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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 "운동권 비판여론, 만들어진 것"
서영교 국회의원
"더민주 여성위 '이대 라인'? 130년이라는 긴 전통 때문"
"전두환 밑에서 출세 싫어 시민운동가 변신…주부학교 교사"
"朴대통령, 그만한 인물 없다 생각했지만…포용 리더십 부족"
2016년 03월 26일 (토) 오지혜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올해 초만 해도 낯선 정치용어에 불과했던 ‘필리버스터’가 지난달 정치권에서 최고 흥행요소로 떠올랐다. 일명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국회 단상에 선 야당 의원들은 모두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도 시원한 입담으로 '센 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실 서 의원은 야당 출입기자라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대부분 기자들의 '눈'이 많은 곳이면 유난히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데, 서 의원은 수많은 동료를 앞에 서서 휴대폰 요금 등 생활정보까지 주고받는다. 털털한 말투에 '보름달' 웃음. 내숭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다.

<시사오늘>은 지난 22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선거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길거리 유세를 마치고 정신없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많이 기다렸죠?" 보름달 웃음이다. "근데 이거 뺄까? 차는 게 나아요?" 유세용 어깨띠를 만지작거리며 던진 털털한 한마디와 함께 인터뷰는 시작됐다.

   
▲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 시사오늘

"필리버스터 중단, 삼일절에 결정…아쉬웠다"

-필리버스터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센 언니'라는 별명도 얻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족들이 테러방지법을 막는 필리버스터인데 어떻게 안 하냐고 성화였다. 결국 25번째로 신청했다. 필리버스터를 준비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은 소변 문제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7시간 동안 화장실 안 가고 연설하는데 버틸 수 있더라. 물론 그 다음 날부터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골반이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언제 국회의사당에 7시간이나 서서 연설을 쏟아낼 수 있겠나. 역사적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테러방지법에 대해 자세히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내게도 큰 관심이 쏟아졌다. 유튜브에 있는 내 필리버스터 동영상 조회수도 엄청나더라. '센 언니' '걸크러쉬'라는 별명도 생겨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해외에서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도 실렸다. "

-하지만 당 지도부 결정으로 중단됐다.

"아쉬웠다. 중단하기로 결정한 날이 하필 삼일절이었다. 하루 더 있다가 결정해도 됐을텐데 싶더라. 또 어차피 그만둬야 한다면 국민들에게도 알릴 시간도 충분히 가졌으면 했다. 그런데 통보되듯이 중단되니까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 입장에선 열정이 식게 된다. 참 안타까운 게, 예전엔 정치인이 소신있게 밀어붙이면 그 소신을 봐줬는데, 이제는 종편에서 끊임없이 꼬집고 끄집어내린다. 정청래 의원의 경우도 그렇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려고 하면 언론에서 너무 욕을 하니까 아쉽다."  

"운동권, 죽음 각오했던 사람들…의정활동도 우수"

서 의원은 어릴 적 남자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말괄량이로 자랐다. 이런 환경 때문에 학창시절 총학생회장을 도맡을 수 있었다고 했다. 혜원여고 총학생회장을 맡았을 때는 여자 후배들이 교실로 찾아와 초콜렛을 건네줬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정작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총학생회 등 운동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대학에 들어가면 운동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단체 미팅과 소개팅에 바쁘게 지냈다. 마음이 바뀐 것은 2학년 때 교내에서 마주친 한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학교 학생회관 꼭대기에서 여학생 한 명이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전단지를 뿌렸다. 교내는 금방 아수라장이 됐다. 사복경찰이 그 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렸다. 순간, 지나가던 학생들이 형사들과 몸싸움을 하더라. 나도 애초의 다짐 같은 건 잊어버리고 경찰들과 맞붙었다. 그 이후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가더라. 그렇게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완전히 생활이 바뀌었다. 4학년 때는 단대 회장을 맡았는데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학생이 연초에 연행됐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반드시 채워야 했지만, 총학을 맡으면 구속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다. 두려웠다. 막상 결정을 내린 후에는 '절대 쉽게 잡히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서 의원은 총학생회장으로 학내 수업거부 투쟁을 이끌었다. 5·18 광주학살 폭로 행사와 건국대농성 등을 통해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이에 수배령이 떨어져 그는 치안본부, 서대문구 구치소에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요새 운동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많다. 

"그때 누가 운동권 하고 싶었겠나. 감옥에 가는 1순위였는데. 나도 부모님이 가난한 집안 사정에도 대학 보내려고 헌신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보면서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시 운동권은 죽음을 각오했던 사람들이라는 거다. 요즘 운동권에 대한 비판여론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특정 권력을 가진다고 생각해서 그 자리를 뺏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인 우상호, 이인영 의원의 의정활동을 보면 평가가 정말 좋다. 나 역시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최다관왕이 됐다. 물론 지금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운동권 시절보다 더 부지런하고 헌신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민주 '이대 라인'? 130년이라는 긴 전통 때문"

   
▲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 시사오늘

-이화여대 시절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그렇다. 학생운동 말고도 여성으로서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보통 남녀공학에서는 남성이 주도하고 여성은 그 옆에서 돌봄을 받는다. 그런데 여대는 남학생이 하는 모든 일을 여학생이 맡는다. 기본적으로 남녀차별이 없는 환경에서 지내기 때문에 여대 출신이 사회에 나섰을 때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상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서 의원은 지난해 당 전국여성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전국여성위는 한국 여성들의 정치·경제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만드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미경 유승희 의원 등 이화여대 출신이 연이어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이대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여성위 위원장을 맡았다. 이때까지 성과는 무엇인가.

"전국여성위는 여성 관련 이슈에 집중해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지금까지 성폭력이나 스토킹, 몰래카메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대표적으로 여성 장애아동에 대한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앴다. 전국여성위 중심으로 성폭력정책특위를 만들어 추진한 일이다."

-이화여대 출신이 전국여성위를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화여대가 올해로 130주년을 맞았다. 130년이라는 긴 전통 만큼 배출된 여성 인력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사회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고, 정치권에 진출한 사람도 다수다. '이대 라인'은 이런 맥락에서 보는 게 맞다. 그리고 내 직전 위원장은 이대가 아니라 세종대 출신이다. 독점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두환 밑에서 출세 싫어 시민운동가 변신…주부학교 교사"

서 의원의 특이 이력 중 하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지역에 무료도서대여실과 주부학교를 설립해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운동권 학생이 시민운동가로 탈바꿈 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치소에 잡혀들어가 재판을 받았다. 당시 재판관은 나를 풀어주기 위해 '기회를 줄테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야 했지만 전두환 정권에서 출세하고 싶지 않았다. 면목동으로 돌아온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는 동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심했다. 그때 그 재판관의 말이 생각났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매진해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책이 떠올랐다. 지역민들과 책을 나눠읽을 수 있는 무료 대여실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게 '푸른소나무 무료도서대여실'이다. 지인들과 함께 추진했고 지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부학교 설립도 시민운동의 일환이었나.

"맞다. 푸른소나무 활동이 성공궤도에 오르면서 나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장 큰 관심을 뒀던 이들이 내 어머니 또래 여성들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곳 사람들 누구나 그렇겠지만,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한층 더 그늘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졸업하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살림하고 농사짓다가 자식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는 초등학교 공부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주부학교를 설립하게 된 배경이다. 그곳에서 10년간 주부들을 대상으로 공부와 노래, 미술과 한자를 가르쳤다. 변화가 보였다. 이곳에서 공부한 경험을 계기로 검정고시에 합격한 분도 있었다."  

"朴대통령, 그만한 인물 없다 생각했지만…아우르는 리더십 부족해"

   
▲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 시사오늘

-학창시절부터 시민운동까지 이력을 정리해 보면 여성 리더로 불릴 만하다.

"개인적으로 여성 리더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리더란 여성과 남성 모두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가 되려면 우선 진취적이어야 한다. 또 따뜻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굴하지 않아야 한다. 풀어 설명하면, 리더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들을 위해 정책과 법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국회에 통과시키는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리더로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리더로서 진취적이라고 생각했다. 정치권이 여야 나뉘어서 서로 비판하기는 하지만, 저만한 인물이 없다고 봤다. 그런데 대통령은 우선 따뜻해야 한다.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는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공천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대통령 눈밖에 나면 여당이 다 처리해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나. 아버지의 리더십을 닮은 것 같다. 야당에 대해서도 그렇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다독거리며 정책을 펴나가야 하는데 단순히 '야당은 나쁘다'는 식으로 비판만 한다. 그러면 상대편은 튕겨나간다. 끝내 같은 편이 안 된다는 거다. 대통령은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도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훌륭한 이상향도 구체적 대안 없으면 무용지물"

서 의원을 다선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선이 아니면 재선은 되겠지' 싶은 존재감 때문이다. 사실 그는 19대 총선에 당선된 초선 의원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시절 대통령비서실 춘추장관을 역임했고,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에서 원내부대표를, 당선된 후인 2014년에는 원내대변인을 맡아 미디어 노출이 많았다. 서 의원의 얼굴이 익숙한 이유다. 서 의원의 정계 입문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정계에 입문한 계기는.

"시민운동을 10년간 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훌륭한 이상향도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486세대가 정치를 택한 이유다. 나는 지난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인연이 돼서 2003년에는 민주당 부대변인을, 2004년부터 3년간은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하게 됐다."

-국회의원 출마에 어머니 영향이 컸다던데.

"그렇다. 다들 내가 적극적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추진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맡았을 때처럼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19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앓게 됐다. 그때 어머니가 '내가 너 정치 시키려고 40년 기다렸는데 아직도 망설이냐. 나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너 후회할 거다' 하시더라. 그러면서 오빠와 남동생에게 내 선거를 도우라고 했다. 남편도 후원금을 모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다."

"존경하는 정치인, DJ·노무현"

   
▲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 시사오늘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김근태계·486계로 분류된다.

"정확히 말하면 김근태 전 의장의 아내인 인재근 선배와 인연이 있다. 이화민주동지회가 전두환 정권 퇴진을 이끌어내는 데 앞장섰는데 그때 인재근 선배와 같이 일하게 됐다. 그후 시민운동을 하면서도 인연을 이어갔다. 김 전 의장은 먼저 정계에 입문한 상태였다. 그러다 내가 열린우리당에 참여하게 됐고, 부대변인으로 김 전 의장을 모신 적은 있다."

-존경하는 정치인이 있나.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우선 DJ는 오랜 세월 정치를 하면서 국민과 반 발짝 거리에 서서 수십년을 내다봤다. 노 전 대통령은 선하디 선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당시 경제성장률·취업률 등 모든 지표가 최고치를 찍었다. 정권 말기에 매도당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앞으로 한국 정치에 공존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진보도 보수도 함께 해야지, 서로 적대시하면 발전은 없다."

-김근태 전 의장이 섭섭해 할 것 같은데.
“(웃음) 물론 김 전 의장님도 존경한다. 그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감싸주고, 동시에 이끌어주던 리더다.”

"20대 총선 공약…주민들 위한 둘레길·야외수영장"

-19대 의정활동을 돌아보면.

"정치인이 되고 보니 정말 할 일이 많더라. 태완이법은 내가 아니면 누가 만들었을까 싶다. 어느 날 집에서 TV를 보는데 태완이 이야기가 나왔다. 방송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같은 엄마 입장이다 보니 더 가슴이 아팠다. 그러다 문득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관련법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이다. 또 열악한 경제적 환경에 허덕이는 서민들을 위해 이자제한법·불법채권추심방지법·대부업법을 골자로 한 '피에타 3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태완이 사건은 지난 1999년 대구에서 당시 6살이던 김태완 군이 거리에서 황산테러를 당해 49일 만에 세상을 떠난 일을 말한다. 이 사건은 범인을 찾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미제로 남았다. 

-20대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공약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크게 요약하자면 '주민과 어우러지는 개발'이다. 우선 제주도 올레길과 같이 용마산에 중랑둘레길을 만드려고 한다. 예산 120억 원도 유치한 상태다. 산을 둘러보고 내려오면 시장과 연결돼 밥도 먹고 쇼핑도 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시장경제와도 이어지는 셈이다. 또 중랑구는 산이 있고 천이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인데, 중랑천에 야외수영장을 완공했다. 아이들이 멀리까지 가지 않고 동네에서 물놀이 할 수 있도록 오는 5월 개장할 예정이다. 또 화산경마장을 재건축하면서 내보내기로 한 것도 소개하고 싶다. 대신 백화점이나 기업을 유치해서 건강한 동네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한다."

오지혜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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