 아이브, 제임스 밀너 등에게 강한 전방 압박을 요구했고, 맨유 수비진을 고난에 빠뜨렸다.
반면 맨유는 리버풀의 전방 압박을 기술 축구로 벗겨내기보다는 194cm의 거구인 마루앙 펠라이니의 높이를 활용해 한 번에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는 쪽을 택했다. 루이 반 할 감독은 강한 전방 압박을 피해 한 번에 리버풀 진영으로 패스를 넘기는 롱볼 축구를 구사했고, 리버풀의 최대 장점을 무력화했다. 올 시즌 경기당 평균 56%의 점유율과 83%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는 맨유는 리버풀 전에서 47%의 점유율과 72.9%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부정확한 롱볼 축구’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롱볼 축구는 정교한 공격 전개를 구사하는 팀들에게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약점 때문에 힘을 잃었다. 바르셀로나식 패스 축구는 강한 전방 압박 축구에 약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전방 압박 축구는 후방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대신 ‘힘과 높이’로 승부하는 롱볼 축구에 약한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역사가 반복되듯, 축구 전술도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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