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기본소득’ 탓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화두를 던진 후로, 기본소득은 정치권의 핫이슈가 됐다. 심지어 여야 유력 대권주자들까지도 논의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번 기본소득 논의는 과거와 양상이 좀 다르다. 예전 같았으면 ‘극단적 이상주의’로 배척될 만한 주장이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뿐,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지금의 기본소득 논의는 ‘복지’ 차원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경제 시스템에서 인간은 생산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다. 인간이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에 기여하면서 소득을 얻고, 그 소득으로 소비를 해야 경제가 돌아간다.
문제는 ‘사물의 지능화’를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 수가 정비례하지 않은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모바일뱅킹(mobile banking)이 오프라인 은행 점포수를 줄이고, 키오스크(kiosk)가 음식점 점원을 대체한 것과 같은 변화가 전 사회적으로 일어날 공산이 큰 까닭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 시스템의 양대 축인 생산과 소비 간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인간이 생산에 기여할 수 없으니 소득이 있을 리 없고, 소득이 없으니 소비가 될 리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경제 시스템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최근의 기본소득 논의가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생산과 소비의 단절을 유발한다면, ‘생산과 소비의 주체’였던 인간은 ‘소비의 주체’로 변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도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런 고민에서 등장한 개념이 기본소득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다. 국민 5000만 명에게 월 50만 원씩만 지급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반 이상이 기본소득 사업에만 쓰이게 된다. 정부에서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에 난색을 표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기술의 발전이 일자리 창출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에, 기본소득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 망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4차 산업혁명 대처 방안’ 중 하나가 됐다. 당장 도입하지는 못하더라도, 활발한 논의를 통해 조금씩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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