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다. 적어도 지지율만 보면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은 <한국갤럽> 여론조사 기준 지지율 45%로 임기를 마쳤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당한 대통령이 됐다.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역대 대통령 중 지지율은 제일 높았지만 정권을 재창출하진 못했다.
왜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45%라는 수치 자체가 애매한 면이 있다. 여당 후보가 선을 긋기엔 너무 높다. 그렇다고 지지층에만 매달리기엔 조금 낮다.
근본적으로 보면 문 전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문 전 대통령은 마치 ‘오늘만 사는’ 지도자 같았다. 오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미래 자원을 거리낌 없이 끌어다 썼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그랬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그랬다. ‘문재인 케어’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국민연금 개편처럼 ‘필요하지만 인기 없는’ 문제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놨다. 재정 파탄이 뻔히 예고됐지만 논의 자체를 덮어버렸다.
문 전 대통령 정책은 항상 ‘국민 눈높이’를 고려했다. 국민이 싫어하면 하지 않았다. 그게 지지율을 지킨 배경이었다.
그러나 당장의 국민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다 보니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우는 데는 소홀했다. ‘역대급’ 인기를 누렸음에도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한 이유다.
일반 국민은 생업에 종사한다. 늘 바쁘다. 특정 정책이 가져올 파장을 파악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당연히 눈앞의 이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 좋은 일만 하다가는 미래의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만들어진 직업이 정치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치인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일종의 ‘전문가’다.
국민의 위임을 받았으니 정치인은 마땅히 국민 뜻을 따라야한다. 하지만 전문가라면 국민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미래의 위험을 감지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 과정에서 국민적 반발이 있더라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수임인이자 전문가인 정치인이 해야 할 임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들은 ‘국민이 원하는 것’만 하는 존재처럼 행동하고 있다. 당장의 인기를 위해 미래 따윈 내팽개쳐버린 사람들 같다.
당대 국민들의 뜻만 따랐다면 대한민국엔 그 어떤 인프라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보험을 비롯한 복지 정책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을 것이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미래 위험을 위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현재의 대한민국이 이뤄진 건 당장 자신의 인기가 떨어지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한 정치인들의 공이 크다. 하지만 ‘국민 뜻에 따른다’는 지금 정치인들의 말 속엔 미래에 대한 준비가 보이지 않는다.
각종 연금 재정은 파탄이 예고돼 있다. 국가 빚은 천문학적 수준까지 늘었다. 저출산·고령화는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성큼 다가왔다. 이제는 정치인이 국민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막연한 정언명령에서 벗어나, 미래를 준비하는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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