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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오늘] 정동극장 무용극 <궁 : 장녹수전>, 생존·권력 향해 몸부림치는 3色의 향연
2018년 04월 09일 00:17:57 김기범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 궁에 입궐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장녹수의 모습 ⓒ 정동극장

조선시대 연산을 지배했던 장녹수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우리에겐 너무나 식상한 소재다.

빈번하고 편한 이야깃거리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편견을 손쉽게 안겨주는 법이다.

아무런 고민이 없는 서사와 뻔한 결말, 그리고 적절한 교훈은 세파에 영합해 무의미한 첨삭만 가해진다.

지난 5일 정동극장에서 첫 막을 올린 무용극 <궁 : 장녹수전>은 어쩌면 틀에 박힌 우리의 관념에 작지만 세밀한 균열을 낼지도 모른다.   

   
▲ 녹수의 장고춤에서 보듯 <궁 : 장녹수전>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현란한 색상이다. ⓒ 정동극장

무언(無言)은 미약한 듯해도 그만큼 다채로운 힘을 내뿜는다. 여러 가지 의미를 양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희대의 악녀요, 요부(妖婦)로 알려진 장녹수의 모습은 말없이 몸짓으로만 표현되지만, 끝내 관객의 깊은 내면을 파고든다.

우리가 몰랐던 장녹수의 모습, 그저 기예를 팔아 살아남으려 했던 한 여인의 진정어린 몸부림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이면을 선사한다.

살기 위해 권력을 탐하는 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와의 다툼,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낀 왕(王)의 비애와 피해의식.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네 삶이 아닐는지.

미처 몰랐던, 아니 동조하기 싫었던 폭군과 요사스런 기녀의 삶은 감춰지길 바랐던 우리 인간의 참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모습들을 <궁 : 장녹수전>은 색(色)이란 단어가 가진 전혀 다른 세 가지 의미를 통해 그려낸다.

   
▲ 숙용 장녹수의 모습에선 피할 수 없는 관능미가 뿜어져 나온다. ⓒ 정동극장

<궁 : 장녹수전>이 자랑하는 첫 번째 색은 바로 관능(官能)이다.

무대 장면마다 고혹적(蠱惑的)인 전통 의상을 갈아입으며 흐느적거리는 장녹수의 용태(容態)는 너무나 고와서 미혹된 이들은 저절로 황홀경(恍惚境)에 빠진다.

비단 주연인 장녹수뿐만 아니라, 연기의 합(合)을 이루는 남녀 출연자들 모두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자태를 드러낸다. 군무(群舞)를 이루는 한량들의 춤사위조차 여성 못지않게 섬세하고 매혹적이다.

두 번째 색은 말 그대로 화려한 '색상' 그 자체다.

매 무대마다 휘몰아치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는 현란하거나 음침한 조명에서 발산되는 빛이 받쳐준다.

특히, 연산과 장녹수의 소용돌이치는 격정은 때로 핏빛과도 같은 붉은 색을 띠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권력을 향해 치닫는 개인의 본능과 일탈이 안타깝지만, 웅장함까지 느껴지게 하는 것도 바로 인물의 배후를 지배하는 빛깔이다.

마지막 색은 바로 존재다.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관념으로나마 자신의 실체를 알린다.

<궁 : 장녹수전>은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상징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 드라마의 중심엔 역시 춤이 있고, 연기가 있다. 이들의 유기적 연결은 조선의 기방·궁중·민속문화를 보여주며, 한 줄 대사 없이 무용으로만 우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파멸의 끝을 향해 치닫는 녹수와 연산 ⓒ 정동극장

한 여자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음모, 질투에 관심을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단 한 예인(藝人)이 살아남기 위해 절대 권력으로 떨어져 나뒹굴다 결국 파행(跛行)에 접어드는 과정은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의 접점을 만들어낼 것이다.

<궁:장녹수전>은 12월 29일까지 정동극장 상설공연으로 오후 4시마다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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