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공공택지 공급방식 '빛 좋은 개살구'…이게 최선인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발(發) 투기 사태가 관가와 국회에 이어 청와대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자들은 물론, 모든 선출직·임명직 공무원들이 사태의 추이를 숨을 죽인 채 주의 깊게 지켜보는 분위기다. 반면, 숨 가쁘게 입과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국회의원과 그를 보좌하는 보좌진, 그리고 언론인들이다. 대형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의원들은 스포트라이트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마이크를 잡으려 하고, 보좌진들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도자료들을 불철주야 작성해 언론에 넘긴다. 기자들은 직접 발로 뛰고 연구해서 얻은 자료를 생산·가공해 보도하거나, 받은 보도자료를 검토해 기사화한다. 이번 사태 속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가뜩이나 재보궐선거 영향으로 거물급 유력 정치인들만 돋보이는 상황인 만큼, 여러 의원들이 카메라 앞에 나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자신을 어필했고, 보좌진은 자신들의 의원이 거론된 기사가 하나라도 더 나오게 하려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기자들도 매번 하던 것처럼 기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보기에 적잖이 불편한 사례가 하나 있었다.
지난 22일 A의원실에서는 'LH 2008~2018년 공동주택용지 입찰 및 낙찰 현황'이라는 자료를 내고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몇몇 중견건설사들이 수십 개에 이르는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대규모 공공택지를 편법적으로 확보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의원실은 5개 건설업체의 이름을 공개하면서 이들이 LH가 조성한 공공택지를 꼼수로 낙찰받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LH를 다루는 자료인 데다, 민간기업까지 겨냥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만큼 여러 언론사에서 이 자료를 인용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수많은 누리꾼들이 해당 기사를 여러 커뮤니티에 퍼갔고, 기사는 지난 주말 단기간에 확대 재생산됐다. LH는 물론, 기사에 언급된 민간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순식간에 형성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의원실에서 건전한 시민사회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비판적인 자료를 제대로 된 타이밍에 만들어 뿌렸고, 기자들은 이 자료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 시민사회의 자정작용을 촉진시킨 좋은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LH 2008~2018년 공동주택용지 입찰 및 낙찰 현황'은 이미 2019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A의원실에서 공개했던 것과 동일한 자료다. 언급된 건설사도, 내용도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다. 각 언론사들이 보도한 기사도 2019년과 흡사하다. 그저 서두에 'LH 투기 사태 가운데'라는 꾸밈말 하나가 더 붙었을 뿐이다. 더욱이 해당 자료는 일부 중견건설사들이 공공택지 입찰 때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벌떼 입찰'로 당첨 확률을 높였다는 게 주된 내용인데, 국토교통부는 공공택지 공급 입찰 시 추첨이 아닌 사업계획을 평가하는 경쟁방식으로 전환하는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3일부터 시행한다고 지난 21일 밝힌 바 있다.
A의원실은 국토부 개정안 시행을 불과 하루 앞두고, 2년 전 공개했던 것과 똑같은 자료를 다시 내놓은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편승한 '숟가락 얹기'라고 보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자료를 인용해 특정 기업들을 향해 공격적인 기사를 내놓은 언론사들도 문제다. '숟가락'이라는 걸 몰랐다면 건설·부동산 관련 기사를 낼 자격이 없고, '숟가락'임을 알고도 보도했다면 참으로 악의적이다. 자료에 언급된 민간기업들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 법과 규정의 허술함을 이용해 편법적인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저질렀다. 일부 업체들은 이를 오너일가의 경영권 승계에도 악용했다고 한다.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자 입법 주체가 조금이라도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이미 과거에 내놨던 자료를 재활용하면서까지 '숟가락으로' 민간기업 때리기에 나섰다는 데에 있다. '3연벙' 보다 더 악랄한 '2연숟'에 얻어맞은 민간기업들은 한숨만 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번 사례가 더 불편한 건 심지어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한 '벌떼 입찰'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개선안마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당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제기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정부에게는 최상의 개선안을 도출할 만한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국토부는 앞으로 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에 대해 경쟁방식을 적용, 입찰 참여 업체의 임대주택 건설계획, 소액 투자자와의 이익 공유, 특화설계 등을 평가해 낙찰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눈에 띌 만한 특화설계를 제안하면서 투자자와 이익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자본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중견건설사들이 편법적으로 공공택지를 따내는 것, 대형 건설사들이 돈을 앞세워 공공택지를 가져가는 것 모두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시행을 LH 등 공공이 직접 맡고 시공권만 민간기업에 넘기되, 그 시공권을 전매하지 않도록 하고, 입찰 시 반드시 컨소시엄(ex. 대표주관사 50, 중견사 30, 지역 소형사·투자자 20)을 구성해 참여하도록 하는 등 여러 대안들이 이미 제시돼 있다. 구태여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는 정책을 내놓은 게 의뭉스럽다.
좌우명 : 隨緣無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