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가슴 아픈 할아버지의 마지막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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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가슴 아픈 할아버지의 마지막 사랑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5.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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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1)>"함께 가게 내버려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겨우 내내 기승을 부렸던 동장군이 서서히 물러나고 봄비가 흩날리던 어느 봄날 오후, 각종 훈련과 출동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던 중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서대문구 연희동 내부 확인 요청."

출동 차량에 올라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우리 구조대원이 신고자와 직접 통화했다. 통화 내용을 가만히 듣자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감지됐다.

신고자는 교회 목사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만 사는 집에서 한 시간 전쯤 전화가 왔는데,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나중에 하나님 곁으로 가거든 잘 거둬주고 둘이 함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목사는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 그 할아버지·할머니 댁에 와 보니 문은 잠겨있고, 인기척이 없어 신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서 구급대와 함께 현장에 도착해 보니 자그마한 목욕탕 창문으로 진입하는 게 가장 빠르게 내부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각종 장비를 이용해서 방범창을 제거하고 창문을 뜯어내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에 들어서자 하얀 수염이 길게 늘어진 할아버지와 혈색이 창백한 할머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하얀 천이 깔린 침대 위에 누워계셨다. 의식이 없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팔베개를 하고는 코와 입안에 휴지를 가득 넣은 채 누워계셨다. 할아버지의 손목에는 약간의 혈흔이 있었다. 자해 흔적이 분명해 보였다.

다급함을 인지한 구급대는 제세동기와 기타 구급장비를 동원해 두 분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주먹을 휘두르며 난리를 치셨다. 소리를 지르고 베개며 잡동사니를 집어던지셨다.

"내비둬! 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나를 죽게 내버려둬. 함께 가게 내버려둬."

구급대원은 그런 할아버지를 설득하면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대범하게 다가갔다. 어렵사리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숨을 거두신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뜨거워졌다. 코와 입을 휴지로 틀어막고 손목에 자해를 했던 할아버지의 의아한 행동…. 평생 함께해온 할머니가 오랜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자 그 뒤를 따라 함께하려고 했던 것임을 알고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출동 현장에 다니다 보면 젊은 사람들의 부부싸움으로 발생하는 사건사고가 참 많다. 또한 그로 인한 이혼율도 높다고 한다. 이런 사회 실정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은 우리네 세상에 가슴 먹먹하면서도 아름다운 교훈을 준다.

복귀하는 길에 오래 전 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사시는 어머니 생각에 잠겼다. 아들다운 아들로 어머니를 잘 모시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차창밖에 내리는 봄비를 바라봤다. 울적한 복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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