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창민 자유기고가)
어린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초등학교 교정에 온통 하얀색 복장으로 무장한 일련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에서 어떤 기구들을 주섬주섬 꺼내놓기 바빴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교실 내 어린이들이 하나 둘 동요하기 시작해 이내 교실은 아비규환이 됐다. 하얀 색 사람들이 꺼내 놓은 기구는 다름 아닌 모든 어린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불주사’였다.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번호 순으로 줄을 서서 한참 앞의 친구들이 주사를 맞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공포감이란……. 그냥 주사만으로도 충분히 아프고 두려운데 한술 더 떠서 매번 주사를 놓을 때 마다 주사바늘을 불에 달구기까지 하는 하얀 색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악마와도 같은 형상으로 어린이들에게 다가왔다.
60, 70년대 당시 초등학생들로 하여금 잊을 만하면 찾아와서 공포에 떨게 했던 ‘불주사’의 추억이다.
뭐니 뭐니 해도 주사기는 병원의 으뜸가는 상징이다. 하지만 주사기는 그것이 주는 통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게 되며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또한 병원하면 으레 아픈 주사기의 공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주사기는 질병 치료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아무리 좋은 약을 개발해도 이 주사기라는 도구가 없다면 효과적으로 약을 체내에 주입할 수가 없게 되며, 또한 제대로 된 주사기가 발명됨에 따라 의약학자들에게 이에 걸맞은 약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 반대로 주사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많은 경우의 약물은 개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사기는 1850년대에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전에는 칼로 피부를 절개하여 약물을 억지로 주입하기도 했다고 하니 주사기의 개발은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사실 위에서 언급된 ‘불주사’는 1회용 주사기가 없던 시절 여러 사람에 대해 같은 주사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기에 소독의 목적으로 주삿바늘을 불에 달구어 사용했던 것을 일컫는다.
지금 생각하면 위생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광경이었다고 여겨지나 당시의 상황으로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하지만 현재는 진화를 거듭하여 보다 저렴하고 보다 간편하며 위생적인 1회용 주사기가 널리 보급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주사기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이 때문에 주사기는 필자를 포함한 적지 않은 이들이 병원에 가기를 꺼리게 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주삿바늘 없이 강력한 압축력만으로 피부를 통해 순간적으로 약물이 흡수되게 하는 통증이 없는 주사기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아직 널리 보급되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 주사 맞기가 두려워서 아파도 병원에 가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