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건국처럼 선진국 기틀 마련한 업적 조명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이윤혁 기자,유경민 기자]
백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그 앞의 것은 퇴색되는 것일까. 故거산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완전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하나회척결,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 고위공직자재산공개, 초고속정보통신, 사회보장기본법제정 등 사실상 제2의 건국이라 할 만큼 오늘날의 선진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IMF라는 오점으로 그 공을 온전히 조명 받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느덧 YS 서거 9주기 해를 맞았다. 지난 2015년 11월 22일, 24절기 중 첫눈이 온다는 소설 즈음에 YS는 소천했다. 국가장으로 치러지던 국회도 눈발로 가득했다.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살이 에일 정도로 추웠다고 회상하고는 한다. 온난화 때문인지 갈수록 겨울 같지 않은 해들이 지나감에도 YS 서거일이 다가오면 어째 매번 추울까 싶다. YS 공이 온전히 조명 받게 되면 날씨도 풀릴까.
세상을 떠난 그해 YS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며칠 사이에 마치 다른 세상이 돼버린 것처럼 아버님에 대한 헌사가 가득합니다. 마땅히 아버님 생전에 받으셨어야 할 너무 늦어버린 찬사에 그저 가슴이 미어집니다”라고 한 바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유독 저평가돼온 상황에서 정작 작고하고 나서야 3만 7000여 명이 빈소를 찾아 추모할 만큼 뜨거운 헌사를 받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던 것이리라.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YS 서거 9주기 추모식에서는 지금의 우리들이 그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고, 그 공을 계승하겠다는 일성들이 문민정부 주요 인사와 정부, 국회 및 각 당, 각계 대표 등의 입을 통해 되새겨졌다.
전보다 추모객들의 발길은 줄어들었지만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로 확장하며 대한민국 시스템을 발전시킨 YS 업적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는 점에서 보면 하늘에서 위로 받았을까.
백발이 성성한 추모식 현장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김덕룡 추모위원장과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김무성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전 새누리당 대표), 김봉조 민주동지회 회장, 문정수 전 부산시장, 김기수 YS 대통령 수행실장,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손학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인제 전 경기지사 등 상도동계와 문민정부 인사들이 자리를 지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 그룹인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그리고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장도 함께했다.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사)김영삼민주센터, 김영삼대통령기념사업회, 민주화추진협의회 등 김영삼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모위원회 주최의 추모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대한민국 바꾼 자랑스러운 대통령”
상도동계 좌장 김덕룡 추모위원장은 추모식을 여는 인사말에서 “이제야 김영삼 대통령이 어떤 분이고 또 어떻게 이 나라를 바꿔놓고 가셨는지 홀연히 깨닫게 된다”며 추모사를 낭독해 갔다.
“한 사람의 크기와 깊이는 그 사람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드러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오늘 김영삼 대통령을 새삼스럽게 돌아보는건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김영삼 대통령을 되새기게 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1987년을 기점으로 삼고 있지만 군사, 정치, 문화를 청산한 진정한 민주화는 1993년 2월 25일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가 문민정부 30주년, 민주화 3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제서 김영삼 대통령이 어떤 분이고 또 어떻게 이 나라를 바꿔놓고 가셨는지 홀연히 깨닫게 됩니다. 1993년 2월 25일은 단순히 14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앞에 두고 대한민국 민주화 추진하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문민정부의 탄생과 이 땅의 민주화가 없었더라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불가능했으며 로제의 ‘아파트’가 온 세계인의 사랑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더욱 그리운 것은 당당한 정치인으로서의 그 자세입니다. 1979년 뉴욕타임스 회견과 관련해 유신 정권에 의해 의원직을 제명당했을 때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길을 선택하겠다’고 하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그 원인이야 개발 독재의 속살이지만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은 우리 정부에 있다며 깨끗이 국민 앞에 사과했습니다. 단 한 번도 책임을 호도하고 회피하거나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묘비에는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오늘을 이끄는 여야 정치인이 과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튼튼한가 묻고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을 놓고 저는 감히영면하시라는 말보다는 당신의 지극한 애국심과 열정으로 이 나라를 지켜달라는 호소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YS에 대해 “문민정부 기간 국민은 개혁을 향한 대통령을 지지했다”며 추모사를 이어갔다.
“긴 고난과 희생의 시간 동안 변함없던 대통령님의 결기에 찬 모습을 기억합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선 투사이자 개혁가였습니다. 대통령님은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현실에 뿌리내릴 기틀을 세우셨습니다. 국민은 개혁을 향한 대통령님의 결단과 추진력을 지지했고, 그렇게 우리는 문민정부와 함께 민주주의 국가로 한걸음 내디뎠습니다.
민주화라는 시대,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건 투사였지만 정치는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선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국민을 늘 두려워하라 당부하셨고, 국민이 아니라고 하는 일은 사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통령 재임 시절 가장 어둡고 괴로운 순간에도 의회 정치에 대한 믿음을 버린 적이 없다고 하신 대통령님은 타협이 없으면 정치가 없는 것이며 정치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라 안팎으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님의 의지와 정신을 새기겠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문민정부 출범 때가 또렷하게 기억난다며 이후 세상은 확연히 달라졌다는말로 YS 업적을 돌아봤다. 또, “국민의힘은 YS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했다.
“영원한 민주주의자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9년이 지났습니다. 대통령의 삶은 그야말로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투쟁은 오롯이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시대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셨습니다. 그 어떤 고초에도 굴하지 않으셨고 그러면서도 멋진 품격을 지키셨습니다. 대도무문이라는 말처럼 ‘옳은 일을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라는 삶 그 자체를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첫 발걸음을 떼셨고, 진정한 민주주의도 직접 해내셨습니다.
제가 대학생 1학년 때 세상이 바뀌는 것을 어린 마음에 느꼈던 그 감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세계화라는 큰 흐름을 포착한 선견지명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 국민의힘은 이런 김영삼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정당입니다. 국민의 눈높이의 맞는 변화와 혁신을 김영삼 정신에 맞게 과감하게 추진하고 그 과정에 모두가 함께하겠습니다.”
정부를 대표해 추모사를 전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YS에 대해 “평생을 바쳐 이뤄낸 대한민국의 토대를 개혁은 대한민국의 토대가 됐다”고 밝혔다.
“김영삼 대통령님은 민주주의의 거산이셨습니다. 대도무문의 정치 철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평생을 바쳐 이뤄낸 민주화와 국가적 개혁은 세계 인류 국가, 대한민국의 토대가 됐습니다. 제14대 대통령으로서 지향하셨던 신한국창조와 세계화 등 오늘날 선진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고,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 공개, 정치자금법 개정 등 깨끗하고 투명한 국가를 위한 담대한 개혁은 국민이 주인인 반듯한 나라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또한 34년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를 전면 실시하여 주민이 중심이 되는 자치분권의 시대를 활짝 여셨습니다. 정직한 언행일치의 삶을 걸어오신 대통령님께서는 퇴임 후에도 이 나라의 어른으로서 귀감이 되어 주셨습니다.오늘 이 자리를 통해 대한민국의 큰 발전을 이루어내신 대통령님의 열정과 노력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대통령께서 소망하시던 통합과 화합,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가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YS에 대해 “문민정부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억하며 추모사를 읊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평생을 바쳐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지켰습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문민정부의 초석을 놓았고,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와 같은 개혁을 통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정을 강화하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당시의 신념은 시대를 초월해 단단했고, 민주화를 향한 험난한 여정에서도 물러섬 없이 굳건했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한마디는 김영삼 대통령님의 굳센 의지와 불굴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심각한 위기입니다. 그러나 잠시 파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시 진보할 것으로 믿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보여준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굳은 의지를 새기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강력한 개혁, 깨끗한 대통령 약속 지켜”
손상률 목사는 종교의식을 통해 설교와 기도를 준비했다. 손 목사는 크리스천인 YS가 생전 어려운 고비마다 기도로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고 추억했다.
“(YS) 대통령께서는 성경 구절 중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는 시편 127편 1절을 자주 되뇌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정국을 이끌면서 어려운 순간마다 늘 기도한 분입니다. 주일마다 예배할 때는 전국 각 지역의 목사님들과 만나기도 하고 늘 하나님께 감사를 표한 분입니다. 청와대에 있을 때도 가족 행사마다, 김기수 수행실장과 함께 기도하셨던 것을 잊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내 의로 너를 지키리라’ 하는 성경 구절을 되새겼던 분입니다….”
뒤이어 YS 모습이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됐는데 8분여 남짓 동안 추모객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다. 먼저 영상은 YS가 1993년 2월 25일 14대 대통령에 취임하던 때로 첫 포문을 열었다.
“친애하는 7000만 국내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저는 신한국 창조의 꿈을 가슴 깊이 품고 있습니다. 신한국 보다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입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입니다. 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공동체입니다. 문화유산, 인간의 품위가 존중되는 나라입니다. 갈라진 민족이 하나 되어 평화롭게 사는 통일 조국입니다.”
- YS, 1993년 2월 14대 대통령 취임식 중
다음으로 YS 생애가 찬찬히 소개되며 시대별 굵직한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1927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영삼. 섬마을 소년은 책상머리 맡에 미래의 대통령은 김영삼이라 써 붙이며 정치 지도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1951년 정계 입문하여 최연소 최다선 의원 등 기록들을 쏟아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김영삼이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바른 길, 정의에 입각한 일, 진리를 위하는 길, 자유를 위하는 일이면 싸우렵니다. 싸우다가 쓰러질지언정 싸우렵니다.”
-YS, 1969년 초산테러 당시 국회 연설 중
“저는 그때 독재의 회유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겠다며 의사당을 떠났습니다. 그때 국회의사당을 나오면서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YS, 1974년 10월 4일 유신 독재 저항 연설 중“나는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나에게 준 이 길이 결코 영광이 아니요 십자가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 YS, 1974 신민당 총재 연설 중‘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 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다 하는 것을 예언해 두는 것입니다.’
- YS, 1979년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 중‘날 감금할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을, 마음을 전두환이가 뺏지는 못해.’
- YS, 1995년 2월 가택연금 당할 때 발언 중
“1979년 온몸으로 유신 정권에 저항하다 의원직을 제명당했지만 1983년 정치범 석방과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예고하며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였습니다.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YS가 1979년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 이철승에게 내줬던 신민당 총재직을 다시 되찾으면서 제3공화국은 말로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고, 유신에 맞서며 신민당 전당대회 총재가 돼 더욱 가열찬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당시의 YS 발언부터 신군부 독재에 저항했을 때의 어록들이 영상을 통해 생생히 전해졌다.
마침내 1984년 YS-DJ 민추협 구성, 87년 6월 직선제 쟁취, 1990년 3당합당 등을 통해 문민정부를 출범한 YS는 대선 기간 “강력한 대통령이어야만 합니다. 깨끗한 대통령이어야만 합니다” 했던 것처럼 집권 기간 전광석화처럼 강력하게 전 분야를 개혁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의 기틀을 다졌다. 또 고위공직자 중 가장 먼저 재산을 공개하며 윗물 맑기 운동을 실천했으며 퇴임 후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킨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다.
“선구자적인 지도자 YS 그리워”
추모곡 시간에는 김성경 거제시 홍보대사가 단상에 올라 YS가 좋아했다는 ‘메기의 추억’을 불렀다. 또 가곡 ‘선구자’를 통해 선구자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개척했던 YS를 추모했다. 이어서는 주요 참석자들의 헌화와 분향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유족을 대표해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과 장손 김성민, 손자 김인규 대통령실 행정관이 먼저 헌화와 분향을 한 가운데 김덕룡 위원장, 우원식 의장, 한동훈 대표, 이상민 장관, 박찬대 원내대표, 황운하 원내대표(조국혁신당), 허은아 대표(개혁신당), 전병헌 대표(새로운미래당), 주한외교공관 대표 합동 등의 순으로 YS 추모 사진 앞에 순결한 국화가 놓여졌다. 주호영 국회부의장, 나경원 박정하 유상범 박성중 조정훈 한지아 의원 등 국민의힘 현역과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이 지금의 국민의힘 뿌리인 YS를 추모했으며 대통령실에서는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 김명연 대통령실 정무1 비서관, 정승연 대통령실 정무2 비서관이 합동으로 헌화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윤남식 5‧18 공로자회 회장, 양재혁 5.18 유족회 회장, 조규현 5.18 부상자회 회장, 원순석 5‧18 기념재단 회장 등이 국화꽃을 들고 YS 앞에 선 점이 의미를 남겼다. YS는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책임자 처벌에 나선 유일한 대통령이었는데, 그런 점들이 5‧18 관계자들의 가슴에 되새겨진 듯 보였기 때문이다. 또, 故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씨도 헌화하며 연신 겸손한 모습으로 식을 경청했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유족을 대표해 마무리 인사를 가졌다. 김 이사장은 문민정부 임기 말 정치적으로 타깃이 된 대통령 아들이라는 이유로 한보 사태와 관련해 억울한 고초를 겪은 바 있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해온 그는 요즘 정치에 대한 단상을 전하는 한편 9년 전 YS를 떠나보낸데 이어 지난해 별세한 故손명순 여사를 떠올리며 인사말 마지막에 목이 잠겼다.
“9년 전 오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그날 마음까지 유난히 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는 어머니께서 아버지 곁으로 떠나시고 처음 맞는 추모라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요즘 정치 뉴스를 절대 보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치가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우리 국민은 언제나 희망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견디고 이겨나간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엄혹했던 군사정권 치하에서도 결코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진정한 의회 민주주의자였습니다. 극단적인 분열에서도 과감한 용기와 결단으로 감히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신 선구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지금 전쟁을 방불케 하는 오늘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면서 항상 미래를 내다본 아버지의 탁월하신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도 너무나 그립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의 정치 역정을 통해 보여주셨던 대화와 타협, 용기와 결단,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오늘의 정치가 이어받아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주기를 정말 간절히 소망합니다.”
추모식은 상도동계 인사인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조총 발사와 묵념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YS와 민주화 대장정을 함께한 민주동지회, 민주산악회 원로들은 단체버스를 타고 대통령 묘역으로 이동했다. YS 묘역은 현충원 끝자락 언덕배기에 있다. 이제야 비로소 그리운 YS와 민주화, 문민정부 동지들이 오롯이 마주보는 순간이었다. 차례차례 분향과 헌화를 하며 묵념을 하는데 저마다 마음속으로 YS를 그리고 있을 듯싶었다. 헌화를 마치고 내려오는 김무성 민주센터 이사는 “지금 하늘에서 보고 계실 YS가 천둥번개와 같은 소리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며 정치권 전체를 향해 나무라고 계실 듯하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한편, 대통령 묘소 참배를 하면서는 러시아를 대표해 드미트리 쿨킨 부대사관도 끝까지 함께하며 식을 엄수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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