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드디어 고개를 숙였다. 이 대표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 번 통렬한 사과를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또 “피해 호소인의 뜻에 따라 서울시가 사건 경위를 철저히 밝혀주길 바란다”며 “또한 피해 호소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멈추고 당사자의 고통을 정쟁 수단으로 쓰지 않길 강력히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직접 사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 사과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피해 호소인’이 그것이다. 이 대표뿐만 아니라 여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다루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법적으로 시시비비가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으니 피해자라고 부를 수 없다는 설명,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상한 부분이 있다. 우선 ‘왜 하필 지금부터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당은 이전에도 법적으로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피해자’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다. 심지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때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 때도 피해자라는 표현을 썼다.
이 대표가 사과를 하면서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모순이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대로, 이 대표가 아직 고소인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면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상 규명이 끝날 때까지 차분히 지켜보자”고 하는 게 논리적이다.
사과를 할 거라면, 피해 호소인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했어야 했다. ‘당신의 말을 아직 믿지는 못하겠지만 당신의 고통에 깊은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말대로 “저 사람들, 사과할 생각 없다. 그냥 이 국면을 교묘히 빠져나갈 생각만 있을 뿐”인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상식적인’ 행보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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