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주당, 그냥 사과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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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주당, 그냥 사과하면 안 되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03.08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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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새벽 4시18분 방문 빼놓고 삼척 7시 방문만 강조하는 민주당 해명…국민 분노만 키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5일 새벽 4시경 울진 국민체육센터 1 대피소를 방문한 당시 모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5일 새벽 4시경 울진 국민체육센터 1 대피소를 방문한 당시 모습. ⓒ더불어민주당

7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페이스북 페이지를 살펴보던 기자는 좀 이상한 게시물을 발견했습니다. ‘삼척 재해현장 방문 가짜뉴스 팩트체크’라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강원도 삼척 대피소(원덕읍종합복지회관) 방문과 관련 ‘새벽 시간에 어르신들의 잠을 깨우며 사진을 찍었다’라는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있다”면서 “이는 가짜뉴스로 후보가 삼척 대피소에 방문한 시간은 대피소 아침 식사 직전인 오전 7시경”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악의적 허위사실 및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전원 법적 대응 하겠다”고 엄포도 놨죠.

이 게시물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지난 5일 오전 7시34분에 기자가 민주당으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민주당 측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이재명 후보는 5일 오늘 새벽에 울진과 삼척 산불 현장을 비공개로 방문했다”면서 “이재명 후보는 04시18분에 울진 국민체육센터 1 대표소를 방문하여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산불로 인한 피해상황과 이재민들의 고충을 경청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04시34분경 울진 연호문화센터 제2 대피소를 방문해 이재민을 맞이할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고 밝히고 “04시48분경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에 설치된 산림청, 경상북도, 소방청의 합동상황실을 방문해 관계자를 격려하고 산불 진화와 이재민 보호에 대한 진행 상황을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이재명 후보는 05시20분 화재현장을 차량으로 이동하며 직접 둘러보고, 06시50분경 LNG기지 인근 강원도 삼척 원덕복지회관 제 1 대피소를 방문하여 이번 화재로 집이 전소된 이재민에게 고충과 호소를 듣고 위로를 전하며 지원을 약속했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후보들의 일정이 10분 단위로 통보되는 것과 달리, ‘04시18분’이나 ‘04시34분’, ‘04시48분’과 같은 구체적인 시각으로 표기돼 있어 이재명 후보가 현장에 방문한 후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죠.

민주당이 5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 ⓒ더불어민주당
민주당이 5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 ⓒ더불어민주당

그런데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페이지에 “삼척 대피소에 방문한 시간은 대피소 아침 식사 직전인 오전 7시경”이라는 글이 올라와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꼼꼼히 살펴봤더니, 민주당이 왜 그런 해명을 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민주당 주장대로 ‘삼척’ 재해현장을 방문한 건 06시50분이고, ‘울진’ 재해현장을 방문한 게 04시18분이었던 겁니다. 왜 민주당이 같은 날 방문한 울진 재해현장 이야기는 쏙 빼놓고 ‘삼척 대피소’만을 강조했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울진’은 새벽 04시18분에 방문했지만 ‘삼척’에 방문한 건 7시경이었으니 ‘삼척에서 새벽 시간에 어르신들의 잠을 깨우며 사진을 찍었다’는 건 가짜뉴스라는 논리입니다.

아마 민주당도 아는 사실이겠지만, 국민들이 지적했던 건 ‘삼척’을 방문했다는 게 아니라 울진이든 삼척이든 왜 꼭두새벽부터 찾아가서 이재민들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냐는 겁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런 물음에 ‘삼척’에는 오전 7시경에 찾아갔다는 엉뚱한 해명을 내놨습니다. 울진에 새벽 04시18분부터 찾아가 이재민들 잠을 깨운 건 ‘진짜뉴스’니, 삼척에 오전 7시경에 간 것만 강조한 거죠. 아마도 이러면 국민들이 ‘그럼 울진에는 몇 시에 갔느냐’고 묻지 않고, ‘재해민들의 잠을 깨웠다’는 뉴스 전체를 ‘가짜뉴스’로 인식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실수에 대해 겸허히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지 기회를 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반면 교묘한 방법으로 실수를 덮으려 하면 그 ‘꼼수’에 더 분노하면서 신뢰를 거둡니다. 부디 민주당이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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