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터뷰] 유남규 “밥 먹을 때도 탁구 폼으로…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성공 원동력”
스크롤 이동 상태바
[풀인터뷰] 유남규 “밥 먹을 때도 탁구 폼으로…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성공 원동력”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4.30 1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남규 탁구協부회장 (대한탁구협회 부회장 겸 삼성생명 감독)
“초등학교 때 국가대표 목표 세우고 새벽운동”
“쉽지 않았던 첫 지도자 생활…소통으로 극복”
“딸 유예린, 재능 있어…중3때 국가대표 목표”
“운동선수 일률적 교육 아쉬워…맞춤교육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4월 21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을 만났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4월 21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을 만났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사소한 이유였다. 그가 탁구채를 잡은 건, 그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작고 귀여운 소망이 대한민국 탁구의 운명을 바꿨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등 선수 유남규가 남긴 족적은 곧 대한민국 탁구의 역사였다.

역사를 써내려가는 그에게, ‘스타 선수 출신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힘없는 편견일 뿐이었다. 남자대표팀 코치를 맡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남자복식 금메달 획득을 지휘했고, 농심삼다수 감독으로서 전국대회 4관왕을 일구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단체전 은메달을 이끈 지도자도 바로 그였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승자의 길을 걸어온 유남규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또 현역 지도자로서, 또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서 지금의 탁구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시사오늘>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을 품고 4월 21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을 만났다.

 

“젓가락도 탁구 그립 모양으로 잡고 밥 먹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 감독이 탁구를 시작하게 된 건 사소한 이유였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 감독이 탁구를 시작하게 된 건 사소한 이유였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유 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면 ‘떡잎’부터 달랐을 터. 탁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탁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부산 영선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사실 저는 우리 학교에 탁구부가 있는 줄도 몰랐다. 탁구에 별 관심도 없었고. 제가 탁구를 쳐본 건 여름에 집에 모기약을 뿌려놓고 갈 데가 없어 집 앞 탁구장에 가서 가족들하고 몇 번 똑딱거려 본 게 전부였다. 그런데 4학년 때 학교에서 탁구부를 뽑더라. 마침 그때 제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한테 뭔가 자랑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여학생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탁구부 지원을 하러 강당에 갔다.

우리 학교 탁구부는 제가 3학년 때 만들어져서 이미 1년 동안 운영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사실상 탁구를 처음 쳐본 제가 1년 동안 탁구부를 했던 친구에게 이겨버렸다. 그러니까 코치가 저한테 더 시합을 못하게 하더니, 탁구부도 안 시켜주겠다고 하는 거다. 오기가 생겼다. ‘내가 이겼는데 왜 안 되냐’고 따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코치가 제가 탁구를 안 할 까봐 심리전을 한 거였다. 안 시켜준다고 하다가 나중에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도장 받아 오면 시켜줄게’ 그러니까 좋아서 당장 집으로 달려갔다. 탁구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겼는데 안 시켜주겠다고 하니까 억울하고 분해서 탁구부에 들어간 거다. 하하.”

-부모님은 탁구부에 들어가는 걸 찬성하셨나.

“당연히 반대했다. 부모님이 사주를 봤는데, 제가 굉장히 성공할 사람이라는 사주가 나왔다고 하더라. 제가 세 형제 중 둘째인데, 부모님이 거의 저한테 올인하다시피 했다. 제 이름 남규가 남녘 남(南)자에 별 규(奎)자다. 제 고향 부산이 남쪽이니까, 남쪽에서 별이 뜬다는 뜻이다. 그런 아들이 운동을 하겠다고 하니 결사반대를 하셨다. 부모님은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저는 운동이 너무 좋아서 자리에 한 시간 이상 못 앉아 있는 성격이었다. 어릴 때부터 축구, 태권도, 복싱 다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어린 마음에 제가 부모님한테 ‘탁구를 안 시켜줄 바에는 권투해서 맞아 죽어버리겠다’고 했다. 그제야 허락을 해주셨다.”

유 감독의 부모님은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유 감독의 부모님은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제 성격이 좀 별났다.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갖고 싶은 걸 못 가지면 분에 못 이겨서 기절을 했을 정도니까.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하루에 기본적으로 10번씩 기절을 했다. 눈을 뜨면 병원이었다. 부모님이 ‘너 그러면 학교 못 간다’ 그러시기에 성격을 조금씩 고쳤다. 그래도 승부근성이 강해서 뭘 하든 1등을 해야 됐다.”

-그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원동력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 1년 늦게 탁구를 시작했는데, 지는 게 싫어서 밥을 먹을 때도 탁구 폼으로 먹었다. 젓가락도 탁구 그립처럼 잡았다. (탁구 스윙 모습을 보여주면서) 밥 먹을 때도 이렇게 먹으니까 부모님한테 되게 혼났다. 밥상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하하. 어쨌든 그렇게 해서 6학년 때는 1등이 됐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제가 초등학생일 때 박찬희라는 복싱 선수가 있었다. 그분이 세계 타이틀 매치를 하는 날이 마침 탁구부가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그래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길에 그 경기를 보게 됐다. 그분이 머리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를 하고, 이긴 뒤에 애국가가 울리는 걸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처음 국가대표라는 꿈을 꾸게 됐다. 그때부터 저는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년 동안 새벽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1년 동안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했다. 국가대표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나가기 싫어도 ‘오늘 안 나가면 국가대표가 못 된다’ 그 마음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운동을 했다.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에 탁구선수로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고됐을 것 같은데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육체적으로 고된 것보다는 친구들과 못 어울렸던 게 제일 힘들었다. 저는 초등학교 때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친구들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저는 크리스마스 때도 탁구대를 반으로 접어서 거기 대고 혼자 연습을 했다. 올림픽 금메달 따는 상상을 하면서 러닝도 하고. 친구들은 놀고 싶고 쉬고 싶어 하니 어울리기가 어려웠다. 저는 훈련만 하기도 바쁜데 놀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그래도 뭔가를 얻으려면 희생하는 게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지냈다. 금메달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딸 유예린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 감독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딸 유예린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 감독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딸 유예린 선수도 탁구를 하는 걸로 안다. 그렇게 힘들게 운동을 했던 입장에서 딸에게도 운동을 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저는 재능이 없으면 운동을 시키면 안 된다는 주의다. 마찬가지로 공부가 안 되는 아이한테 공부를 계속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주의고. 그런데 예린이는 제 판박이다. 운동 좋아하고 밖에서 체력을 소비해야 잠을 자는 아이다. 제가 처음에 예린이한테 탁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건 5살 때다. 부모가 아이하고 놀아주다 보면 너무 힘이 든다. 하하. 그래서 천장에 탁구공을 단 고무줄을 연결해놓고 탁구채로 혼자 툭 툭 치면서 놀게 했다. 이게 보기는 쉬워 보이지만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 거다. 그런데 예린이가 리듬을 잡으면서 움직이는 거다. 재능이 있다 싶어서 아내한테 탁구를 시키자고 얘기했다.

아내는 반대를 했다. 아내가 미대 나와서 가방 디자이너를 하고 있다. 예린이는 그 길로 데려 가겠다더라. 그렇게 2~3년 미술을 했는데, 아내가 그제야 예린이한테 탁구를 시키는 게 좋겠다는 거다. 저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한 번 해보자고 설득을 하기에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15분만 탁구를 치게 했다. 재능이 있었는지, 곧잘 하더라. 그래서 1학년 때 처음으로 탁구부를 시작했다. 사실 요즘은 대부분 탁구를 5~6살에 시작하기 때문에 예린이는 좀 늦게 시작한 거다. 그런데 2학년 3월에 나간 첫 대회에서 2등을 했다. 너무 잘 한 거지. 그래서 2학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탁구를 시켜 지금까지 왔다. 저는 예린이가 중3때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유 감독의 딸 유예린 선수는 2학년 때 전국대회 2위를 기록하며 유망주로 떠오른 뒤, 5학년 때는 교보생명배전국대회 학년별 개인전 우승에 이어 전국회장기대회 학년별 개인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삼성생명우수초청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초등학교 탁구연맹 랭킹에서도 전국 1위를 지켰다.

-아버지처럼 지고는 못 사는 승부근성도 있는 것 같나.

“제 복사판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제가 그 나이였을 때와 비교해보면 아쉬운 점은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그때 이미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세우고 알아서 운동도 하고 그랬으니까. 가끔은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아빠 물! 아빠 양말!’ 하면 다 챙겨주면서 키웠다. 하하. 저는 지금도 딸을 보면 너무 좋다. 핸드폰에도 ‘나의 심장’이라고 저장해 놨다. 아무튼 가르쳐주면 곧잘 하는데 왜 스스로 못할까 싶은 아쉬움은 든다. 시합을 앞두고 있으면 혼자 연구도 좀 하고 작전도 써보고 했으면 좋겠는데…. 요즘 애들이 다 그런 건 알고 있지만, 유남규 딸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인데…. 잘 모르겠다. 좀 더 기다려야 하는지,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제2의 인생 열어주는 것도 지도자 역할”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던 유 감독도 지도자 생활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던 유 감독도 지도자 생활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유 감독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선수 유남규’와 ‘지도자 유남규’ 사이에는 큰 시차가 존재한다. 더욱이 유 감독은 불세출(不世出)의 스타 선수 출신. 사고방식의 변화로 인한 세대 차이와, ‘스타 선수 출신 지도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물었다.

-가진 재능을 발휘하기만 하면 됐던 선수와 다른 이들의 재능을 끌어내야 하는 지도자는 역할의 차이가 클 것 같다. 그 간극을 어떻게 메웠는지 궁금하다.

“제가 2000년에 처음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첫 2년 동안은 정말 혼란스러웠다. 제 선수 때 생각만 하면서 ‘왜 기본을 못하지’라며 선수들을 다그쳤다. 그러던 중에 제가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있었다. 2년 동안 선수들을 다그쳐서 1등을 만든 뒤 회식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선수들하고 술을 한 잔 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선수 하나가 이런 말을 하더라. ‘저희들이 유남규가 아니지 않습니까. 감독님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딸 정도의 실력을 갖고 계시지만, 저희는 아직 그 정도 능력이 안 되는데 좀 기다려주시지 않고 너무 혼내기만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1등을 했지만 별로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충격을 받았다. 느낀 점도 많았고. 그래서 다음 날 선수들한테 얘기했다. ‘선생님이 너희를 너무 기다려주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바꾸겠다. 충분히 기다려주고 소통도 열심히 하겠다.’ 2002년부터 제 지도 방식이 바뀌었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가 아니라 ‘내 생각은 이런데 니 생각은 어떠니’ 물어보고 설사 틀렸더라도 한 번 경험해보게 했다. 그래야 본인이 스스로 깨달을 테니까. 그리고 훈련 중에 혼을 냈던 애들에게는 저녁 때 메시지를 보내서 ‘내가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를 아끼고 잘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런 거다’라는 말을 꼭 해줬다.”

-소통을 중시하는 방식이 효과가 있었나.

유 감독은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선수들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는 것도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유 감독은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선수들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는 것도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물론이다. 저는 대화를 좋아한다. 대화를 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소통을 해서 ‘아, 저 선생님이 나를 위해서 지도하는구나’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래야 중간에 혼이 나더라도 ‘나를 위해서 그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힘든 훈련도 따라올 수 있다. 기술을 가르치는 건 그 다음이다.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지 않으면 선수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선수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서다. 탁구선수를 한다고 해서 전부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건 아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못 될 수도 있고, 국가대표가 못 될 수도 있다. 지도자는 그런 선수들에게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멘토 역할도 해야 한다. 10명의 선수가 있으면 세계무대에 나갈 수 있는 선수는 한두 명 뿐이다. 다른 선수들에게는 지도자의 길도 열어주고,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저는 선수들과 대화를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 때 적응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그게 지도자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탁구에서는 김기택, 유남규, 김택수, 유승민 등 스타 선수들이 계속 나왔었는데, 요즘은 그 명맥이 끊긴 것 같다. 지도자로서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나.

“시대가 변해서라고 본다. 요즘 ‘라떼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취미도 없이 운동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핸드폰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고. 그런데 지금은 놀거리가 너무 많다. 오로지 탁구에만 몰두하고 극도의 훈련을 버텼던 우리 때와는 다르다. 이런 시대에는 재능도 있고 목표 의식도 뚜렷한 선수들을 발굴하고 잘 가르쳐서 키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타고난 선수들을 발굴하고, 훈련을 함께 이겨내면서 키워내는 게 지도자들의 과제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탁구의 프로화를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다.

“궁극적으로 프로로 가야하는 건 맞다. 다만 지금은 프로로 갈 수 있는 발판이나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프로화는 감독들끼리 ‘합시다’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그들이 프로화의 시점이나 방식을 고민하게 하는 게 옳다고 본다. 전문가들과 회사 프런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저는 일단 리그를 열어 탁구를 방송에 노출시키고,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서 자연스럽게 프로로 넘어갈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섣불리 프로로 넘어갔다가 자칫 실패할 경우 탁구계가 입을 상처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일괄적인 학교 교육보다 선수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유 감독은 일괄적인 학교 교육보다 선수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마지막으로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서, 또 대한체육회 이사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이 붕괴되고 있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키우겠다는 방침에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수들도 평일에 수업을 받아야 하니까 시합은 주말에 할 수밖에 없다. 평일에 수업 4시까지 받고, 밤 8~9시까지 운동하면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쉬는 날 시합을 하게 만든 거다. 이러면 선수들은 대체 언제 쉬나. 이렇게 일괄적으로 학교 수업을 받게 만든 건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생각이다.

현실에서는 선수들이 수업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지도 못한다. 애초에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는 자고, 밤에 운동하는 일이 벌어진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선수들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일괄적인 수업 참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공부 대신 운동으로 성공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 길을 열어주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다.

저는 학교에 재량을 줘서 선수들은 오전 수업만 한다든가, 선수들을 위한 맞춤 수업을 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대안학교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운동하는 학생들은 마음껏 운동을 하게 하고, 대신 선수들에게 맞는 영어교육이나 수학교육, 인성교육을 제공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저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