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제] 문재인 정부 실효성 거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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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제] 문재인 정부 실효성 거둘까?
  • 윤슬기 기자
  • 승인 2017.07.31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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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차별’ 논란 확대, 기업·취준생 ‘당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슬기 기자)

지금까지 스펙을 올리기 위해 준비한 시간과 노력은 다 무시되는 것 같아 조금은 서럽다. 면접 당일 컨디션이나 면접 순발력이 뛰어난 혹은 외모가 좋은 사람이 유리한 것이 아닌가.”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서모(29) 씨는 31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을 대부분 지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블라인드 채용제도’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 문재인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입사지원서 항목에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학점 등을 삭제해 실력 중심의 평가를 정착시키자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만큼이나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일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역차별’ 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정부는 지난 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입사지원서와 면접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인적사항 요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력서에 사진도 부착할 수 없게 했다. 다만 특수경비원이나 연구원 같은 직무수행에 필수적인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신체조건과 학력 기재를 허용했다.

◇ 블라인드 채용 확대 위해 법안 발의 ‘증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블라인드 채용'을 명문화할 입법 작업에 나서며 정부를 뒷받침하고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채용절차의 공정성과 관련된 법률 개정안 5건을 발의했다. 이중 박정·박광온 의원 발의안이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박정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정부 발표안과 가장 유사하다.

박 의원은 지난 26일 공공기관과 지방공사·공단 등의 직원 채용 시, 고용노동부가 정한 기초심사자료의 표준양식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양식은 구직자의 기본이력과 경력·자격증·특기사항·자기소개 등 활동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고, 나이·학력·성별·출신지역과 사진 등 차별이 될 수 있는 항목은 배제했다.

국정자문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한 박광온 의원의 개정안은 보다 구체적이다.

지난 10일 발의된 이 개정안에는 '공공기관부터 채용과정에서 차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학력·출신지·신체조건 등이 기재된 서류의 제출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켜 문 대통령의 '블라인드 채용' 구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반영했다.

▲ 입사지원서 항목에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학점 등을 삭제해 실력 중심의 평가를 정착시키자는 취지다ⓒ뉴시스

◇ 블라인드 채용 확산, ‘풍선효과 우려’…취준생‧기업 ‘난색’

그러나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 우려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부 취업준비생들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다른 스펙을 더 요구하는 ‘풍선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사오늘>과 만난 대학생 박모(26) 씨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문제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만큼 그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원하는 기업에 가기 위해 스펙을 쌓으며 준비해온 시간이 있는데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아 허탈하다”며 “사실 자기소개서를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학력이나 학과가 언급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묻고 싶다.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만큼 제도 설계가 촘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취업준비만 3년째 했다는 또 다른 구직자도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이 원하는 경력을 쌓기 위해 취준생들이 얼마나 노력을 하는 줄 아는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남보다 더 노력했고, 대학 때는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학점관리, 경력관리를 했는데. 이젠 소용이 없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블라인드 채용제도에 따른 구체적 기준부터 다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기업 상당수가 2~3년 전부터 사진, 외국어성적, 신체조건 등에 대한 항목을 없앴다. SK는 무스펙 채용을 시행하고 있고, LG그룹은 2014년부터 학교, 학과, 학점 같은 최소 요건을 제외하고는 스펙을 보지 않고 있다. 이에 블라인드 채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행할지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한 대기업 해운업체에서 인사를 담당했던 관계자도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있고, 임기 초반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도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사실 학과나 학점도 그 사람의 성실함이나 노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즉 사람을 볼 때 종합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배제하고 면접만으로 채용하는 것은 조금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방 공공기관의 ‘지역할당제도’에 대해서도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할당제도란 해당 지역 대학 출신 인재를 채용 인원의 30% 할당해 뽑는 제도다. 그러나 지역인재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지원 시 출신 대학과 출신지를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추진중인 '블라인드 제도'와 대치된다는 지적이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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