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20 일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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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선, “‘준마(駿馬)’ 허락되면 ‘대상경주’ 우승도 가능”
김혜선 기수
“여성기수는 메인기수 될 수 없다는 편견, 깨고 싶어”
“연인 서승운 기수와 함께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29살 ‘아홉수’, 여성으로서의 김혜선도 생각할 시점”
2016년 12월 16일 (금) 정세운 기자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세운 기자 박근홍 기자)

“사진 잘 찍히고 있나요? 저는 왼쪽이 잘 나오는데.”

뜻밖이었다. 연분홍빛 털스웨터를 차려입은 ‘여자 경마 대통령’의 입에서는 연신 ‘소녀’ 같은 재담이 쏟아졌다. 자그맣고 동그란 얼굴에 가득 찬 그의 커다란 눈망울은 흡사 천진난만한 ‘망아지’의 그것과 같았다. 남자들의 세계라 불리는 대한민국 경마판에서 최고 여성기수로 활약하고 있는 ‘야생마’의 위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말과 경마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자, 그의 눈빛은 180도 달라졌다. 굳게 다문 입술에는 지난 9월 한국 여자기수 사상 최초로 200승을 달성한 기수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여리여리해 보였던 그의 체구는 과천벌의 매서운 모래 바람을 이겨내기 충분할 정도로 단단하게 다가왔다.

<시사오늘>은 지난 7일 서울 과천에 위치한 렛츠런파크에서 김혜선 기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한국마사회 기수협회 1층 인터뷰룸에서 진행됐다. 이날 김 기수는 여성기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겪어야 했던 역정(歷程)들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2009년 6월 데뷔 이후 지난 7년 동안 기수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국내 경마계의 ‘유리천장’을 뚫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는 내용이었다.

   
▲ 김혜선 기수는 남자들의 세계로 통하는 한국 경마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여성기수다. 김 기수가 1승을 올릴 때마다 우리나라 경마계의 역사가 바뀌고 있다. ⓒ 시사오늘

그럼에도 김 기수는 당당했다. 인터뷰 도중 노란색과 파란색 바탕에 붉은 띠가 양팔에 새겨진 기수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내게 준마(駿馬)가 허락된다면 대상경주 우승도 가능하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시사오늘>이 바라본 김혜선은 ‘최고 여성기수’가 아니라 ‘최고 기수’였다.

힘보다는 ‘교감’

-기라성 같은 남성기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여성기수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잘하기가 정말 어렵더라. 처음 말에 올라탔을 때는 패기가 넘쳐서 그랬는지 ‘남자랑 뭐가 다르냐. 다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짬’이 늘면 늘수록 확실히 힘들다고 느껴진다. 선천적으로 힘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남성기수들보다 좋은 말을 태워주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능력보다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경마계에는 그런 선입견이 있다.”

-실제로 여성기수들은 말을 제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말은 기계가 아닌 생명체다. 힘으로만 타면 안 된다. 교감이 이뤄져야 한다. 남성기수들 중에 힘을 과신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말에 끌려 다닌다. 나는 섬세하게 말과 교감을 나누며 타는 편이라서, 다른 기수들이 타면 끄는 말도 내가 올라타면 안 끄는 말이 많다.”

-선행마 위주로 하는 다른 여성기수들과 달리 선행마, 선입마, 추입마를 가리지 않고 모두 잘 타는 것도 그 일환인가.

“처음에는 나도 선행마를 주로 받아서 탔다. 아무래도 여성기수들은 몸이 좀 더 유연해서 그런지 출발할 때 남성기수들보다 빨리 치고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선행마를 잘 탄다는 얘기를 초반에 많이 들었는데, 그게 썩 좋지만은 않았다. 꼭 선행마만 주니까(웃음). 선행마는 다른 말들의 방해 때문에 초반에 치고 나가지 않으면 꼴찌가 되기 일쑤다. 선행마만 잘 타는 게 별로라고 생각한 이유다.

선행마, 선입마, 추입마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말은 빨리 나오든, 늦게 나오든 자기 능력껏 뛰기 마련이더라. 사람이 원하는 위치에 자리 잡으려 하지 않고, 그 말이 원하는 자리로 물 흐르듯이 타는 게 바로 교감이다. 4코너 전까지는 최대한 말을 편안하게 만들고, 마지막에 힘을 쓰는 게 내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그래서 말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잘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수로서 또 다른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면.

“‘발주(發走)’다. 원래 타고난 장점이기도 했는데, 기수 생활을 하면서 이걸 좀 더 연마해 확실한 내 강점으로 만들었다. 어떤 조교사가 말하길, ‘제일 발주 잘 받는 기수를 태우라는 지시를 받으면 가장 먼저 김혜선이 떠오른다’고 하더라. 특별한 특징이 없는 기수들보다는 뭐 하나라도 각인된 기수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여성기수 최초 통산 200승 달성의 비결인가.

“(웃음을 지으며) 사실 무덤덤했다. 예상했던 것만큼 기분이 좋지 않더라. 100승 할 때는 200승을 언제쯤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200승 하니까 300승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보다는 대상경주 타이틀을 꼭 하나 먹고 싶다는 꿈이 있다.”

-대상경주 우승을 한 번도 못했나.

“특별경주만 하나 땄고, 대상경주는 2등밖에 못했다. (한숨을 짓더니) 대상경주를 뛸 때는 1등을 할 수 있는 말이 내게 오지 않았다.”

경마계의 ‘유리천장’

   
▲ 김혜선 기수는 자신이 기수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여성기수에 대한 편견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 기수는 좋은 말이 주어진다면 대상경주 우승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 시사오늘

경마계에는 '마칠기삼(馬七騎三)'이라는 말이 있다. 기수의 실력보다 말이 가진 능력이 성적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기수들은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면 마주(馬主)들과 마방(馬房)을 찾아다니며 좋은 말을 얻는 데에 전력을 기울인다. 또한 마주들과 마방도 대상경주처럼 반드시 우승을 노려야 하는 큰 경기의 경우, 뛰어난 기수들을 자신의 말에 태우려 한다. 이를 ‘메인기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성기수들이 메인기수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일종의 ‘유리천장’이다. 과거 경마장에서는 여성 아나운서가 1경기를 중계하면 관중석으로부터 야유가 쏟아졌다. 첫 경기부터 ‘암탉’이 짖어댄다는 비아냥거림이었다. 그만큼 국내 경마계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타공인 실력을 인정받은 김혜선 기수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왜 좋은 말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나도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기수로서 내가 가진 능력을 경마장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다승 공동 5위까지 갔다. 문세영 선배, 조성곤 선배, 박태종 선배, 함완식 선배, 유승완 선배 다음 바로 나였다. 하지만 내게 주어지는 말의 수준은 항상 비슷했다. 아직도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사실 한 마방에 조교사부터 시작해서 관리사까지 죄다 남자가 아닌가.

여성기수를 메인으로 쓰자니 좀 불안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혜선이 잘 탄다는 건 인정하지만 좋은 말을 태우는 메인기수로까지는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말은 아직 내게 온 적이 없다.”

-특정 마방에 속하지 않은 프리기수가 아닌가.

“프리기수라고 하지만, 다들 개인 나름의 소속들이 있다. 근데 나는 그런 마방이 하나도 없다. 이 집, 저 집 골고루 타 왔다. 아마 그러니까 메인기수로 쓰지 않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좋은 말이 오지 않으니 심적으로 굉장히 괴롭다. 언제까지 그저 그런 말로 성적을 내야하는 건지 몸도 지친다. 위치가 올라간 만큼, 좋은 말이 왔으면 내가 좀 더 수월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좋은 말을 타지 않아도 배당이 많이 내려간다.

“(소리 내 웃으면서) 너무 감사한 이야기다. 좋지 않은 말로 승부를 낸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잘 아신다.”

-200승 달성 이후로 마주들이나 각 마방의 인식전환이 없었나.

“대상은 그렇지 않다. 메인기수로는, 대상경주 기수로는 신뢰할 수 없다는 시각이 많더라.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사실 내가 예전에는 좋은 말을 타면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준비가 안 됐다. 하지만 지금은 준비가 됐고, 마인드도 상당히 좋아졌다. 긴장하지 않고 잘 탈 수 있다. 내게 좋은 말만 허락된다면 대상경주 우승 반드시 할 수 있다.”

-이제는 준비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미소를 지으며) 서승운 기수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연인’ 서승운 기수의 조언

   
▲ 김혜선 기수와 서승운 기수의 열애설은 장안의 화제였다. 김 기수는 서 기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같은 기수로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정신력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 시사오늘

김혜선 기수와 서승운 기수의 열애설은 경마계에서 장안의 화제였다. 경마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경마 대통령’ 박태종 기수가 지난해 10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의 열애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 기수는 “두 사람 분위기가 완전 핑크빛이다. 곧 좋은 소식이 들릴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서승운 기수가 어떤 조언을 했나.

“딱히 특별한 조언을 했다기보다는, 승운이가 나보다 더 레벨이 위에 있는 기수가 아닌가. 기수들의 실력과 성적이 올라가는 속도는 대부분 비슷하다. 다만, 그 이상의 경지에 이르는 데에는 ‘멘탈’이 중요하다. 좋은 말을 타면 부담을 느끼는 멘탈이 약한 사람들은 1~2등이 될 수 없다. 내가 한때 그게 좀 심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승운이를 지켜보니까 항상 당당하더라. 마인드가 굉장히 좋았다. 승운이와 함께하면서 많이 배웠고, 성적도 자연스레 좋아졌다.”

이 대목에서 김 기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한마디를 보탰다.

“승운이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긴 했다. ‘그냥 잘 타면 돼. 출발할 때 게이트 잘 나오고, 말이 꼬꾸라지지만 않으면 되지. 좋은 말 타면 당연히 좋은 성적이 나오는 거야. 그런데 뭘 그렇게 긴장을 해. 좋은 플레이를 해도 못 들어오면 그날 말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돼’라고. 큰 도움이 됐다.”

-서 기수가 부산으로 내려간 게 혹시 열애설 때문인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승운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성적이 나쁜 기수가 아니니까. 아무래도 승운이와 경주를 하면 옆에 붙고 경쟁을 하게 되는데, 일부 경마팬들이 서로 봐주는 게 아니냐고 자꾸 오해를 하시더라. 나는 괜찮았지만 승운이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말을 얻어 타는 횟수도 줄어들고….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사정이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승운이가 부산행을 택했다. 당시에 둘이 고민을 많이 했다. 연인관계인데 떨어지게 됐으니까.”

-그래도 서 기수가 부산에서 잘 정착한 것 같다.

“그건 참 다행이다. 승운이가 부산에서도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반면, 부산 지역에서 탑 기수였던 조성곤 기수는 서울에서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

“승운이한테 전해 듣는 게 많은데, 서울과 부산은 많이 다르다. 서울은 기수가 말 조교를 처음부터 다하는 반면, 부산은 초반부터 기수에게 조교를 맡기지 않는다. 그게 외국식이다. 또 부산 말 수준이 서울보다 뛰어나다. 성곤 선배는 어떻게 보면 서울 말들을 처음 접하고 있는 게 아닌가. 더욱이 서울은 문세영 선배라는 거대한 산이 존재한다. 다른 기수들이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기 어렵다. 나는 성곤 선배가 부산에 있을 때만큼 충분히 잘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웃으면서)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승운이가 꼭 올라온다.”

-혹시 열애 중인 다른 기수들이 있나.

“태종 선배처럼 뭐 하나 던져줘야 하나(웃음). 글쎄, 좋은 일이 있겠죠?”

‘여자 박태종’, 그리고 ‘똥글이’

   
▲ 지난 9월 10일 아일랜드 트로피. 김혜선 기수가 천지스톰을 타고 들어오고 있다 ⓒ 한국마사회

박태종 기수와 김혜선 기수는 인연이 깊다. 박 기수의 별명은 ‘경마 대통령’, 김 기수는 ‘여자 경마 대통령’, ‘여자 박태종’으로 통한다. 두 사람 모두 자기관리에 철저하기로 유명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마지막 코스에서 힘을 쓰는 플레이 스타일도 닮은꼴이다. 또한 경마계에서는 ‘박태종은 꼭 김혜선을 데리고 결승선을 통과한다’는 소문까지 돈다. 아니나 다를까, 김 기수의 롤모델은 박 기수였다.

-최고의 라이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문세영 기수인가.

“(크게 소리 내 웃으며) 내가 감히 세영 선배를 라이벌로 삼을 수 있을까. 나는 라이벌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라이벌이라고 말하는 남성기수들은 몇몇 있었다. 사실 나는 왜 나를 라이벌로 세웠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내가 여자다보니까 좀 특출하게 보이는 건데, 다승순위에서 나와 별 차이가 나지 않으면 견제를 심하게 하더라. 나는 전혀 라이벌 의식 같은 게 없었다. 나만 잘 타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기수들 중에서는 없나.

“아직 프로에서는 ‘갭(gap)’이 좀 있다. 나보다 많이 아래다.”

-박태종, 문세영, 서승운 기수 중 누가 가장 말을 잘 탄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최고는 승운이가 아닐까(웃음). 승운이는 내 후배니까. 태종 선배와 세영 선배는 내가 판단할 사람이 아니다. 감히 선배들을 내가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모두 훌륭한 기수들이고, 잘 타신다.”

-앞으로 이런 기수가 되고 싶다는 롤모델이 있다면.

“아무래도 태종 선배가 아닐까. 너무 자기관리를 잘하고 성실하시지 않느냐. 기수생활 초반에 내가 뭘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본 때가 있었다. ‘성실’밖에 없더라. 그런 부분에서 가장 적합한 선배가 태종 선배다. 나이가 있어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고 계시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경마계에서는 박 기수와 결승선을 잘 통과한다는 소문이 돈다.

“(웃으면서) 그래요? 내가 요즘 잘 못하는 게 태종 선배가 없어서 그런가(박 기수는 지난 9월부로 휴식 중에 있다). 아휴, 기분 참 좋네.”

-‘여자 박태종’이라는 별명도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여자 박태종이라는 별명을 언론에서 많이 붙여줬다. 또 여성기수니까 혜선공주, 혜선낭자라는 별명도 있는 것으로 안다.”

-기수들 사이에서는 뭐라고 불리나.

“‘똥글이’라고 한다. 다 동글동글하니까 그런 게 불리는 것 같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통통했다. 기수생활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더니 살이 쫙 빠졌다. (웃으면서) 살이 빠지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했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열성팬들이 꽤 있을 듯싶다.

“팬카페지기 분이 생각난다. 내가 이제 기수 8년차인데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팬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기수 팬카페가 이렇게 이어지는 데가 없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극성이었다. 카페에서 조그만 말실수를 하면 ‘강퇴(강제퇴장)’을 시킨다던지,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까 그분 때문에 내 팬을 하기 싫다는 팬까지 있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그 펜카페지기 분을 비롯해서 몇몇 팬들과 소통을 했었는데, 너무 가깝게 지내면 좋은 게 없더라. 그래서 지금은 연락을 끊은 상황이다.”

-어떤 점이 좋지 않았나.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들이대는 남성팬들이 몇 명 있었다. 특히 아저씨들 같은 경우에는 내게 기분 나쁠 수 있는 짓궂은 질문들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동료기수들 욕을 내 앞에서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팬들과 만나고 나면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 지더라.”

-반대로 좋은 기억으로 있는 팬이 있다면.

“나보다 키가 작은 이모님이 한분 계시다. 본인이 키가 너무 작다보니까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공부도 잘 했는데 키 때문에 기업 면접에서 자기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밀리기도 했다고 한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나도 작은 키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고 포기해야 했던 많은 꿈들이 있었는데, 우연히 기수가 되면서 이렇게 좋은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니까 그 이모님이 나를 보면서 굉장한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하더라. 경마를 하는 분도 아닌데 내게 먹을 걸 챙겨줄 때 동료기수들도 다 같이 먹을 수 있게 많이 가져다주시고, 제2의 엄마처럼 내 생각을 많이 해주신다.”

‘두근거림의 진원, 한 장의 사진’

   
▲ 김혜선 기수는 아주 우연히 말을 타게 됐다.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에 가서 말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 시사오늘

김혜선 기수가 말을 타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스토리는 마치 한 편의 소설과 같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준비를 하던 시절, 우연히 펼친 문제집에서 떨어진 우연한 사진 한 장이 꿈 많았던 19살 소녀를 경마장으로 인도했다.

-기수가 된 계기를 듣고 싶다.

“참 우연이다. 고3 때 공부를 하려고 어느 문제집을 열었는데, 그 사이에 껴있던 사진 한 장이 책상 위에 뚝 떨어졌다. 중학교 수학여행에 갔을 적에 5000원을 주고 말 위에 올라타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에 내가 굉장한 ‘짠순이’였는데 그걸 돈을 주고 찍었더라(웃음). 그래서 그 사진을 들고 거실에 있는 큰오빠에게 말 타본 적 있느냐고 자랑을 했더니, 오빠가 최근에 기수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내게 말했다.

큰오빠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나중에 기수들이 경주하는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수 시험 일정을 확인해 보니 마침 3~4개월 후에 있었다. 워낙에 동물을 좋아하기도 했고, 운동도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다. 또 내 신체조건에 딱 맞을 것 같아서 큰오빠에게 얘기하니까,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라.”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웃으면서) 내 위로 오빠가 둘이다. 큰오빠는 나랑 10살 차이가 난다. 그러다보니 부모님께서는 막내딸을 진짜 딸처럼 키우고 싶으셨나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셨다. 학교까지 찾아와서 운동하는 나를 끌고 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공부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까(웃음), 이런 기회가 있으니 시험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간곡히 설득하니 허락을 해 주셨다.”

-단 3개월 만에 기수시험 준비가 가능한가.

“원래 선천적인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다른 애들이 체대 입시 준비하듯이 똑같이 운동하고 다녔다. 시험 종목이 오래달리기, 팔굽혀펴기 같은 거였으니까. 어떻게 좋은 성적이 나와서 다행히도 한 번에 붙었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막상 기수후보생이 돼 보니 어땠나. 두근두근하는 감정이 그대로 이어졌나.

“우연한 계기로 기수시험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되레 기수에 대한 꿈이 커졌다. 후보생 생활은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때 대학도 붙었는데 거길 안 가고 후보생으로 들어온 거다.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그때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 여기서 나가면 다시 공부할 만한 여건이 안 됐다. 기수후보생들에게는 숙식도 제공됐고, 기본적으로 23만 원 가량의 품위유지비도 주어졌다. 그렇게 돈까지 받아가면서 숙소생활을 할 수 있는 게 나에게는 굉장히 좋았다. 힘들지만 버텨야 했다.”

-기수가 되고 나서는 어땠나.

“(웃으면서) 아니꼬운 것도 많았다. 그렇지만 너무 좋았다. 당시 제일 어린 나이에 기수가 됐으니까. 말 타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말이 너무 좋았다. 돈을 많이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된 것도 기뻤다.”

-기수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마음 놓고 여행할 시간이 없다. 기수들은 월요일, 화요일에만 쉬니까 멀리 나갈 수가 없다. 3박 4일도 어렵지 않느냐. 다만, 월요일, 화요일에 놀아서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영화관에 사람이 없으니까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정도다(웃음).”

-큰 부상을 겪은 것으로 아는데.

“무릎 십자인대가 두 번 끊어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열정이 과도했던 것 같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이 경주를 하고, 운동한다고 산을 타고 그랬으니까. 무릎이 약해져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끊어질까 했는데, 정말 사소한 일로 부상을 당했다. 2013년 상반기에 기수협회에서 동료들하고 축구를 하다가 그냥 공을 탁 건드렸는데 십자인대가 툭하고 끊어졌다.

두 번째 끊어졌을 때는 너무 방심했었다. 처음 부상을 당하고 1년 정도를 푹 쉬었어야 했는데, 4개월 만에 경마장에 나왔다. 그 상태로 1~2년 말을 타니까 무릎이 덜컹덜컹 거리는 일이 잦았는데, 몸의 경고를 무시했다. 어느 날 말이 180도를 훅하고 도는데 무릎이 이걸 못 따라가고 끊어졌다. 통산 100승을 얼마 안 남겼을 때였는데 많이 안타까웠다.”

-낙마 경험은 없었나.

“떨어져서 다친 적은 없었다. (웃으면서) 그런 거 보면 다른 곳은 참 튼튼한 것 같다.”

-승부조작의 유혹을 받은 적은 없나.

“예전에는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교육원 시절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데다, 요즘 마사회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된 기수들의 면허취소를 강도 높게 실시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 분위기 자체가 안 된다.”

-어떤 식으로 다가오던가.

“그냥 한 번 만나고 싶다고,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식으로 연락을 하더라. 수상한 연락이 오면 받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고, 밥도 먹지 말라고 교육을 받았다. 근데 그런 걸 받으니까 무척 무섭더라.

마주님들 중에서도 자기 말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라 다른 말에 대해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그것조차도 무서워서 마주님들의 연락도 받지 않은 적이 있다. 그래서 당시에 ‘김혜선은 싸가지 없다’고 소문나기도 했다(웃음).”

-기억에 남는 경주, 그리고 말이 있을 듯싶다.

“특별경주에서 처음으로 시상대에 올랐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교사님이 내게 기회를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상경주가 아니라 특별경주인데도 (마주와 마방을 설득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들었다. 여성기수가 과연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겠냐는 편견 때문이었다.”

“말은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진짜 마음이 갔던 말들은 많았지만 나중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정성들여서 말에게 마음을 주고, 공을 들여도 다른 기수한테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말은 단순히 내 일거리일 뿐인 거다. ‘당장 성적을 내야 이 말을 계속 타지, 지금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이라는 생각, 아마 기수들 대부분이 그럴 거다. 물론 요즘도 예쁜 말을 보면 한 번 더 쓰다듬게 되고, 정을 주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현재 ‘기수 김혜선’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나.

“지금 성적에서 보이는 위치에는 만족하는 편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내게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더 좋은 말을 타고 싶은데, 더 좋은 말을 내게 주지 않아서 타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부산으로 가야하나(웃음).”

물 흐르듯 살아온 최고 기수, 기로에 서다

   
▲ 김혜선 기수는 한국마사회가 주최하는 사진전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 한국마사회

김혜선 기수는 올해 29살이다. 비슷한 나이 대에 있는 다른 여성들처럼, 그 역시 직업과 결혼이라는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기수생활은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은데 요즘 몸이 워낙 좋지 않으니까, 다른 길도 생각하게 되더라. 내년이면 서른이고 아홉수여서 그런지 유독 올해 들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여성으로서의 김혜선도 중요하지 않겠느냐. 결혼도 있고, 아이도 있고…. 혹시 가정을 갖게 된다면,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기수라는 직업이 너무 위험하니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정은 내린 상황인가.

“아직 뭔가 결정을 내린 건 없다. 다만, 조교사나 교관 쪽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국내 경마계에는 여성 교관이 없으니까 조교사보다 교관에 먼저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교관은 내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현장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좋아하지만 책상 앞에서 서류를 꾸미는 일은 잘 못한다. 그런데 교관은 대부분 사무를 본다더라.

때문에 조교사를 특별히 원하는 건 아니지만 기수라는 직업 특성상 다른 길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좀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침 내년부터 조교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주어진다. 처음 내가 기수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준비 과정에서 꿈이 더욱 커져서 여기까지 왔다. 나는 말을 탈 때도 물 흐르듯이 타는 걸 선호하지만 인생 관념도 그렇다. 자격은 주어졌으니까 일단 준비를 하고 시험을 봐 보면 흥미도 깊어지지 않을까. 기수 생활을 계속해도 이론적인 면에서 분명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신영 조교사가 유일한 여성 조교사다.

“그렇다. 여성 최초다. 신영 선배는 본인에게 기수보다 조교사가 너무 잘 맞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선배가 나한테는 기수를 계속 하라고 권유했다. 내게는 기수가 ‘천직(天職)’이라나(웃음).”

-기수로 롱런할 생각은 없나.

“하고 싶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몸도 좋지 않고, 결혼과 출산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다.”

-요즘에는 여성들이 가정 대신 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결혼도 안 하고 있겠죠. 내가 무척 욕심 많게 살아온 것 같다. 주변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 모든 걸 기수생활에 쏟아 부었다. 남들 다 가는 여행 한 번 못 갔다. 말 한 마리를 놓치기 싫어서였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만약에 그 한 마리를 놓쳐서 다른 기수가 그 말을 타게 된다면, 그리고 그 기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그 말은 영영 내게 오지 않는 거다. 이런 걱정에 내가 계속 말을 타고 있다.”

-기수를 지망하는 여성준비생들에게 하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싶다.

“예전에는 기수 너무 좋다고, 진짜 꼭 해야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흘러가는 추세가 기수들에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가져가는 봉급도 많고 안정적이었는데 요즘에는 성적을 내지 못하면 면허를 안 주고 취소시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경쟁은 과열됐고, 스트레스는 늘었고, 기수들의 힘은 줄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는 비전이 있느냐가 중요한데, 미래를 예상해 보면 기수라는 직업의 비전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한때 최고 기수였던 선배들이 밖에 나가면 아무 것도 못하고 ‘벙쪄’있더라. 그래서 지금은 추천할 만한 직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수복을 입고 해야 하는 말

   
▲ 김혜선 기수는 이제 미래를 꿈꾼다. 그는 대상경주 우승이라는 당찬 포부를 끝까지 강조했다 ⓒ 시사오늘

이렇게 인터뷰가 마무리될 때쯤, 김혜선 기수는 기수복으로 환복을 해야 한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내 김 기수는 노란색과 파란색 바탕에 붉은 띠가 양팔에 새겨진 기수복을 입고 다시 인터뷰룸으로 들어왔다. 그는 반드시 기수복 차림으로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기수복 색상은 본인이 직접 정했나.

“문세영 선배 기수복도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이 있고, 박태종 선배도 그렇다. 좀 잘 타는 기수들을 보면 꼭 노란색을 하나씩 넣더라. 그래서 노란색을 꼭 기수복에 넣어야겠다고 했다.”

-꼭 기수복을 입고 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가.

“(웃으면서) 대상경주다. 지금 기대하고 있는 망아지가 하나 있다. 정말 좋은 말이다. 능력도, 혈통도 뛰어나다. 한 마주님께서 내게 끝까지 맡기기로 했고, 나도 미래를 보면서 말을 만들고 있다. 최근 들어 말에게 마음을 주면서 이렇게 재미를 많이 느낀 게 정말 오랜만이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맡을 수 있다고 들었으니까…. 설마 다시 가져가진 않겠죠?(웃음)

이 말이 나한테 온다면, 대상경주 우승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는 대상경주에서 기필코 우승해서 경마팬 여러분께 더욱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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