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에 민심의 흐름 정확히 읽던 정치인”
“여야, 타이밍 놓치며 정치권 온통 혼돈 속으로”
“야당의 잠룡들은 언제쯤 ‘주사위’ 던질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정치권은 요즘 민심을 제대로 읽어볼 생각이나 하는지 의문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만 계속하고 있다. 민주당 내홍과 혼돈 상황이 심각하지만, 정부 여당도 별로 나을 게 없다.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 덕분에 집권해 놓고 1년여 동안 허우적대는 모습만 계속 보여준다. 야당인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인 탓도 있겠고, 국가 요직 곳곳을 전 정권에서 심어놓은 반대파들이 차지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자를 필두로 모든 정부 조직과 함께 이런저런 프리미엄을 쥐고 있는 게 여당이다. 집권 1년이 넘도록 비틀거리며 여전히 국정에 동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건 매번 한 발씩 늦는 대처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민주당 역시 타이밍 놓치는 데는 여당과 매일반이다. 정치권 전체가 타이밍을 놓치고 우왕좌왕하는 혼돈의 정치 시대를 열고 있는 셈이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서, 격변기마다 타이밍을 절묘하게 잡아내던 최고수 정치인 YS(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가 생각나는 이유다.
문제는 큰 가치관의 무게
YS의 민심 흐름 읽기는 되돌아봐도 절묘하다. 1979년 10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국회를 떠났을 때나, 의원직 박탈의 빌미가 됐던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 모두 타이밍을 제대로 잡은 기획물이었다. 민주화의 열기가 충분히 달아올랐다는 판단과 함께 그 열기에 불을 붙이고자 했던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이후 또다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민주화 실행이 좌절되기는 했지만.
1993년 집권 초기에 그 막강했던 군 사조직 하나회를 ‘겁 없이’ 해체했던 일이나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한 것도 모두 타이밍에 맞는 조치였다. 민심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내며 군부의 사조직을 해체하고 수십 년 동안 논의만 무성했던 부자들과 정치권의 검은돈을 양지로 끌어낸 일은 집권 초 국민적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권 말기에 환란을 겪으며 이후 저평가되기는 했어도 YS가 타이밍을 잘 잡아 결단을 내린 정치인이었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별로 없다. 그의 그러한 결단들은 민주화를 향한 일관된 집념과 실행 철학서 ‘大道無門(대도무문)’에 기초했다고 보는 게 옳겠다.
그에 견주어 보면 지난 1년간 윤 정부의 개혁과 헛발질 실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파동, 이준석 파동, 장관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 바닥권을 맴도는 대통령 지지율, 연금·노동·교육 개혁의 미흡한 추진 등등.
앞서 말한 대로 여소야대, 그리고 보수정당의 고질적 병폐인 부자병과 안전 제일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한 탓이 크다. 정치 초년생인 윤 대통령의 미숙함도 한몫했다. 자격 미달 장관 후보자들을 바로 내치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인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다음에 끌려 나가게 했다.
야당과의 협치나 언론, 노동계와의 ‘협치’에도 실패함으로써 개혁 정책에서 지난 1년을 허송세월한 성적표를 보여줬다. 윤 대통령의 개인적인 유연성 부족도 아쉬운 대목이다.
아마도 가장 큰 장벽인 여소 야대 탈피를 위해 내년 총선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다수당이 되더라도 지금 같은 의지와 맨 파워로는 개혁 목표의 달성이 요원하지 않을까 싶다.
YS 때처럼 민주화를 위한 투지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시대상황이라면 북한과 중국에 끌려다니던 정치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결기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의 원맨쇼가 아닌 정부 여당 전체의 단합된 의지가 보여야 하는데 사즉생(死卽生)은 커녕 여전히 대통령 따로, 장관 따로, 국회의원 따로 가고 있다. 잘되는 집안 모습은 못 된다.
대통령은 취임 이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거듭 강조하지만, 그 가치관에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 온전하게 동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늘 그래왔듯 우리 정치인들의 ‘철학 부재’는 여전하다.
지금 같아선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제대로 ‘결심’만 하면 여당이 다수당으로 올라서기 힘들 거다. 다만 민주당의 지금 같은 혼돈 상태가 계속된다면 여당으로서는 대충 해도 평균작은 해낼 수 있겠다.
분당 위기까지 거론되는 민주당의 ‘신사들’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란 얘기는 몇 년 전까지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정당이라는 뜻이다. 여전히 그런 지는 잘 모르겠다. 원내 제1당의 혼탁한 상황에 질릴 대로 질렸지만 그래도 많은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민주당에 가는 중이다. 독자들의 시선이 그러하니 필자도 할 수 없이 그 속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한발 물러서 있는 정치권 인사들에게 복귀 여부를 물으면 손사래 치지만 결국은 대부분 정치권으로 되돌아간다. 정치인, 유명인들의 생리가 원래 그렇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들도 다 안다. 민주당의 ‘별’들도 대부분 그럴 거다.
지난번 대선을 앞두고 경선에 나섰던 이재명, 이낙연, 추미애, 정세균, 박용진, 김두관 등을 아직은 민주당 내의 별들로 봐야겠다. 그 외의 잠룡군에 김부겸 전 총리,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등이 꼽힌다고 들린다. 이들 중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극적인 표면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의 민주당 사태에서도 여전히 자제하는 게 맞는 처신인지 모르겠다. 돈 봉투, 코인, 잇단 체포동의안 부결 등 당이 최악의 사태로 몰려 ‘방탄 부패정당’ 프레임으로까지 씌워지는 지경인데 책임을 느끼지 않나? 뒤늦게 혁신위원회를 구성한다며 이래경 씨를 올렸지만 금세 낙마해 혼돈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팔짱 끼고 관망할 때일까.
분당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별들의 잠행은 온전한 행보일 수가 없다. 민주당은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위원장으로 최종 낙점했다. 혁신위보다는 비상대책위가 맞는 것 아닌가 싶다.
지난 1년 동안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체류한 이낙연 전 총리는 독일과 체코의 몇몇 대학에서 강연한 후 오는 24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직면했다”라고 진단했단다. 그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위기보다는 민주당 위기라는 말이 더 절실할 텐데, 외국에 오래 머물러 감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아직도 당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기가 싫어선가? 김부겸 전 총리도 양평에 머물며 찾아간 기자들에게 정치권에 복귀할지 말지 해석하기 애매한 말만 거듭한다고 전해진다.
친명 대 비명 세력 간 쇄신을 둘러싼 격전은 계속되고, 올드 보이들은 눈치 보는 신사의 모습만 하고, 내년 총선까지 혁신보다는 결국 공천권 다툼으로 이어질 거고. 국민 눈에는 결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민주당의 ‘줄리어스 시저’는?
논의가 필요하고 기다림도 필요하다. 그러나 논의만 무성하고 실행이 미뤄지면 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지금 야권은 논의만 하거나 기다릴 때가 아니라 파워 맨이 즉각 방향타를 쥐고 격랑을 헤쳐 나가야 할 때다.
2000여 년 전 로마 정치인 줄리어스 시저는 루비콘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결행의 의지가 담긴 말을 던졌단다. 민주당 어느 정치인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당을 혼돈의 늪에서 빼낼지 궁금하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