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법계·학계 등에서 줄을 잇고 있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은 18일까지 서명할 변호사 380여 명을 모집했다. 19일엔 전·현직 교수 2100여 명의 시국선언도 예정됐다. 시국선언(時局宣言)의 사전적 의미는 현재 당면한 국내·국제 정세에 대한 견해로, 보통 사회적인 혼란 등을 비판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시사오늘>이 역대 주요 시국선언을 살펴봤다.
시국선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60년, 4·19 혁명과 함께했던 교수들의 시국선언이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규탄 시위와 이에 대한 탄압은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혁명 후 4월25일, 전국 대학교수 대표들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서울시가를 행진했다. 이는 전국적인 시민들과 학생들의 큰 호응과 지지를 불렀고, 결국엔 이승만 정권의 막을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러한 시국 선언은 박정희정부 시기와 12·12 사태 때에도 산발적으로 이뤄지다가, 1986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규모의 시국선언이 다시 등장했다. 직선제 촉구 시국선언은 3월 28일 고려대학교 교수 28명의 직선제 개헌 요구하는 시국 선언발표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교로 확산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1987년까지 이어졌으며, 종교계가 함께 대거 참여하며 6월 항쟁과 직선제 쟁취에 힘을 보탰다.
2000년대 들어서 전국적이고 학계, 종교계가 모두 참여하는 시국선언은 보기 어렵게 됐다. 대신 특정 단체나 집단별로 다양한 시국선언이 뒤를 이었다.
2006년 한미 FTA 졸속추진을 반대하며 농업계를 중심으로 시국선언이 이뤄진 바 있고, 2009년에는 용산참사 해결 촉구 등을 고리로 삼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학계 등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2013년엔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규명 요구, 2015년엔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이 이뤄졌다.
이후 다시 대대적인 시국선언이 등장한 것은 2016년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의혹 규명을 요구한 시국선언에 이어, 일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초대형 사건이 터지며 학계·종교계 등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시민단체에 이어 10월 26일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시작으로 11월 2일까지 100여개의 대학교가 시국선언에 참여했으며, 종교계도 천주교·불교·기독교 모두 일제히 입을 모아 국정농단에 항의하는 시국선언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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