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이 언제부터 위대한 일을 했다고 위대한 대통령이라 아부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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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이 언제부터 위대한 일을 했다고 위대한 대통령이라 아부를 합니까"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09.10.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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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민권당으로 영등포 을구에서 출마

나는 참으로 배신감에 치를 떨었는데, 아내 경옥은 나보다 더 분해하면서 출마를 하자고 졸라댔다. 다른 동지들도 너무 분해하면서 어떻게든 출마를 하자고 했다. 나는 분구된 관악구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그동안의 공천 과정을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심판을 받을 생각으로 선배들과 의논을 했다.
 
특히 김수한 의원과 이중재 의원, 그리고 김태룡·명화섭 의원 등이 무소속출마를 극구 말렸다. 전두환 정권이 이미 노병구는 정정법에 묶어 놓지는 않았어도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고 제외시키는 것인데, 무소속으로 입후보한다고 결심하는 순간 무슨 트집을 만들어서라도 출마도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바로 구속될 것이니 아예 무소속 출마는 생각도 말라고 충고해주었다.

너무도 분해하던 김태룡 의원이 민권당의 김의택 총재를 찾아가서 내 이야기를 하고 민권당에서 관악구에 공천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민권당도 공천이 끝나서 어렵다면서 혹시 관악구가 아니고 영등포 을구라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김의택 총재의 전언을 듣고, 나를 만나 민권당으로 영등포 을구에서 출마를 해도 박한상 의원과 신민당원들이 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을구에서 출마할 것을 권했다.

영등포 을구에서 민권당에서 교회 장로 한 분의 공천이 결정되어 있었는데, 정치경력이 전혀 없는 분이어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김의택 총재가 공천자를 노병구로 바꿔도 될 것 같다고 하자 김태룡 의원은 아예 바꿔달라고 해서 내락을 받아 가지고 와서 내게 출마를 권했다.
 
 


그러자 아내 경옥은 분해서 못 견디겠다며 결행하자고 했지만, 나는 이미 공천자가 정해져서 꽤 준비를 했을 것인데 그분을 도중하차 시키는 것도 미안한 일이고 선거구역을 바꾸는 것도 대단한 모험이어서 망설여졌다. 하지만 아내와 주위의 권고를 물리치기도 쉽지 않아서 결국 그 공천을 수락하고 출마를 결행했다.

자신은 정정법에 묶여 있으면서 나의 출마를 위해 민권당 김의택 총재 댁을 몇 번씩이나 오가며 공천을 받게 노력해준 김태룡 의원에게 나는 큰 빚을 졌다. 늘 감사하고 있다. 공천을 받고 민권당 중앙당에 갔더니 그 당에도 무슨 연락책이 있는데 평소 나와 친했던 박기양 선배가 연락책이라고 하며, 김의택 총재 말고 어딘가와 연락을 취하는 걸 보니 당은 무엇인가 박기양 선배를 통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민한당 연락책은 김문석 씨, 민권당 연락책은 박기양 선배인데 내막을 보니 민한당 김문석 연락책은 실세 냄새가 나는데 민권당의 박기양 선배는 완전히 겉도는 들러리 연락책인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내가 군대에 입대해서 처음 배속받은 부대가 보병 2사단 17연대 3대대 작전과였는데, 그때는 전시여서 비밀을 요하는 작전지시를 전화나 무선통신으로 하는 것은 노출의 위험이 있어 각 중대 연락병들이 주로 작전과에 대기하고 있다가 대대장의 작전명령이 떨어지면 이를 작전과에서 명령서로 작성했다. 이 명령서를 받아 작전을 수행했던 것이다.

당시는 마치 전두환 대대장 밑에 민정·민한·민권중대로 편성해서 전두환 대대장의 명령을 연락책들이 받아다가 복종하는 그런 형태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도 민권중대는 대대 편성상 다당제를 한다는 구색을 맞추려고 만든 꼭두각시로서 그나마 민주의식을 가진 국민을 속이기 위해 민정당과 민한당을 위한 희생양 정도의 제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공천을 받았던 그 장로님을 만나 위로의 말을 하고 입후보 등록을 했다. 그 장로님은 그동안 쓴 경비를 보상해달라고 했지만 나도 자금을 넉넉히 준비해놓고 하는 처지가 아니라서 “사정은 딱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고, 당선이 되면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테니 나를 열심히 밀어달라”고 부탁하고 출마를 했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장로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 데 대해 사죄를 드린다. 입후보등록을 마치고 보니 놀랍게도 그 지역에서 5대에 걸쳐서 국회의원을 지낸 박한상 의원의 장남 박윤근 군이 아버지의 조직을 등에 업고 무소속으로 후보등록을 하는 등 모두 아홉 명이 경쟁하게 되었다.
 
내가 사전에 협조를 기대했던 박한상 의원과 신민당 조직이 오히려 경쟁상대가 되어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신길동 쪽은 내가 왜정시절부터 뛰놀던 곳이고, 어릴 때부터 다닌 신길교회도 있고, 지난 제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내 선거구였던 곳이라 좀 익숙했지만, 영등포 시장통을 중심으로 한 광활한 지역은 거의 생소한 지역이라 그 넓은 지역을 한 바퀴만 돌려고 해도 18일간의 일정으로는 너무 짧았다.

내가 기대했던 신민당 조직은 박한상 의원의 눈치를 보느라고 손이 닿지 않았지만 신길동 쪽의 신민당 동지들은 대부분 나를 밀어 그나마 다행이었고, 김수일 동지를 밀었던 옛 통일당 조직이 전적으로 나를 밀기로 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나를 위해 애썼던 분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중요한 분들의 대강을 여기에 밝히자면, 사무장 박도현 씨와 제재옥·김동우·장길효·김충선·권오륜·박건용·한창환·김수일·이재인·양낙동 씨 등 많은 분들이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기록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죄송하게 생각한다.

민권당에서는 자금지원이 전혀 없었고, 여윳돈이 없었던 나는 막 준공한 난곡 입구의 빌딩을 가등기 담보로 해서 선이자 250만원을 먼저 떼고, 3000만원의 빚을 내서 최소한의 선거자금으로 현수막을 비롯한 홍보물을 제작하고 그것을 배포하는 최소한의 인원, 각 동당 한 두 명의 연락책들에게 실비만을 지급했다.

투개표 참관인의 식대와 일비지급 그리고 차량운영비에도 못 미치는 자금으로 노골적으로 관권·금권 타락선거로 일관하는 민정당과 비교적 넉넉한 자금을 쓰는 민한당과 싸우기 위해서는 단 세 번의 합동유세에서 그들을 압도해야 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나와 경옥이 영등포 전역을 발로 누비며 한 사람 한 사람 유권자와 직접 만나 악수하며 호소하는 길밖에 없었다. 당시 신문방송에서 시도 때도 없이 ‘위대한 전두환 대통령’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을 가리켜 나는 합동연설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를 한 사람도 아니고 단지 육군 소장으로 있다가 하극상을 일으켜 대통령 직접선거를 원하는 절대다수 국민의 여망을 뒤엎고 이제 막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된 것뿐인데 언제부터 그렇게 위대한 일을 했다고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아부, 아첨을 합니까? 대통령의 임기는 7년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아부와 아첨을 일삼고 있으니 나라꼴이 한심합니다.
 
나는 그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정말 위대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두환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참으로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그런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임기가 끝났을 때 존경과 우러름을 받는 정말 위해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번 선거부터 공명정대한 선거를 치르고 부정부패 없는 훌륭한 국정운영을 해주기를 촉구합니다.

국민 여러분!
전두환 대통령의 7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부, 아첨은 그만합시다. 앞으로 7년간 지켜보고 감시하고 정말 국민을 위해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으면 그때부터 우리 모두가 위대한 전두환 대통령이라고 마음껏 만세를 불러줍시다.
 
요새처럼 하면 싹수가 노랗습니다. 지금 민정당은 관권·금권 타락 선거로 일관하고 있고, 민한당 또한 포장만 야당이라고 붙여 가지고 유권자 여러분을 속이고 있습니다. 민정당과 민한당은 같은 새마을공장 제품입니다.
 
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상품을 만들어 유권자를 속이기 위해 하나는 여당, 다른 하나는 야당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지금 유권자를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유권자 여러분이 여기에 속으면 이 나라에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모양만 갖춘 전두환 일당독재가 판을 칠 것입니다.
 
유권자 여러분, 또 4·19를 원하십니까? 기성정치 물러가고, 기성세대 각성하라는 학생들의 피맺힌 절규가 들리지 않습니까? 독재정치는 안 된다고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독재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하고 있는 정치는 국민의 주권을 돈으로 사고 권력으로 위협하고 사술로 여러분의 판단을 흐려서라도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독재권력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독재권력을 뒷받침하는 내각은 즉각 물러가야 합니다.”

이러한 나의 연설은 열렬한 호응과 박수도 받았고, 다음 날 서울 시내의 각 신문은 영등포 당산공원에서 열린 합동연설회 광경을 소개하며 제목도 내 연설 중의 한 토막으로 썼다.
특히 마지막 합동연설회를 우신초등학교에서 가졌는데, 연설순위를 추첨한 결과 아홉 명의 연사 중 아홉 번째가 되었다.
 
그동안 연설회가 있을 때마다 가장 마지막에 걸리는 연사가 연설할 때는 앞서 연설한 후보를 지지하는 청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마지막 후보자는 텅빈 운동장만을 보고 연설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합동연설회 날, 후보자 한 사람당 30분씩 거의 다섯 시간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운동장을 꽉 메운 청중들은 나의 마지막 연설을 듣기 위해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주었으며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나는 늦게까지 남아 경청해준 유권자 여러분께 감사하며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나와 경옥은 부족한 물량으로 유감없이 싸웠고, 동지들 또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걸어다니며 열심히 운동해주어서 좋은 결과도 예측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의 부덕의 소치로 좋은 결과를 안겨드리지 못하고 실망과 좌절만을 드린 동지들에게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고 엎드려 사죄와 위로를 드린다.

이렇게 두 번째 출마도 실패하고 말았다. 개표 다음 날 새벽 박한상 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박한상입니다. 노 위원장께 정말로 미안합니다. 윤근이를 내보내지 않았으면 노 위원장이 확실히 당선될 수 있었는데, 선거결과를 보고 내가 노 위원장께 사과와 위로를 드립니다. 거듭 미안합니다.”

개표 결과 나는 2만여 표를 받아 후보자 아홉 명 중 4등을 했고, 박한상 의원의 아들 윤근 군은 6등을 했다. 만약 박한상 의원의 아들 윤근 군이 나오지 않고 박한상 의원이 내 손을 들어주었으면 기존의 신민당 조직이 나를 밀어줄 수밖에 없어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진짜 야당 세력은 하나로 뭉쳐 내게 표를 몰아주었을 것이고, 따라서 당선되었을 것으로 여겨 박한상 의원뿐 아니라 모두가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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