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일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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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쿠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세계를 감동시키다
<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19)>70, 80대 고령의 나이에 데뷔…쿠바의 '살아있는 전설'
2017년 09월 07일 (목)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쿠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김선호 음악칼럼니스

* 캐리비언 블루

서러울 만큼 아름다운 쪽 빛 캐리비안 블루의 바다, 그리고 에메랄드 빛 파도가 반짝이는 곳,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간이 멈춰 버리고, 또 그 시간 속에서 마치 탈색된 듯한 파스텔톤으로 19세기의 색깔이 정지해버린 도시 하바나, 바람과 빛과 풍경이 잠들지 않는 정열의 대지, 거기 깃들어 있는 숙성된 영혼의 마음과 자유로운 열정의 음악, 그리고 순결한 이상과 낭만이 묻혀있는 진솔한 삶.

정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사실 필자는 아쉽게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온통 위에 언급한 그런 찬사 일색이다. 그러니 아무튼 그런 줄 알아야할 것 같다.

북회귀선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섬나라 쿠바를 표현하기에는 아직도 필요한 단어가 너무나 많다. 1492년 콜럼버스는 이 땅에 도착한 후

이 섬은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곳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이 아름다운 섬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 잔혹한 역사를 갖게 되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성취하기까지 긴 시간 압제에 신음해야 했다. 또한 자립을 이룬 현재까지도 고착된 사회주의 정책과 융통성 없는 경제 정책 등으로 오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국민들에게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엄격한 통제가 가해지는 피델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정책과 더불어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폭동이나 시민 저항운동이 없는 것도 참 별난 일이다. 혹자는 그런다. 위정자가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고 빈부의 격차가 거의 없이 다 같이 서민이며 그들 특유의 낙천성이 국민 전체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미국은 쿠바에 대해 계속해서 경제 제재를 하고 있으며 자국인의 쿠바 출국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쿠바를 찾는 관광객 중 가장 많은 비중을 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멕시코나 캐나다를 경유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아름다운 적국’ 쿠바로 향한다. 20년간 쿠바에 머물면서 <노인과 바다> 같은 대작을 집필한 헤밍웨이도 미국인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쿠바의 아름다움을 칭송해왔으며, 오늘날 쿠바는 여행자들에게 아직도 꼭 가보고 싶은 미지의 땅이요 대상이다. 2015년 미국과 쿠바는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한 때 양국 간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향후 여러 분야에서 회기적인 변화를 기대했었지만 트럼프 취임 이후 다시 양국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편 음악에 있어서 쿠바를 대표하는 음악은 아주 다양하고 또 역사가 깊다. 쿠바에서는 손, 단손, 맘보, 살사, 차차차 등이 경쟁하며 충실하게 기초를 다지며 내려왔다. 이는 아프리카 노예를 이용한 사탕수수 재배에서 기인하는 아프리카 음악, 그리고 스페인 각지의 민요, 무곡 등이 전해져 내려온 것, 또한 섬나라이면서 항구 도시가 많아 각국의 음악이 나그네처럼 섞이게 된 것 등으로 쿠바 음악은 아주 다양한 밑바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음악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쿠바 음악이라는 독특한 영역과 리듬, 그리고 정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정서와 리듬, 특성이 가장 잘 배어 있는 쿠바음악의 대표 음반을 하나만 들라면 주저 없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반을 들겠다. 이들이 밴드로 결성된 것은 1996년 즈음으로 그다지 오래된 그룹은 아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또 개별적으로도 각자의 활동을 통해 살아있는 전설 혹은 최고 중의 최고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들의 캐스팅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밴드의 다섯 멤버는 리더격인 콤파이 세군도(1907년생-2003년 사망, 보컬과 기타), 이브라임 페레르(1927년생-2005년 사망, 보컬), 루벤 곤잘레스(1919년생-2003년 사망, 건반), 엘리아데스 오초아(1946년생, 기타) 그리고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생, 보컬)'이다. 이들이 낸 음반은 다른 음반들과는 달리 수 십 년에 걸친 쿠바의 소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거장이라 칭송 받는 음악인들의 혼과 열정, 그리고 인생이 집결된 그야말로 완성도와 관련해선 최고의 음반인 것이다.

음반을 냈을 당시 이들의 연령은 가히 놀랄 만하다. 대략 70-80세의 고령이니까 말이다. 정말 나이만으로 본다면 과연 이들이 그렇게 영혼이 담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고 한 소포클래스의 말처럼 인생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하고, 또 그런 세월의 연륜과 경험이 가슴깊이 배어있는 음악을 꼽는다면 바로 이들의 음악을 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음반은 이후 1997년 미국 그래미상 '베스트 트로피컬 라틴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고, 1999년에는 빔 벤더스 감독이 이들의 음반 발매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제작했다. 이 다큐로 빔 벤더스 감독은 제34회 전미 비평가 협회 다큐멘터리상, 제25회 LA 비평가 협회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 쿠바 재즈 뮤지션, 프란시스코 레필라도(Francisco Repilado).ⓒ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콤바이 세군도(Compay Segundo)>

잘 차려입은 양복, 새하얀 중절모와 뿌옇게 내뿜는 색 깊은 시거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본명은 프란시스코 레필라도(Francisco Repilado). 콤파이 세군도는 1940년대 음악 활동을 하면서 얻은 이름이다. 1907년 11월 8일 쿠바 동부의 산티아고에서 스페인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쿠바의 전통 악기와 클라리넷을 연주하였고, 1920년대에는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하면서 보컬과 작곡에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쿠바의 여러 그룹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였고, 1939년부터는 12년간 클라리넷을 연주하였다. 또 1942년부터 13년간 로렌조 이에레주엘로(Lorenzo Hierrezuelo)와 듀엣으로 활동하면서 이 무렵 세군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1950년대 초부터는 아바나 중심가에 있는 쿠바 음악가들의 산실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에서 정기 공연을 하였고, 195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가진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쿠바혁명으로 카스트로(Fidel Castro)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주의 이념을 담은 포크 음악이 주류를 이룸에 따라 쿠바의 전통음악이 뒤로 밀려난 뒤, 세군도는 20여 년 간 담배공장에서 노동자로 지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 예전의 동료 음악가들인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Ruben Gonzales), 보컬 이브라임 페레르(Ibrahim Ferrer) 등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활동을 재개해 1996년 음반 ‘베스트 인 라이프 (The Best in Life)’를 발표하였다.

이듬해에는 클럽 이름과 같은 제목의 음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발표해 세계 언론과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300만 장에 가까운 음반이 판매되었고, 같은 해 그래미상을 받았다. 이 음반에 실린 노래 ‘Chan-Chan’은 지금까지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

   
▲ 쿠바 대표 재즈 뮤지션, 이브라힘 페레르.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이브라힘 페레르(Ibrahim Ferrer)>

새까맣게 탄 얼굴, 회색기가 도는 흰 콧수염, 일본말로 도리우찌라고 하는 헌팅캡을 쓴 홀쭉한 노인 이브라힘 페레르. 그의 목소리는 어찌 들으면 촌스럽다. 하지만 어딘가 알 수없는 매력이 어느 음 높이에서나, 어느 음절에서나 천천히 그리고 아주 깊게 넘쳐흐른다. 다시 말해서 아주 독특하면서도 진솔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보컬로서, 한번 페레르의 노래를 들으면 그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때문에 페레르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는다.

페레르는 1927년 2월 20일 산티아고의 어느 댄스 사교클럽에서 태어났다. 1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4살 때인 1941년 생계를 위해 산티아고의 지방 보컬그룹에 몸담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노래를 불렀다. 이어 밴드를 결성해 생일 파티나 결혼식에 불려 다니며 노래하던 중 1950년 알론소가 이끄는 밴드의 전속가수가 되면서 전업 음악가가 되었다.

이때부터 쿠바의 유명한 보컬그룹의 객원가수로 활동하였고, 1959년에는 알론소의 밴드와 함께 아바나로 진출하였다. 그는 뛰어난 재즈적 감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쿠바 혁명 이후 재즈는 부르주아의 음악으로 외면당했고,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음악이 주요 장르로 떠올랐다.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아바나 구시가지의 낡은 아파트에서 적은 연금과 구두닦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996년 미국인 레코딩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1930~1940년대 쿠바 음악가들의 산실이었던 사교클럽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과 같은 이름의 보컬그룹을 결성하였다. 이 클럽은 쿠더가 1950년대 전후에 활동하던 고령의 음악가들을 찾아내 구성한 그룹으로, 페레르는 1997년 어느 날 아바나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제작자의 눈에 띄어 이들과 합류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페레르는 맨 처음 쿠더의 제안에 대해 “또 다시 음악을 하다가 좌절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의 말로 거절하였다. 그리고 계속된 제의에 페레르는 “그러면 앞서서 할 일이 있다. 집에 가서 먼저 목욕을 하고 가야지 이 모습으로는 안되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참 소박하고 인상적이었다.

페레르는 이 클럽에서 볼레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도스 가르데니아스 (Dos Gardenias : 이 노래는 멤버 중의 홍일점인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대표곡이기도 하다)’로 단번에 스타가 되었다. 아무튼 페레르는 1999년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 뒤 다른 멤버들과 함께 쿠바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2000년에는 라틴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 예술가상을 받았고, 2004년 영국의 BBC 라디오가 주최하는 '월드 뮤직 어워드'에서 미 대륙 최고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며 왕성한 음악활동을 선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듬해인 2005년 8월 6일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페레르의 음반은 꽤나 많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 고른다면 ‘The Essential Ibrahim Ferrer'를 들 수 있다. 제목 그대로 그의 알맹이 노래만 모아서 낸 음반으로, 그가 죽은 1년 후인 2006년 그간 발표한 많은 곡들 중에 CD 2장 분량을 선별하여 발매한 음반이다.

   
▲쿠바 재즈뮤지션 오마라 포르투온도ⓒ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오마라 포르투온도(Omara Portuondo)>

1930년 10월 19일 아바나에서 쿠바의 국가대표 야구선수인 흑인 아버지와 부유한 스페인계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0대 중반에 언니와 함께 유명한 카바레 트로피카나에서 댄서로 데뷔한 뒤, 주말에는 아메리칸 재즈 스탠더드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때부터 아메리칸 재즈의 영향을 받은 쿠바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인 '필링(feeling)의 피앙세 미스 오마라 브라운'으로 불리며 쿠바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하이디, 부르케, 세카다와 함께 피아니스트 디에스트로가 이끄는 여성 보컬 '콰르테토 라스 다이다'에 몸담아 15년 동안 활약하였다. 1959년에는 첫 솔로 음반 ‘마히아 네그라 (Magia Negra)’를 발표한 뒤, 동료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애미에서 활동하였다.

1960년대 초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해 쿠바와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쿠바로 돌아와 공연과 음반 작업을 하였다. 쿠바혁명 후 20여 년 간 쿠바 전통음악이 뒤로 밀려나고 포크송이 주류를 이룰 때도 포르투온도는 계속 쿠바 국민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 쿠바풍의 재즈가 빛을 보기 시작하고, 마침 미국 레코딩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쿠바를 방문해 1996년 쿠바 음악가들의 산실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을 재개하자 이에 합류하였다. 포르투온도는 5명으로 이루어진 이 보컬의 유일한 여성 멤버로, 콤바이 세군도와 함께 볼레로 곡인 ‘베인테 아노스(Veinte Anos)’를 불러 이듬해 그래미상을 받았다.

포르투온도는 이후 각국에 솔로 공연 여행을 다녔고, 한국에도 세 번이나 다녀갔다(2005년 11월 5일 연세대학교 대강당 공연과 2007년 5월 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공연, 2008년 10월 8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공연).

한창 투어를 다녔을 당시 2004년에는 가장 인기있는 14곡을 묶어 ‘Flor de Amor' 라는 음반을 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이미 그의 나이 70이 넘은 상태에서 이 곡들을 다시 불러서 노래의 흐름도 잘 맞지 않고 호소력도 사라지고 목소리도 이제는 그의 목소리가 아닌 듯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는 시기도 이미 환갑(還甲) 진갑(進甲) 다 지났다는 의미이다. 필자가 느끼기로는 이 음반은 음반업자들이 장사꾼적인 관점으로 만든 음반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음반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것은 ‘Omara Portuondo - DOS GARDENIAS' 라는 표제의 음반이다. 이 음반은 그녀가 한창 때 녹음한 오리지널 음원을 가지고 만든 음반이다. 놀랍게도 쿠바의 디바다운 면모가 그대로 나타나는 명반 중에 명반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의 대부분이 1970-80년대에 녹음된 것이기 때문에 목소리나 창법, 기교가 탁월하게 살아있고,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DOS GARDENIAS' 역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결성 당시인 1997년에 녹음한 것이다. 이 때만해도 포르투온도의 경륜과 매력이 창법 속에 그나마 살아 있어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포르투온도의 대표곡 'DOS GARDENIAS'의 가사 내용을 덧붙인다.

 

두 송이의 치자 꽃을 당신께 바칩니다

여기에 제 뜻이 담겨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저의 삶을 바쳐

이 꽃을 정성껏 보살펴 주세요

당신과 저의 교감이니까요

두 송이의 치자 꽃을 당신께 바칩니다

저의 뜨거운 입맞춤을 담은

이 입맞춤은 당신을 향한 저의 입맞춤 입니다

누구와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입맞춤

이 꽃들은 당신 곁에서 호흡하며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과 대화를 나눕니다

당신에게 믿음이 있다면 귀 기울여 보세요

사랑해요 라는 꽃들의 속삭임을

그러나 해가 저물고 치자 꽃이 시들어 버린다면

저를 떠난 당신의 마음을

꽃들이 먼저 아는 까닭입니다.

 

 
 

김선호 / 現 시사오늘 음악 저널리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 월드뮤직 에세이<지구촌 음악과 놀다> 2015
- 2번째 시집 <여행가방> 2016
- 시인으로 활동하며, 음악과 오디오관련 월간지에서 10여 년 간 칼럼을 써왔고 CBS라디오에서 해설을 진행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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