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靑, 5당 협의체 제안 속 모순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5당 대표와의 회동을 공개 제안했다. 5당 대표와 여(여당)·야(야당)·정(정부) 협의체 설치를 논의하고, 남북문제 및 긴급한 민생 현안에 국한해 대화의 물꼬를 터보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회동은커녕 여야정 협의체 설치마저 요원(遙遠)해 보인다. 한국당은 “우리를 들러리로 세우지 말라”이라며 ‘1대1 영수회담’을 역으로 제안하고 나섰다. 또한 여야정 협의체에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의 원내정당)만 포함해야 한다며,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참여를 제한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당의 ‘독대 아니면 안 해’ 식 막무가내 태도는 일견 청와대와의 대립각을 세워 존재감만 내세우려는, 철없는 ‘힘겨루기 한판’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에도 모순된 점이 분명히 존재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이날 “국정 전반으로 의제를 넓히는 상황 하에서 5당 대표 회동을 제안을 드렸던 것”이라며 “처음 대통령이 제안한 취지와 맞지 않다”고 3당으로 축소된 회담을 거절했다.
의제를 넓히는 것.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것. 즉, 국회 내 다양성을 최대한 고려하겠다는 것. 청와대가 ‘5당 협의체’를 고집하는 이유다.
여기서 문 대통령이 말하는 5당이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의석 순으로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다. 이전 대통령들의 회담이 ‘원내교섭단체’라는 확고한 기준을 지켜 진행됐던 것에 비해 독특한 행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세 차례의 원내대표 회담을 했다. 이때 매번 ‘커트라인’은 정의당이었다. 국회에서 14석을 차지하고 있는 평화당과 6석을 가지고 있는 정의당은 20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가 되진 못했지만, 문 대통령의 ‘다양성 수비범위’에 늘 포함됐다.
그런데, 민중당과 대한애국당은?
대중들에겐 이름도 생소한 민중당과 그나마 ‘박근혜 석방 집회’로 알려진 대한애국당. 두 당은 20대 국회에서 딱 1석씩 차지하고 있는 원내 소수정당이다.
대한애국당 소속 조원진 의원은 4만3817표를 받고 ‘보수의 표밭’이라 불리는 대구 달서구병 지역에서 당선됐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정치 스펙트럼’을 나눈다면 가장 오른쪽에 놓일 사람일 테다. 그는 현재도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과 대북 강경정책을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 즉 ‘극우 보수’의 중심에 서 있다.
민중당 소속 김종훈 의원은 5만 2396표를 받고 울산 동구에서 당선됐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공장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조선업이 침체되고 지역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김 의원이 당선됐다. 그는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치 부활을 제창하며 “보수 정권의 노동개악과 농업 말살에 맞서 싸우겠다”고 주장했다.
극단적 보수와 진보, 두 당이 대표하는 국민은 약 10만 명이다.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지방의 중소도시들이 ‘인구 10만 명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다양성을 위해 5당 협의체를 고집하는 청와대가 이 10만 명을 대표하는 두 정당을 배제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와 관련해 민중당의 이은혜 대변인은 지난 1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소수정당의 의석수가 적어서, 혹은 극우 또는 진보로 이념화해서 배제했다”며 “지금 국민들은 (선거법 개정안 포함한) 패스트트랙에 대한 열망이 높다. 여기엔 정당의 다양한 정치활동을 보장했으면 좋겠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들어가 있는데, 이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다양성 컷오프' 속 확증편향
그렇다면 왜 청와대는 두 정당을 배제했을까? 왜 두 소수정당을 협의체에서 ‘컷오프’한 것일까?
이 대변인은 이에 대해 “청와대가 정확한 답변을 준 적은 없다”면서도 “한 축에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있으니까, 보수엔 한국당이 있으니까, 멋대로 스펙트럼화해서 양쪽 끝을 잘라내는 게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결국 청와대의 판단에 의거하여 극우와 극좌에 가까운 의견은 ‘다양성’으로 품을 수 없도록, 다양성의 범주를 ‘솎아내기’ 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폭넓은 의제, 다양한 의견 교환을 명분으로 비교섭단체인 평화당과 정의당을 협의체로 부르면서, 나머지 두 정당을 소외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처럼 보인다.
여기에 현 정국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한애국당과, 정부와 갈등 중인 노조 측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민중당은 현 여당과 청와대 정국 구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속내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 청와대가 부른 평화당과 정의당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민주당 측에 힘을 쏟았던 야당들이다. 여기에 바른미래당까지 가세하면 현재의 반(反)한국당 구도, 즉 4 대 1 구도를 연장시킬 수 있다. 한국당이 무슨 말을 해도 인자한 지도자에 맞선 ‘투쟁 아닌 투정’으로만 보인다. 지금도 야3당은 황교안 대표가 ‘5당 회동’을 거절하자마자 “몽니를 부린다”, “땡깡 정치”라며 비난을 퍼붓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양성의 범주를 정권을 잡은 청와대가 정한다면, 그걸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권력에 의해 선택받은 다양성은 더 이상 다양성이 아니다. 권력에 의해 선택받은 소수 의견은 더 이상 소수 의견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선호 혹은 명분을 뒷받침해주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려는 과정에 불과하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5당 협의체 근거로 주장하는 ‘다양성’은 원내 모든 정당을 포함하지 않는 한, 명분을 위한 액세서리일 뿐이다.
청와대의 ‘다양성 솎아내기’는 어쩌면 효율적이다. 패스트트랙으로 공전 중인 국회에는 시급한 민생현안이 산적(山積)해있다. 한시가 급한데 그 자리에서 “XX는 빨갱이”라고 한물간 색깔론을 주장하고 있을 거라면 빼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와대의 사고(思考) 과정에 있어 우려를 표하고 싶다. 패스트트랙·공수처 등과 관련해서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당을 우선 포용하는 사고는 의도적일 수도,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후자에 가까운 사고 습성을 ‘확증편향’이라고 부르며 경계한다.
민중당 이 대변인은 본지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대변하고 있는지 보지 않고 그런 식으로 잘라내고 분리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다양성 컷오프’에 어떤 의도 또는 무의식이 숨어있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전자든 후자든, 다양성이 정권의 관대함을 보여주는 액세서리로 작용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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