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대우건설 M&A가 졸속 재입찰 논란으로 점점 불투명해지는 형국입니다. 대우건설의 대주주인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중흥건설그룹은 반드시 매각·인수를 마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우건설 노조는 중흥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자체가 위법이라며 실사저지·매각반대를 위한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고, 정치권에서는 매각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우건설 노조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경영진은 기업실사를 통해 대우건설을 팔아먹는 매국적 오류를 범하지 말라"며 실사협조 거부의사를 대내외에 다시 한번 천명했습니다. 또한 최근 여의도 일대에는 KDB산업은행 대관팀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대거 불려갔다더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중흥건설은 실사를 시작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 여기까지는 대우건설 매각 이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겠죠. 이번에는 좀 다른 얘기를 해봅시다.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서, 왜 중흥건설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려는 걸까요? 이쯤 논란이 커졌으면 수년 전 호반건설그룹의 사례처럼 M&A를 포기하는 수도 고민해 봄직한데, 중흥건설의 인수 의지는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정창선 중흥건설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광주상공회의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대우건설을 살리고자 인수를 결심했다. 세계적인 건설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중흥건설은 대우건설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M&A를 강행하는 걸까요. 그리고 중흥건설의 '대우건설 활용법'은 과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기업이 어떤 진짜 목적으로 M&A를 추진 중인지 그 진의를 파악하긴 쉽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과 여러 정황들을 토대로 유추할 수밖에 없겠죠. 최근 중흥건설이 꺼낸 말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려는 가장 주된 이유는 '글로벌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로 변화를 꾀해 지속가능경영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로 보입니다.
중흥건설그룹은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인 지난 6일 '대우건설, 세계 최고 부동산 플랫폼으로 키울 것'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대규모 부동산 개발 능력을 보유한 중흥의 강점과 우수한 주택 브랜드, 탁월한 건축· 토목·플랜트 시공 능력·인적자원을 갖춘 대우건설의 강점이 결합하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 전문 그룹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으로 자신한다"며 "대우건설의 푸르지오를 국내 1등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국내외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을 통한 지속적인 수익 창출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 유력 엔지니어링 회사를 인수해 해외 토목·플랜트 사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확대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첨단 ICT기술을 확보해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플랫폼으로 경쟁력을 갖춰 나갈 계획"이라며 "건축·인프라·엔지니어링 역량을 바탕으로 대규모 부동산 개발·운영까지 아우르는 선진 디벨로퍼의 시대를 여는데 5400여 명의 대우건설 임직원들과 함께하겠다. 또한 대우건설이 최고의 건설사인 만큼, 임직원들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는데요.
'부동산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좀 애매합니다만,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함을 감안했을 때 '신재생에너지+스마트기술 역량을 더한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라고 해석 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동산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사업자'를 뜻하는데요. 요즘 통용되는 의미는 '토지 매입과 시행까지 하는 건설사'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지 매입, 사업 기획, 설계, 자금 조달, 분양 마케팅, 시공, 그리고 사후관리까지 부동산 개발사업의 'A to Z'를 모두 한 건설사가 수행하는 거죠. 대형 건설사들 사이에서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는 하나의 트렌드입니다. 코로나19 사태, 문재인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 등으로 인해 대형사들의 주요 먹거리인 도급 물량이 급감하면서 자체 개발사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기 때문이죠. 대우건설도 이 같은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대표적인 업체입니다. 경기 과천, 김포, 수원, 양주, 하남, 충남, 부산 등에서 지난해와 올해 개발사업을 활발하게 진행(예정) 중이며, 베트남 스타레이크시티 등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로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반면, 중견건설사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국내 중견사 대부분은 수많은 계열사(시행사)들을 활용한 이른바 '벌떼 입찰'로 택지를 확보하고, 모회사는 도급계약 등 형식으로 시공을 맡은 뒤, 다시 이를 계열사를 비롯한 하청업체에 골조공사 등 하도급을 맡겨 일감과 자금을 몰아주고 배분하는 방식으로 성장했습니다. 약간 '마이너'한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인 셈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형 건설업체들이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를 표방하며 안 그래도 부족한 택지를 사들이고 개발사업을 주도하자 중견업체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죠. 더욱이 최근 코로나19 사태 등에 따른 경기침체 장기화,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등으로 대형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력·경쟁력이 부족한 중견사들이 애를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도 소비자들에게 명함을 내밀기 어렵고요. 중견사들 입장에서는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에 있어 각종 변수가 축적되고 다방면에서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대형 건설사급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로 도약하든, 지금까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해외로 눈을 돌리든,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 포트폴리오를 수립해야 하는 변화의 기로에 놓인 겁니다.
중흥건설그룹도 마찬가지 실정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중흥건설이 공시한 대규모기업집단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중흥건설이 계열사들로부터 챙긴 상표권 수입은 2018년 약 12억 원, 2019년 약 10억 원, 2020년 약 7억 원 등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습니다. 중흥토건의 상표권 수입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고요. 중흥건설그룹에서 상표권 수입이란 각 계열사들이 시행사로서 얼마나 많은 땅을 확보해 모회사 실적에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객관적인 척도입니다. 상표권 수입이 줄고 있다는 건, '벌떼 입찰'과 같은 영업방식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변화의 기로에 놓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기로에서 중흥건설이 택한 옵션이 바로 대우건설 인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향후 플랜도 개략 유추 가능합니다. 다시 앞선 보도자료로 돌아가면 중흥건설은 '중흥이 보유한 대규모 부동산 개발 능력'과 '대우가 보유한 우수한 브랜드, 건축· 토목·플랜트 시공 능력·인적자원'을 결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중흥이 보유한 대규모 부동산 개발 능력'이라함은 결국 수많은 계열사(시행사)를 뜻하는 걸로 풀이됩니다. 중흥건설그룹은 현재 이 계열사들을 정리하는 데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강화된 내부거래 규제도 피해야 하고, 대우건설 인수 성사 시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규모 10조 원)으로 지정돼 더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죠. 실제로 중흥건설그룹은 2019년 말 5개 계열사를 흡수합병시킨 데 이어, 올해에도 3개 계열사를 합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계열사 정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너일가, 친인척, 그리고 그들 지인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우건설 지분을 확보한다면 흡수합병, 삼각합병, 역합병 등 여러 합병 공식을 사용 가능하고, 그만큼 모두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가능성도 높아지게 됩니다. 시행 조직이 통째로 대우건설에 이식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중흥건설의 또 다른 대우건설 활용법은 '대우가 보유한 우수한 브랜드, 건축·토목·플랜트 시공 능력·인적자원'이겠죠. 대우건설의 푸르지오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을 대표하는 주택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래미안,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GS건설의 자이, 포스코건설의 더샵보다 브랜드 평판이 우수하다는 조사 결과도 다수 있습니다. 중흥건설그룹은 중흥S-클래스와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대우건설의 건축·토목·플랜트 시공 능력·인적자원은 국내외에 이미 널리 알려져있죠. '인재 사관학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말입니다. 건설업계 내에서도 무척 보수적이고 딱딱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흥건설그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전망입니다. 여기에 중흥건설그룹에게 전무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해외 마케팅 전문 역량도 한번에 거머쥐는 효과도 누릴 수 있고요.
이밖에 중흥건설그룹은 '체면'을 세우는 데에도 대우건설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흥건설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광주 지역 일간지 〈남도일보〉는 최고경영자 아카데미 강좌 'K포럼'을 2015년부터 현재까지 실시 중에 있습니다. 해당 포럼은 광주·전남 지역 CEO, 정치인, 공기업 및 대기업 임직원, 고위공무원, 법조인, 회계사, 의사, 교육, 문화, 예술계 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데요. 매기 전현직 정치인, 문화예술인, 학자 등 각계 명사들을 강사로 초빙해 강의를 듣고, 원우들은 산업시찰, 졸업여행 등 명분으로 국내외 명소에서 친목을 도모하기도 하죠. 그런데 중흥건설그룹이 남도일보를 인수한 2017년부터 K포럼의 성격이 조금씩 바뀐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역 건설업체, 설비업체, 조경업체 등 업계 관계자들의 K포럼 가입이 늘어난 겁니다. 중흥·남도·K포럼 트레킹이라는 소모임이 생긴 것도 이쯤입니다. 이들 지역업체 중 일부는 이후 중흥건설그룹의 협력사로 등록됐습니다. T건설사, S글라스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정원주 중흥건설그룹 부회장은 "중흥건설과 남도일보, K포럼은 한 지붕 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대우건설을 인수로 확보한 많은 일감을 지역업체들에게 하도급을 준다면 지역사회에서 중흥건설그룹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중흥건설의 대우건설 활용법은 계획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현재 돌아가는 상황들을 고려하면 그럴 공산은 낮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우건설은 이미 2019년부터 종합 디벨로퍼 도약을 선언하며 대규모 개발 역량을 키워온 업체입니다. 이 같은 디벨로퍼 전환에 따른 자체 개발사업 추진으로 대우건설은 최근 매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중흥건설그룹의 계열사(시행사)가 보유한 부동산 개발 능력이 플러스(+)로 작용해 시너지를 내기 보다는 오히려 구성원 간 갈등이 촉발될 여지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총파업까지 예고한 대우건설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지켜보면 그 생각은 더욱 굳어집니다.
브랜드 활용 문제도 불투명해 보입니다. 중흥건설그룹은 대우건설의 푸르지오와 중흥건설그룹의 중흥S-클래스를 별도로 운영할 것이라고 내세웠습니다. 또한 대우건설의 경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죠. 이 같은 공언대로면 대우건설의 신사업본부(개발사업팀 등), 중흥건설그룹의 계열사(시행사)가 따낸 일감을 대우건설과 중흥토건이 각각 시공을 맡아 푸르지오, 중흥S-클래스를 선보이는 식의 사업구조가 구축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인지도 등 측면에서 격차가 큰 두 브랜드가 한 지붕에서 공존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파라곤'과 '이지더원' 사례가 대표적인 예죠. 동양건설산업의 파라곤이 더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으니, 라인건설이 시공을 맡더라도 이지더원이 아닌 파라곤을 내세우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요. 아마 푸르지오와 중흥S-클래스도 그런 식으로 귀결될 겁니다. 그게 시장 논리니까요. 문제는 이번 M&A가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면서 푸르지오의 브랜드 가치가 위축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중흥건설그룹이 예상하는 만큼의 효과가 나오진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건축·토목·플랜트 시공 능력·인적자원 역시 물음표가 붙습니다. 현재 대우건설 구성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꽤 큽니다. 이미 이직을 한 사례가 나오고 있고, 이직을 준비하는 임직원들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M&A가 성사될 경우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시공 능력과 인적자원이란 결국 사람인데, 사람들이 떠난다면 중흥건설이 기대하는 시공 능력과 인적자원은 확보하기 어렵겠죠. 같은 차원에서 글로벌 네트워크와 해외 마케팅 전문 역량도 거머쥐기 힘들 겁니다. 더욱이 중흥건설은 "해외 유력 엔지니어링 회사를 인수해 해외 토목·플랜트 사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확대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지금 중흥건설그룹의 자금 상황을 보면 대우건설 인수 후 단기간에 유력 해외 업체를 사들이긴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밖에 정치권의 시선도 당분간 부담으로 작용하겠죠.
중흥건설그룹은 대우건설 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와 이르면 이번주 중 인수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입찰 보증금을 납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어 기업실사, 본계약과 잔금 납부, 주주총회 등을 거쳐 연내 M&A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인수 의지가 상당히 강한 눈치인데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우건설 매각은 과연 어떤 식으로 끝을 맺게 될까요. 만약 중흥건설이 대우건설을 품게 된다면, 그들의 대우건설 활용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여러 구설수로 인해 기대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많은 상황입니다만, 모쪼록 우리나라 건설산업 전반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사안이 진행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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