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꾼 3당합당…영원히 결별한 YS와 DJ [한국정당사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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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꾼 3당합당…영원히 결별한 YS와 DJ [한국정당사⑫]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9.13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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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야권 통합 실패에 제3의 길 고민한 YS…민정당·공화당과 합당 결행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계속된 야권 통합 실패에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제3의 길을 모색한 YS는 민정당·공화당과 합당을 결행한다. ⓒ시사오늘 정세연
계속된 야권 통합 실패에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제3의 길을 모색한 YS는 민정당·공화당과 합당을 결행한다. ⓒ시사오늘 정세연

1987년 제13대 대선을 앞두고 분열하며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줬던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1988년 제13대 총선에 대비한 야권 통합마저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뼈아팠던 건, 두 차례 협상 과정에서 DJ에 대한 YS의 믿음이 무너져버렸다는 점이었습니다.

제13대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미창당지구당 배분에 대한 DJ의 제안을 수용하고, 제13대 총선에서의 야권 통합을 위해 소선거구제까지 받아들였음에도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YS는 조금씩 DJ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총선 1년여 뒤, DJ가 이른바 ‘중간평가 유보’에 찬성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노태우는 제13대 대선 선거운동기간 ‘1988년 올림픽을 치른 후 선거공약 이행 여부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약속을 했는데요. 1989년 2월, 취임 1주년을 맞은 노태우가 실제로 중간평가를 준비하자 정치권은 찬반 논란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올림픽의 성공으로 여론이 호전된 상태에서 중간평가를 실시하면 자칫 노태우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입장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간평가를 강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부딪쳤던 겁니다.

이에 YS와 DJ,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국회 귀빈식당에 모여 ‘선(先) 5공 청산, 후(後) 중간평가’ 실시로 의견을 모읍니다. 그런데 며칠 후 노태우와 만난 DJ는 돌연 “중간평가를 신임과 연계해 국민투표로 실시하는 것은 현행 헌법에 정신에 어긋난다”며 “중간평가를 실시하더라도 헌법에 부합돼야 하고, 정책 평가로 국한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합니다. 이에 YS는 민주정의당과 평화민주당의 ‘밀실 거래’를 의심하며 격하게 분노합니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DJ는 노태우와 △광주민주화운동 문제 처리 △5공 비리 문제 처리 △80년 언론 통폐합 및 해직 관계자 처리 △전직 대통령 증언 문제 처리 △민주화 문제 △지방자치제 실시 △공무원노조 등 7개 항에 합의하면서 중간평가 실시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죠.

이 일을 기점으로 YS는 DJ와의 야권 통합을 포기하고 ‘보수 통합’으로 방향을 바꾼 듯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중간평가 유보 사건 두 달여 후인 4월 26일, 야3당 총재 회담에서 만난 YS와 DJ는 중간평가 문제로 설전을 벌였고,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6월 21일에는 노태우의 ‘정책 연합’ 제안에 YS가 “정책 연합은 안 되고, 하려면 통합을 해야 한다”고 답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더 지난 10월 2일에는 YS가 JP와 만나 정계 개편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결국 1990년 1월 22일. YS는 노태우, JP와 함께 ‘3당 합당’을 발표합니다. 군사독재세력의 후신(後身)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 평생을 이들과 맞서 싸운 민주화세력 통일민주당이 힘을 합쳐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 여당을 만든 거죠. 이렇게 4당 체제는 다시 민주자유당 대 민주당이라는 양당 구도로 전환됩니다.

1987년 민주화 전후 우리나라 정치 지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987년 6·29 선언 이전까지 우리 정치는 군사독재세력 대 민주화세력의 대결 구도가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지자 대선 후보 자리를 사이에 둔 YS와 DJ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4자 필승론에 마음을 빼앗긴 DJ가 대선 직전 평화민주당을 창당,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화세력은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나뉘고 맙니다. 이 4자 구도가 제13대 총선까지 이어졌고요.

이 과정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YS는 DJ와의 야권 통합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3당 합당을 통해 자신이 정권을 잡은 후 군사독재세력을 몰아내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합니다. 이렇게 창당된 정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현 국민의힘의 전신이죠. 민주자유당 이후 보수 정당에서 치열한 계파 갈등이 반복되는 기저에는 이 같은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한편 통일민주당 내에는 YS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김광일 등은 민주자유당에 합류하는 대신 민주당, 속칭 ‘꼬마민주당’을 창당합니다. 그리고 3당 합당으로 졸지에 소수야당으로 전락한 평화민주당은 재야인사들을 영입해 신민주연합당으로 다시 태어났죠. 하지만 두 정당 모두 1991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야권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들은 1991년 9월 16일 ‘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합당을 결의합니다. 이때부터 민주자유당과 민주당은 한국 정치를 양분하는 정당으로 명맥을 이어오게 됩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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