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 무소속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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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 무소속 대통령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9.12 11: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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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지난 2004년 이른바 ‘오세훈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정치권의 ‘검은 돈’ 문화는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기업 등 법인의 정치자금 후원을 완전히 금지시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했다는 점에서 정치사적 의미는 적지 않다.

 이달 28일부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척결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권력남용 방지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직자 등을 상대로 인사청탁, 이권청탁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방해하는 권력행사가 금지되기 때문에 권력에 기댄 반칙이나 불공정 행태가 많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지형을 바꿀 제3의 동력 꿈틀거려

 이처럼 명시적인 변화의 이정표와 달리, 우리 정치문화에 또다른 변화의 동력이 휴화산 속 마그마처럼 꿈틀거리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임계점을 넘게 되면 우리 정치지형을 뒤흔들면서 강력한 힘의 실체를 드러낼 만도 하다.

 변화의 단초는 지난 2012년 5월말부터 시행돼 19대 국회를 ‘식물국회’로 불리게 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에 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 강화 △단독처리를 위해선 5분의 3 (180석) 찬성 등 핵심조항 덕분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와 ‘의원 폭력’이 사라졌다. 대신에 여당은 지루하면서도 끈기 있는 협상을 통해 야당과 합의점을 찾아야만 일부 법안이라도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두 번째 계기는 2016년 4·13총선 결과인 ‘여소야대’ 정국이다. 국회의장도 여당 몫에서 야당 출신으로 바뀌었다. 그 바람에 국회선진화법과는 또다른 차원의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정기국회 첫날인 9월1일 정세균 의장의 개회사에 반발해 여당 의원들이 추경예산안 통과 등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야당은 개의치 않고 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를 단독으로 열어 여당 불참 속에 조윤선 문체부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부적격 의견’으로 일방채택했다. 과거에는 ‘의안 단독처리’와 ‘의사일정 전면거부’는 각각 여당과 야당의 전매특허였는데 이제는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국회선진화법’과 ‘여소야대’가 동력을 비축하는 계기 제공

 ‘국회선진화법’과 ‘여소야대’는 서로 경쟁하듯 여당의 운신을 옥죄고 있다. 아무리 국회선진화법이 살아있더라도 19대처럼 ‘여대야소’라면 여당은 견딜만 할 것이다. 지난 2015년 정기국회 때처럼 정부예산안이 법정 시한 내에 무조건 처리될 수 있는 법 조항 덕분에 여야 협상에서 여당이 유리한 입장에 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국회선진법’과 ‘여소야대’의 ‘협공’은 여당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킨 꼴이다. ‘식물국회’가 아니라 ‘식물여당’을 만들었다. 이번 추경예산안 처리 때도 봤듯이 야당은 교문위에서 일방적으로 누리과정 관련 예산 2천억원을 증액시켰다. 또 여당이 끝까지 의사일정에 불응하면 단독으로라도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통과시킬 태세였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어떤 명목을 짜내서라도 ‘직권상정’ 권한을 발동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국회 판도가 상전벽해처럼 변하고 보니 여당 의원들도 곤혹스럽겠지만 국정운영에 필요한 법안통과가 절실한 대통령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20대 국회 개원 100일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통과된 법안이 한 건도 없다는 점은 이와 무관치 않다.

‘식물여당’은 대통령에게 ‘우군’보다 ‘짐’(?)

 20대 국회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여당으로부터 입법부 차원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19대 때보다 더 열악한 형편에 처해 있다.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실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항의농성 하는 장면은 여당 스스로 얼마나 무력감을 절감하는지 웅변하고 있다. 정상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로는 야당의 거침없는 일방통행을 저지할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굳이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여당을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이르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말에 수하에 있던 여당의 ‘하극상’에 의해 탈당을 강요당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역발상이 요구되는 지경이다. 여당을 끌어안고 있으니 절반에도 못미치는 ‘내편’과 나머지 전부의 ‘반대편’을 상대해야 하는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정파를 초월한 중립적 입장에서 국회와 직접 소통하는 무소속 대통령의 등장

 차라리 여야로 편가르지 않고 대통령이 무당파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의회를 상대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순전히 정책만을 놓고 의원들과 소통하고 취지를 설명하며 입법 당위성을 설득한다면 오히려 더 큰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야당 지도자들뿐 아니라 의원 개개인까지 직접 접촉하며 스킨십을 갖고 입법 로비를 벌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여야 관계는 이분법적 사고로 ‘진영논리’를 강화하고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파가 득세하는 등 경직된 대결구도에 매몰돼 있는 측면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겨두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의했던 지난 2005년7월과 비교해서도 남은 임기가 짧다. 더욱이 ‘원칙’과 ‘신의’를 중시하는 대통령 스타일을 감안하면 그에게 ‘무소속 대통령’으로 변신과 여야를 넘나드는 새로운 대통령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손에 쥔 동전을 놓아야 병에서 손을 뺄 수 있다’

 그렇지만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예비주자들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특정 정당의 지지를 기반으로 쟁취한 대통령직이 20대 국회 후반기와 맞물리는 집권 초기 2년 동안 과연 얼마나 효과적으로 여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5년 국정농사의 기틀을 잡아야할 중대한 시기에 국회가 티격태격하느라 보조를 못 맞춘다면 황금기를 허송세월로 전락시킬 우려도 있다. 그것은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그를 믿고 ‘대한민국호’의 타륜을 맡긴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손에 쥔 동전을 놓아야 병에서 손을 뺄 수 있는 이치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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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원 2016-09-14 08:49:31
그러니까 현역 시절,
저보고 왜 허구헌 날 부정적인 기사를 양산하느냐는 철없는 질문을 가끔 받곤 했었습니다.
그 대답은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긍정적인 세상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적어도 대통령 스스로 헌법위에 군림하고 그의 독선이 정치를 짓밟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국민만 불행할 따름입니다.

권위원님의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