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방글 기자]
이배 대표는 어쩌다 자신의 일생을 로봇 연구에 바치게 됐을까?
“1964년, 그러니까 제가 5~6살 무렵부터 분해와 조립에 관심이 많았어요. 혼자 움직이는 사발시계를 분해하다 풀어지는 태엽에 손을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였지요. 몇 개나 고장을 냈는지 셀 수도 없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돼서야 재조립에 성공했어요. 사발시계의 초침이 움직였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배 대표가 4,5학년 때는, 뇌성마비 친구와 시계조립을 함께했다. 이배 대표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그 친구는 초등학교 앞에 시계 점포를 냈다.
이배 대표가 말하는 자신의 첫 작품은 진공관 앰프다.
“진공관 라디오 턴테이블이 신기했지만, 당시 가격으로 30만 원 정도였어요. 전축에는 손도 못 대다가 고물상에서 전축을 얻어와 소리가 나게 만들기 시작했죠. 턴테이블을 직접 깎고, 진공관 앰프를 설계해 만들었어요. 노이즈는 좀 심했지만요. 이게 초등학생 때 일이에요. 물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노이즈 없는 전축 만들기에 성공했지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시작한 분해와 조립·개발 활동은 청소년기는 물론,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중고등학생 때는 동네 라디오 수리점 아저씨한테 매일 혼이 났어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전기밥솥부터 카세트, 라디오까지 고쳐달라고 우리 집 앞에 줄을 섰거든요.돈도 안 받고 고쳐주니, 수리점 아저씨 입장에서는 꼬마 경쟁자가 생긴 셈이죠.”
“군대에서도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생겼어요. 야전무전기가 고장이 났는데, 수리가 안 돼 훈련일자에 차질을 빚고 있었죠. 통신소대장이 유선 통신병이던 나에게 고쳐보라고 더군요. 감으로 뚝딱뚝딱 고쳤죠. 그 이후로 대대장이며 부대대장이며 자기 집 전자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저를 불렀어요. 주말이면 그들 집에 가서 고장난 기계 고쳐주고, 사식을 먹는 즐거움을 맛봤죠.”
이배 대표는 자신을 사업가나 개발자, 연구원 보다는 공돌이, 엔지니어에 가깝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석회전용수처리장치 △비케미컬세정제 △비케미컬피부미용제 △원자력, 화력, 수력, 태양광, 파력, 조력 발전 등 관련 장치 및 유지보수로봇 △휴재용 지반진단시스템 △터널 등의 암반절삭용 와이어쏘 시스템 △지진 등의 실시간 3D지반진동진단시스템 △해양산업 관련 로봇들 △혈관치료용로봇 △3D수술용로봇 △산부인과용로봇 △흡입독성실험용로봇 등 다양한 분야의 장치를 개발했다.
“저는 사업가보다 공돌이였던 거 같아요. 문제가 일어나면 해결해주는 해결사, 엔지니어 말이에요. 기업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 역할도 많이 했어요. △한화의 다이너마이트 폭파과다 사고 △SK의 반도체 불량 사전 처리 △LG디스플레이 생산분진 대응문제 △효성의 탄소섬유 불량 문제 △포스코의 유압유실 문제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셀 수 없이 많네요. 저의 이런 문제 해결이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고용을 늘리고,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좌우명 : 생각은 냉철하게, 행동은 열정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