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완성차-반도체는 갑을관계…"신규 제품 채택 어려워"
전세계 품귀현상에…TSMC·인피니온·ST 일제히 가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낮은 수익성과 까다로운 생산 조건으로 외면 받아온 차량용 반도체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품귀 현상 덕분에 ‘귀한 몸’으로 떠올랐다. 철저한 갑을 관계였던 완성차와 차반도체 기업의 권력 구조는 역전될 수 있을까. 반도체 업계는 왜 ‘가성비’가 떨어지는 차반도체 사업을 확장하려고 할까. 업계 움직임을 따라가 봤다. <편집자 주>
車반도체 가성비는 최악?…“생산 까다롭고 수익성 낮아 매력 떨어져”
“반도체 회사 입장에선 소위 ‘가성비’가 떨어진다. 특히 메모리반도체와 수익성을 비교하면, 아직까진 매력 있는 시장은 아니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계 관계자
2일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전 세계적인 차랑용 반도체 품귀 현상에도 생산 확장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자동차에 탑재되는 반도체 칩은 개당 평균 2달러다. 자동차 1대 기준으로 반도체 기업이 가져가는 단가는 판매가 대비 2~3% 수준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보고서에 따르면, 차반도체 업체가 수익성을 담보하려면 적어도 3000만~4000만 대에 반도체가 하나씩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차반도체는 탑승자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내구성이 검증돼야 한다. 영하 40℃에서 영상 70℃까지의 온도를 견디고, 7~8년간 성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간의 품질시험과 인증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4~5년의 개발 기간은 필수다.
업계 관계자는 “설사 신규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신뢰성을 보증받기 전까진 완성차 업체에선 채택을 꺼리기 때문에 상용화도 어렵다”며 “갑을 관계가 있다면 완성차 업체는 갑, 차반도체 업체는 을”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도 “차반도체는 생산 구조상 공급을 크게 늘리기도 어렵다”며 “같은 12인치 반도체라도 스마트폰 등 IT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도 이득”이라고 덧붙였다.
美, 마이너스 옵션차 등장에…車반도체 해외기업 “이때다 값 올려라”
이 가운데, 지난해 '완성차-반도체' 갑을 지형을 흔드는 반전이 일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재택근무와 더불어 개인용 IT제품 사용이 급증한 것과 달리, 국경 봉쇄 등에 막혀 사람들의 차량 이용이 급감하면서 업계는 차반도체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감염 때문에 발생한 공장 '셧다운'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올해부터 수요가 정상화 궤도에 오르자 차반도체 대란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 마디로 현재 품귀 현상은 수요 예측 실패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는 가장 먼저 미국을 덮쳤다.
미국 자동차 ‘BIG 3(GM·포드·스텔란티스)’로 꼽히는 GM은 급기야 지난달 ‘마이너스 옵션 차’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풀사이즈 픽업트럭과 SUV에서 자동(오토) 스톱·스타트 기능을 빼고 생산하겠다고 선언한 것. 소비자들은 출시가(MSRP)에서 일부 금액을 크레딧으로 받는 대신 몇몇 옵션이 빠진 차를 받게 됐다.
국내 완성차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단적으로 4만 대에 달하는 계약 물량을 확보한 현대차 아이오닉5의 경우에는 반도체 부족 탓에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2달 간의 내수 출고량이 2000대를 겨우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부터 생산량을 월 3000~4000대 수준으로 늘리면서 당월 출고량이 3667대를 기록했지만, 계약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다.
아이오닉5 뿐 아니라 인기 신차들의 출고 대기기간 역시 6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있는 만큼 고객 이탈을 걱정해야하는 처지다. 이에 임시방편으로 일부 옵션을 빼면 할인이나 출고를 앞당겨주거나, 3개월 이상 대기 고객이 다른 차종으로 전환 출고할 경우에는 현금 할인을 제공하는 프로모션까지 내놓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품귀 현상이 발생하다 보니, 시장에선 그간 천덕꾸러기였던 차반도체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피어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이젠 부르는 게 값이 되지 않겠냐는 것.
실제 세계 1위 차반도체 생산업체 독일의 ‘인피니온’과 5위 스위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지난 5월부터 일부 제품라인의 가격 인상을 연이어 발표했다. 대만 ‘TSMC’는 관련 가격을 최대 15~20% 이상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를 두고 “반도체 가격 결정권이 자동차 제조사에서 반도체 제조사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ETRI 연구원도 앞선 보고서를 통해 “자동차 산업의 파급효과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선진국들은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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