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국방, 그리고 신성불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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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국방, 그리고 신성불가침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7.13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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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드 배치, ‘어디’보다 ‘왜’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우리 사회의 사드 배치 논의는 ‘어디’에 지나치게 집중된 경향이 있다. 사진은 김항곤 성주군수 ⓒ 뉴시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에블린 베아트리체 홀이 볼테르의 철학을 요약하기 위해 썼던 이 말은, 볼테르의 신념을 넘어 자유주의의 본질까지 정확히 꿰뚫은 표현으로 꼽힙니다. 자신의 뜻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말하고 행동할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단순한 이 원리는 자유민주주의의 토대가 되고 있지요.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치외법권(治外法權)을 인정받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국방 영역입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국방 영역은 아직까지도 ‘찬성은 애국, 반대는 비애국’ 또는 그 반대의 이분법적 판결이 힘을 발휘합니다. 국가주의적 색채가 강한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개인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진보 진영조차도 이분법적 찬반 프레임에서는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도 그렇습니다. 사실 사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국민적 공감과 동의가 중요한 의제입니다. 그저 국방력을 키우기 위해 무기를 구매하고 배치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지역갈등, 대외적으로는 신냉전 구도 형성 가능성 등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일개 포병 중대’라고 평가절하할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사드 배치는 시작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국민에게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을 벌여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말 그대로 ‘고고도’ 미사일을 방어하는 체계인 사드가 휴전선에서 수도권으로 날아오는 ‘저고도’ 무기들인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지, 만약 전국민의 절반가량이 거주하고 청와대와 국회, 유사시 전쟁 지휘부가 모두 상주하고 있는 수도권의 방어가 불가능하다면 왜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지, 수도권 방어를 위해서는 패트리어트를 증강 배치해야 하는데 이중으로 방어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분석해서 국민에게 설명하고 공론을 모아야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미·일과의 관계 개선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서 오는 손해, 중국과의 외교 마찰로 인한 북한 고립 전략의 후퇴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국민투표’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이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정보는 제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드 논의는 ‘님비(NIMBY)’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필요는 하지만 우리 지역에는 안 된다’가 전부였지요.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드 이슈로 대한민국이 들끓었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국방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영역이며, 국방력 향상을 위해 배치하는 사드를 반대하는 사람은 ‘비애국자’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쓰기 십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힘은 ‘떠드는 자유’에서 나옵니다. “사드가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 맞아?”, “왜 패트리어트에 사드까지 배치해야 돼?”, “미국도 중요하지만 중국하고도 관계가 나빠져서는 안 되지 않아?” 이런 모든 물음이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지난 몇 주 동안, 사드 배치에 관한 본질적 논의를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대형 포털 사이트의 사드 연관 검색어만 봐도 ‘사드배치 지역’, ‘사드 경북 성주’, ‘사드 칠곡 배치’ 등이 전부입니다.

사드가 반드시 필요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사드가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사회의 발전은 정(正)과 반(反)의 갈등에서 합(合)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이뤄집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국방이라는 정(正) 앞에 너무도 순종적이며 때로는 무력합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토론 대신 ‘내 지역 네 지역’을 두고 반목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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