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문재인 정부가 서울·수도권 일대에서 오는 2021년 7월부터 2022년까지 총 6만 가구에 대한 사전청약을 진행하는 내용이 담긴 '사전청약 6만 호 실시계획'을 8일 발표했다. 사전청약 분양 대상지에는 고양창릉, 남양주왕숙, 하남교산 등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용산정비창, 노량진역 인근 군부지 등 서울·수도권 중소규모 공공택지들도 일부 포함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2022년까지 집중 공급되는 37만 호 가운데 분양물량이 24만 호에 달해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민이 안정적 주택 공급을 체감할 수 있도록 24만 호 분양주택 중 총 6만 호를 사전청약을 통해 조기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8·4 공급대책 등 현 정권이 추진하는 주택 공급대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전청약 카드를 꺼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늘 그랬듯 방향성에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또한 늘 그랬듯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부분도 상당하다. 우선, 성급했다. 재건축 규제 강화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후 수도권, 특히 서울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공급 위축 우려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시장에 공급 신호를 주려고 사전청약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보이는데, 너무 서두르다 보니 태릉골프장, 과천 정부청사 부지, 용산 캠프킴 부지 등 핵심 물량이 사전청약 분양 대상지 명단에서 모두 제외됐다. 확실한 공급 시그널(신호)을 줄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재보궐선거라는 정치 이벤트를 고려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들린다.
또한 사전청약을 통해 마땅히 노려야 할 가장 핵심 효과인 집값 안정화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사전청약 접수를 받기 직전에 추정분양가와 입주시기, 입지조건 등을 공개한다는 방침이지만,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인 만큼 최소한 어느 정도 가격대에 분양가를 책정할 계획인지는 밝혀야 점진적인 시장 안정화를 꾀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실질적인 분양일정은 정작 7~8년 혹은 무기한 지연되는 건 아닌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입주시기나 입지조건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쯤 입주할 수 있는지, 주변에 학교는 있는지, 교통 인프라는 완비됐는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수년이라는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투자할 준비를 하라고 발표하는 건 민간업자들도 안할 짓이다.
무엇보다 의구심이 드는 대목은 청약제도다. 이번 사전청약 실시계획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재 패닉바잉에 빠진 젊은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이를 통해 집값 안정을 이루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사전청약 물량 총 6만 호 중 55%를 신혼부부와 생애최초 특별공급으로 배정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현행 청약제도와 동일한 요건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추첨 없는 가점제로 사전청약이 이뤄지는데, 패닉바잉에 빠진 젊은층 가운데 10년 이상 청약통장을 넣은 10년 이상 무주택자(부양가족이 있는)가 과연 얼마나 될까. 특별공급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하거나, 자녀가 있어야 신혼부부 또는 생애최초 물량을 노릴 수 있어, 미혼 무주택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주거 안정에 도움을 줘 결혼을 하게끔 유도해야 하는데, 집 사려면 결혼해야 한다고 협박하는 꼴이다.
이 같은 청약제도를 손보지 않고 사전청약을 진행한다면 정부가 원하는 효과를 얻긴 힘들다는 생각이다. 당첨 가능성이 낮은 물량을 놓고 고민할 실수요자는 없다. 더욱이 당첨이 되더라도 문제다. 전세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수년 간 본청약을 기다리고, 또 수년 간 입주를 기다려야 한다. 당장 먹고 살 집 걱정을 해야 한다.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그저 쌓이고 쌓인 청약 대기자들을 줄 세우기 위한 목적이라면 아예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는 게 좋다고 본다. 이번 조치의 주요 타깃인 젊은 실수요자들이 당첨을 기대할 수 있도록, 청약제도를 선(先)개선한 뒤 사전청약을 진행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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