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윤 “한국은 선진국 아냐…이러다 중진국 함정에 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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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윤 “한국은 선진국 아냐…이러다 중진국 함정에 매몰”
  • 장대한 기자
  • 승인 2022.03.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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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포럼(79)]박재윤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경제, 발전·후퇴 중대 기로…근면성 회복·경제체질 개선 시급”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장대한 기자]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제85회 동반성장포럼 행사에서 주제 발표를 하는 모습.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제85회 동반성장포럼 행사에서 주제 발표를 하는 모습.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경제계 원로학자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니라는 냉엄한 평가를 내렸다. 국내 상당수 식자(識者)들이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찬하는 와중에도 노교수는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데 굽힘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 경제가 선진국에 들 지, 중진국에 영원히 머무를 지를 결정할 중대 기로에 서있다고 경고하며, 성장 기조 회복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든의 나이를 넘은 이 원로학자는 YS(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장관, 통상산업부 장관을 역임하며 이름을 알린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다. 박 명예교수는 이후 후학 양성에 일신을 바치며 교육계와 경제계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는 지난 10일 모교인 서울대학교 내 교수회관에서 열린 제85회 동반성장포럼 행사에 참석해 한국경제가 당면한 기본 과제들을 짚어가며 선진화의 길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박 명예교수는 가장 먼저 '한국은 선진국인가' 하는 강력한 화두를 던졌다. 청중들이 웅성거리려는 찰나에 박 교수는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라고 본다"고 규정했다. 그는 지난해 7월 UNCTAD(유엔무역개발협의회)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했다는 정보부터 오용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기존 A그룹(아시아·아프리카)이 아닌 B그룹(북미·유럽) 소속으로 변경한 부분을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건 오류라는 지적이다.

그는 UNCTAD는 공식적으로 한국이 선진국임을 발표하지도 않았고, 선진국이라는 용어 역시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B그룹에는 우리보다 선진국가라 볼 수 없는 안도라, 키프러스 등 여러 국가들이 포함되는 맹점을 안고 있다고 내세웠다. 실제로 1960년대부터 선진국으로 평가받은 싱가포르의 경우 여전히 A그룹에 속해 있다. 박 교수는 "이를 종합할 때 결국 우리가 B그룹에 들어갔다고 해서 선진국이 됐다고 하는 건 착각"이라며 "회원으로서의 부담을 더 지게 하기 위한 성격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3050 클럽'이라는 시사용어에 대한 무용론(無用論)도 설파했다. 3050 클럽은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이상에 5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를 만족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7개 국가 뿐인데, 그 안에서도 격차가 너무 크게 발생해 함께 묶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단적으로 2020년 기준 미국(6만9375달러)과 한국(3만5196달러)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두 배 차이를 보인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박 교수가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 배경에는 '중진국 함정론'을 경계해 성장기조 회복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사대주의가 아닐 뿐더러 대한민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던 셈이다. 박 교수가 말하는 중진국 함정론이란 후진국이 중진국으로 거듭나면 그 상태에 만족해 더 이상의 발전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나아가 중진국권 진입 후 반세기(50년)를 지나는 과정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면 영구히 중진국이 되거나, 후진국으로까지 추락할 수 있음을 뜻한다.

박 교수 "지난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진국으로 분류됐던 26개 국가들 중 반세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23개국은 중진국 함정에 매몰됐다. 특히 멕시코를 비롯한 4개 국가는 후진국권으로 추락하기까지 했다"며 "한국은 산업화를 통해 1970년대 후반에 중진국권에 진입했는데, 50년이 지나는 오는 2020년대 후반까지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면 매몰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제85회 동반성장포럼 행사에서 주제 발표를 하는 모습.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제85회 동반성장포럼 행사에서 주제 발표를 하는 모습.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박 교수는 선진국 도약을 위한 성장 기조를 다시금 회복하려면 근면성 유지와 지식력 배양을 통한 경제체질 혁신과 격차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공통소득제, 장학금제도 강화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부적으로 우리나라의 강점이었던 근면성과 실행력의 후퇴를 막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했다. 그는 "다른 선진국들 대비 정례 공휴일이 16일로 매우 많은 상황으로, 대체공휴일제는 없애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대신 현충일과가 어린이날 등은 날짜로 정하지 말고 해당 월의 첫 주 금요일로 정해 금토일 연속으로 쉴 수 있도록 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한 소득수준에 비해 떨어지는 경제체질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지식사회가 요구하는 정보력과 창의력, 협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같은 것만 되풀이하며 제로섬 게임을 펼치는 게 아닌 '승승사고'를 통해 함께 파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승승사고는 동지를 위해선 희생할 수 있다거나, 적은 무조건 망하게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의식에서 벗어나 선의의 경쟁으로 함께 시장을 키워나간다는 의미"라며 "동반성장의 기초 덕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 격차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시급한 문제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 유독 격차 불만이 팽배해진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첫 출발선인 교육기회부터 균등히 보장하기 위한 장학금 제도 확충 등을 통해 분배 체제의 변화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전국민에 기본소득의 85%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공통소득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확한 산출이 이뤄지지 못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조세저항을 일으키지 않고, 공통소득의 의미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 지출을 모두 폐지해 공통소득으로 통합하고, 조세 누진도를 높여서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구상이다. 

박 교수는 "저소득층은 공통 소득 전액을 지원 받고, 중소득층은 자기가 세금을 그만큼 더 내고 공통 소득을 받게 된다"며 "반면 고소득층은 자기가 받는 공통 소득과 저소득층의 공통소득 만큼을 조세로 더 내게 되는 방식"이라고 부연했다. 물론, 이 같은 제언은 우리 사회가 함께 검토해보자는 취지인 동시에, 기술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시 여부와 공통 소득 금액을 정해야 하는 등 만만찮은 숙제를 안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담당업무 : 산업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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