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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퇴자의 고뇌, 은퇴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강상호의 시사보기> 국민 행복권, 개정 헌법에 심도 있게 반영돼야
2017년 08월 24일 (목)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미국에서 성공한 한 기업가가 있었다. 필자가 이 기업가를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독일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서 열린 기계 산업 전시회장이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이미 71세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말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플라스틱 사출기 성형공장으로 시작해 일찍이 캐나다와 미국에 화학공장 등 11개의 기업을 소유했고, 존슨 대통령 시절인 1964년에 최고 우수 기업인으로 선정돼 백악관으로 초청까지 받았던 DPM그룹의 창업자이자 GAIN technologies 사장을 지낸 Mr. Michael Ladney의 이야기다.
 
GAIN technologies 한국대표를 한 인연으로 몇 년 전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독일, 프랑스,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와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은 차갑고 전투적인 그가 의외로 상대에 대해 배려가 많고 섬세하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미국 플로리다 네이플(Florida Naples)에서 열린 신년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출국을 앞둔 2주 전 쯤 그는 필자의 키와 어깨, 허리 그리고 신발 사이즈를 알려달라고 했다. 신년 파티에 입장하기 위해서 남자들은 예복을 입어야 하는데 필자의 예복을 주문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신년 파티에 참석 후 경비행기로 바하마로 이동해 요트에서 며칠을 함께 보냈다. 휴가 중인데도 그는 사업 이야기를 좋아했고,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작은 수첩에 꼼꼼히 메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에게 메모는 일상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7세였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디트로이트(Detroit) 법률 사무소에서 특허 소송과 관련해 회의를 했는데 GAIN Technologies 측 중요한 증인 중에 특허 발명가인 Mr. Jim Hendry가 있었다. 당시 중병을 앓고 있던 Mr. Jim Hendry가 “내가 죽으면 이 재판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때 Mr. Michael Ladney 사장의 대답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그의 대답은 “걱정 말게. 자네 무덤에 핸드폰도 함께 넣어 줄 테니 잊지 말고 천국에서도 전화를 받게”라는 것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80대 초반이었다.

Mr. Michael Ladney 사장은 90세를 넘기고도 사업에 관여했다. 어느 날 필자가 이제 은퇴해서 여생을 유유자적하며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비록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섭섭한 표정으로 “나보고 여행이나 다니고 박물관에서 소일이나 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결국 그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경제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는데 Mr. Michael Ladney 사장은 경제활동에서 이를 실천한 사람이다.

필자가 대학과 인연을 맺으면서 지난 17년 간 각종 포럼 활동과 시민단체들의 세미나에 참석해 보면, 참석자들 중 다수가 은퇴자들인 경우가 많다. 전직 교수, 전직 고급 관료, 전직 언론인, 전직 장성 등 한때 이 사회를 주도해 가다 60대 초중반에 물러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들은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재능기부라는 이름으로 경제적 보상이 없는 봉사활동에 열성적이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일에 흥미를 잃어간다. 보상이 없으면 열정은 식기 마련이다. 심한 경우 좌절감에 분노하거나 괴로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존의 확인은 경제활동과 그에 따른 보상이라는 점에서 은퇴는 100세 장수시대에 두려움이 되었다. 은퇴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Mr. Michael Ladney 사장처럼 은퇴 없는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노년에도 경제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중견기업가는 물론 소규모 자영업자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 몇몇 특수연금 대상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기초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적은 연금을 받는 상황에서, 은퇴는 축복이 아니라 사실상 실업을 의미하고 노인 빈곤을 의미한다. 은퇴 후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족 공동체에 의한 노후보장은 해체되고, 사회 공동체에 의한 노후보장은 미비한 상황에서 대책 없는 현행 은퇴제도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청년실업 못지않게 은퇴 후 노년실업 문제도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중요 과제 중 하나다.

매사 시작이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하다. 끝이 좋으면 전체가 아름답다. 노후가 행복하면 한 개인의 전체 삶이 행복해진다. 이번 헌법 개정 과정에서 생명권·안전권·환경권·정보권 등 기본권 확산이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는데, 포괄적 의미에서 국민 행복권이 개정 헌법에 심도 있게 반영되기를 바란다.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경희 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 대학교 연구교수
- 국민 대학교 정치대학원 겸임교수(현)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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