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지우 기자]
회사가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보내는 해병대 연수를 직원이 거부했어도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최근 나왔다. 해병대 캠프를 무단이탈해 징계처분을 받은 하나은행 김모(53)차장이 부당징계소송을 법원에 제기, 법원이 이를 인정한 것이다. 하나은행은 그간 직원의 나이와 신체적 조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근무성적이 저조한 행원들을 업무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해병대 캠프에 보냈다.
하나은행, 50대 직원 해병대 캠프 거부하자 정직 6개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진창수)는 하나은행 김모(53)차장이 “해병대 연수를 거부하고 퇴소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징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지난 6월27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차장은 지난해 4월 해병대 캠프 연수를 가게 됐지만 27년간 사무직으로만 일한데다 허리디스크와 6급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 훈련이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 캠프 직원들과의 마찰 끝에 무단 퇴소했다. 이후 회사는 김 차장에게 정직 6개월 징계를 내렸고, 이에 김 차장은 지난해 12월 소송을 제기했다.
김 차장이 해병대 캠프에 가게 된 것은 은행에서 ‘정체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원’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지점에서 섭외 및 전담감사로 일하는 그는 2010년 2월 직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는 직원으로 분류된 후 2주간의 합숙훈련과 1주 사이버 연수를 받았다. 또 이후 3개월 동안 현장 평가를 받았지만 김 차장은 여기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해병대 캠프에 보내졌다.
그러나 그는 입소 20분만에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며 캠프 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50이 넘은 나이에 레펠을 타고 고무보트를 드는 등 훈련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 차장은 허리디스크와 6급 시각장애까지 지니고 있어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캠프 측은 김 차장의 훈련 거부에 “회사를 통해 교육거부 사유서를 제출해야 퇴소가 가능하다”는 답을 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김 차장은 캠프 직원들과 언성을 높이며 몸싸움까지 벌였다. 결국 김 차장은 “무단이탈을 할 경우 연수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회사의 통첩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캠프 이튿날 집으로 돌아왔다.
한 달 뒤 은행은 교육거부, 외부강사에 대한 폭언 등을 이유로 김 차장에게 정직 6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에 김 차장은 “연수를 빙자한 징벌적 성격의 교육”이었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구제신청을 했다. 지난해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중앙노동위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중앙노동위가 이를 기각하자 결국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부당징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부 “훈련 참가 거부는 징계사유 아니다”
재판부는 김 차장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사무직으로만 일해 온 원고는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었고 6급의 시각장애인인 사정에 비춰 보면 해병대 훈련이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거나 업무능력을 향상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야외 훈련은 원고와 같은 경력과 나이, 신체조건을 갖춘 사람에게 있어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인격권 등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근로계약에 의한 노무지휘·감독권의 범위를 넘어서고, 사회통념상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 업무지시였기 때문에 훈련 참가 거부를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해병대 캠프의 무단이탈과 폭언 등에 대해서는 “야외행동훈련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현재 하나은행의 해병대 캠프 연수는 중단된 상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여러 연수 프로그램 계획 등 사정에 따라 중단된 상태”라며 “앞으로 지속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라고 전했다. 다만 해병대 캠프의 성격에 대해서는 “징벌적 성격이 아닌 동기부여를 위해 진행한 것으로,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유서 등 절차 없이 연수규정을 위반해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