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얼마 전, 회사 직원 하나가 나를 찾아와 할 말이 있단다. 우리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6년을 보냈고 열심히 일하며 이래저래 고생도 많았던 친구였다. 그리고 내게는 술친구이기도 해서 마음도 잘 통했는데 남 몰래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섭섭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새로운 기회를 축하해 줄 수밖에.
그 친구는 최근 들어 등산의 맛을 차츰 알아가고 있다. 거의 매주 혼자서 또는 지인들과 근교에 있는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내친김에 송별 산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또 다른 후배 직원도 합류하기로 하면서 처음으로 우리 회사 사람들과 산행 약속을 잡았다.
서울 관악구는 원래 영등포구였다. 1973년 영등포구가 분구됐는데 관악산(632.2m)의 이름을 따서 새로운 관악구가 탄생한 것이다. 관악산은 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 가평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도의 명산을 일컫는 경기 오악(五嶽)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산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기괴하게 생긴 암봉이 많다. 육봉능선과 팔봉능선은 어지간한 담력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하지만 산 자체가 접근성이 좋고 무리하지 않는 코스를 선택해 가볍게 산을 탈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만나서 산을 오르다가 준비해온 음식으로 아침을 함께 먹고서 단풍을 구경하는 마실 산행을 하기로 했다.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11번 출구에서 만나 과천향교를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오르막이 좀 있긴 하지만 편했다. 그렇게 사부작사부작 산길을 오르다 오른쪽 편에 있는 가파른 언덕바지로 올라가 한적하고 너른 바위에 터를 잡고 준비해간 편육이며 라면 등을 꺼냈다.
관악에도 가을이 깊어 있었다. 관악산 정상부는 암봉들과 어우러진 가을 단풍이 절정이었다. 회사를 곧 떠날 후배는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다. 우리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는 참으로 격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뜻하지 않았던 이혼의 아픔으로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을 했다. 거기에 이제 갓 돌을 지난 아이를 마음껏 보지도 못하고 정해진 날에만 볼 수 있는 것도 애가 터지는 노릇이었다. 인연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그리움으로 그의 심장에는 그렇게 상처가 났다. 그렇지만 결국 일에 몰두하며 자신을 추슬러갔다. 후배는 폭풍 같았던 지난 시절의 사연을 이제는 가을 햇살만큼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털어놨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우리는 다시 산행을 시작해 연주암에 도착했다. 연주암에도 오색 찬연한 단풍잎이 드리워져 있었다. 산을 걷다 들르는 산사에서의 휴식은 언제나 다정하고 편안하다. 불자인 후배는 법당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 뒤 관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마땅한 그늘이 없지만 우리는 햇살을 피하지 않았다. 시원한 음료를 파는 좌판 상인이 있길래 우리는 막걸리를 하나 사서 정상주라며 건배와 함께 시원하게 들이켰다.
관악산의 정상은 연주대다. 특히 10여 개의 거대한 창(槍)을 모아 세워둔 것 같은 모양은 관악산을 상징하는 절경이다. 산꼭대기에는 우리나라 기상청 레이더 시설이 있고 각 방송사의 방송송신시설도 암봉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처음에는 그러한 시설물이 왠지 도드라져 보였는데 자꾸 보니 이곳 산세에 자리를 제법 잘 잡은 듯도 하다.
우리는 사당역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길은 산책로처럼 편하다. 정상 바로 밑, 겁이 났던 낭떠러지 길에는 튼튼한 계단이 놓여 있어 지금은 안전하다. 하산하면서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이날도 단풍이 흐드러진 정상을 뒤돌아보며, 서울 도심을 향해 그대로 뻗어내린 관악의 산길을 따라 우리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누군가와의 인연이 깊어지면 언제나 내 마음은 요동을 쳤다. 그러다가 정작 나를 잃고 그 인연까지 잃어버리곤 했던 것 같다. 인연이 다하면 마음도 다하고 그 요동도 멈추었으면 좋겠는데,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관악산에도 지난여름 폭풍우가 몰아쳤을 것이다. 태양과 나무와 바위와 바람은 우리네의 들끓는 욕망처럼 주위를 휩쓸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가을이 되니 이제는 저마다 남겨지고픈 모습으로 변해 그렇게도 아름답게 인연을 정리하고 있었다. 힘센 놈 틀어쥐고 목을 죄며 올라서던 칡넝쿨이 가을 되니 느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도 인연이 다할 때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당에 도착한 우리는 헤어짐이 아쉬워 다시 한번 선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인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항상 변화를 맞는다. 우리의 인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새로운 인연이 다시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의 인연을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인연을 떠나보내고 그 자리에서 그렇게 다시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관악산처럼.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