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지역·명분 없인 안 돼” [신당은 없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인물·지역·명분 없인 안 돼” [신당은 없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12.25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한국당, 자민련, 열린우리당, 국민의당이 성공 사례
신당 성공은 대권주자, 지역기반, 명분 유무에 달려
제3지대 신당도 대통령 중심 신당도 창당 동력 약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권주자급 인물과 지역 기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은 신당 성공의 최소 조건이다. ⓒ시사오늘
대권주자급 인물과 지역 기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은 신당 성공의 최소 조건이다. ⓒ시사오늘

선거는 온갖 욕망이 뒤엉키는 게임이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 힘을 얻으려는 자, 살아남으려는 자, 미래를 준비하려는 자 모두가 당선이라는 ‘절대반지’를 향해 질주한다. 수많은 야심이 동시에 움직이는 만큼, 정치 지형도 예측할 수 없이 요동친다.

제22대 총선도 예외는 아니다. 벌써부터 개별 의원들의 탈당설과 신당(新黨) 창당설이 여의도를 뒤덮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중도보수 신당설에서부터 더불어민주당 비명(非明·비이재명)계 신당설, 이들에 금태섭 전 의원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연합한 신당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힘 리모델링’ 신당설까지 들린다.

다만 실제로 신당이 창당될지, 또 신당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시선이 더 많다. 근거는 역사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성공한 신당은 1996년 자유민주연합, 2016년 국민의당을 꼽을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이 주도한 신당까지 포함해도 1995년 신한국당, 2004년 열린우리당 정도다.

이 정당들의 공통점은 인물·지역·명분이라는 ‘3요소’를 갖췄다는 점이다. 대통령제라는 제도와 지역주의라는 정치문화가 결합한 우리나라에서 대권주자급 정치인과 확고한 지역 기반,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창당 명분은 신당 성공의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현재 거론되는 제3지대 신당이나 대통령 중심 여당 리모델링에는 ‘성공한 신당의 3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제3지대 신당, 인물·기반·명분 없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신당 창당이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연합뉴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신당 창당이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연합뉴스

현 상황에서 신당 창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추진하는 중도보수 신당이다. 이 전 대표는 12월 13일 KBS <특집 1라디오 오늘>에 출연해 “아마 12월 27일에 하게 되는 건 탈당이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창당 준비를 할 것”이라며 “27일에 탈당 선언 같은 걸 할 것이다. 그 다음에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창준위가 당원을 모아서 그 다음에 시·도당을 창당하고, 그 다음에 중앙당 창당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창당이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그러나 ‘이준석 신당’의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남긴 신당은 1996년 자유민주연합과 2016년 국민의당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정당들의 공통점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와 안철수 의원이라는 대권주자급 리더가 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텃밭’을 등한시했던 틈을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며 3당 합당을 결행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실제로 군사독재의 후예들을 민주자유당에서 몰아내며 ‘호랑이 사냥’에 성공했다. 이러다 보니 강성보수 세력들의 지지 기반이었던 TK(대구·경북)에는 ‘반(反) 신한국당’ 정서가 불어 닥쳤는데, 이 정서를 활용한 사람이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였다.

9선 국회의원에 국무총리를 두 번 지냈고, 박정희 정권 시절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의 초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JP는 YS,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함께 ‘3김(金)’으로 불릴 만큼 걸출한 정치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JP가 자신의 고향(충청남도 부여군)인 충청을 기반으로 신당 창당 작업에 돌입하자 YS에 의해 밀려난 강성보수 성향 정치인들이 대거 자민련으로 향했다.

자유민주연합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좌)라는 대권주자급 리더가 있었다. 오른쪽은 박태준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자유민주연합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좌)라는 대권주자급 리더가 있었다. 오른쪽은 박태준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그 결과 자민련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대전·충청에 배정된 28석 중 24석을 쓸어 담았고, 대구에서도 13석 중 8석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켰다. 자민련의 성공은 JP라는 대권주자급 정치인과 충청이라는 지역 기반, TK지역에 분 ‘반 신한국당 바람’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인 셈이다.

2016년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親盧) 세력은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의도적으로 호남 세력을 외면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특정 지역을 기반 삼아 활동하는 정치인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참여정부에 대한 ‘호남 푸대접론’으로 이어졌다.

친노의 적자(嫡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이런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호남을 찾아 “내가 관여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 일(열린우리당 창당)이 참여정부의 큰 과오였다고 생각한다”며 “호남에 상처를 안겨주고 참여정부의 개혁 역량을 크게 떨어뜨렸다”고 공개 사과해야 했다.

바로 이 틈을 안철수 의원이 파고들었다. 친노에 대한 호남의 불신을 정확히 파악한 안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후 DJ 정신을 전면에 내걸고 동교동계와 결합, 호남 공략에 나섰다. 안철수라는 대권주자와 동교동계라는 호남 세력이 ‘호남 홀대론’이라는 기치를 들고 일어난 국민의당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광주·호남 28석 중 23석을 싹쓸이, ‘녹색 돌풍’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당은 친노에 대한 호남의 의구심을 이용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연합뉴스
국민의당은 친노에 대한 호남의 의구심을 이용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연합뉴스

이준석 전 대표 역시 자민련과 국민의당 모델을 그리고 있다. 이 전 대표는 11월 9일 대구를 찾아 “대구 도전이 어렵다지만 1996년 대구는 이미 다른 선택을 했던 적이 있다”며 자민련 사례를 거론했다. 자민련이 신한국당으로부터 대구를,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호남을 빼앗았듯이 대구를 기반으로 신당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민련과 국민의당 성공은 신한국당·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발 기류와 JP·안철수라는 대권주자급 리더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여전히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이 54.5%(에너지경제 의뢰로 리얼미터가 12월 7~8일 조사해 10일 공개한 여론조사 기준)에 달하는 TK에서, 국회의원 경험도 지역 기반도 없는 이 전 대표를 믿고 신당으로 향할 세력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15대 총선 당시 대구에 자민련 바람이 불었던 것은 YS 정권 출범 당시 대구에 설립 예정이었던 삼성상용차를 부산으로 가져간 데 대한 반감과 중심인물로 거물이었던 박철언 장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준석은 대구와 전혀 연고가 없고, 같이 거론되는 유승민은 아직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있어 대구에서 이준석·유승민 바람은 전혀 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꿈틀거리는 금태섭 전 의원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신당 창당 노력도 이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에서 진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인들이 모여 있음에도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 대권주자급 리더가 부재하다는 점, 명확한 지지 기반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 거대 양당에 대한 불신 외에는 유권자들의 욕망을 자극할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으로 인해 성공 확률은 더 낮아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과거에도 제3지대 창당 세력들이 힘을 모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대권주자급 리더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만 증명했을 뿐”이라며 “정치는 1+1=2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 분야다. 다양한 목소리를 묶어낼 수 있는 리더가 없으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 시점에서 제3지대 신당에 대한 전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명분 부족한 윤석열·이낙연 신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당 창당은 군사독재를 청산했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당 창당은 군사독재를 청산했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연합뉴스

다른 한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리모델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민주자유당에서 강성보수를 몰아내고 신한국당을 창당한 것이나, 친노(親盧) 세력이 호남 세력을 배제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듯이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의힘을 ‘체질 개선’한 신당이 등장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역시 동력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YS나 DJ 같은 지역 기반도, 창당 명분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YS의 경우 PK(부산·경남)의 지지를 업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창당이 불가피했을 정도의 명분도 있었다.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손을 잡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YS는 ‘군사독재 완전척결’을 기치로 내건 인물이었다.

때문에 임기 내내 YS의 목표는 ‘호랑이굴에서 호랑이를 잡는’ 일이었고, 1995년 말 진행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과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통과 등은 YS가 ‘호랑이 사냥’을 끝냈다는 상징적인 사건과 같았다. 즉, 군사독재세력의 후예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을 몰아낸 뒤에는 민주자유당의 ‘재창당’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지역 기반은 없었지만 명분이 확실했고, ‘탄핵 역풍’이라는 정치적 호재가 있었다. 알려진 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DJ가 1995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지역등권론’을 주장하자 “김대중의 지역등권론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역사적 행위”라고 공개적으로 일갈할 만큼 지역주의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였다.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리며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 출마, 낙선을 거듭한 건 잘 알려진 스토리다.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청산을 명분으로 삼았다. ⓒ연합뉴스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청산을 명분으로 삼았다. ⓒ연합뉴스

그러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새천년민주당은 여전히 ‘호남 색채’가 강한 정당이었다. 당시에도 ‘호남 정당’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한나라당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을 위시한 친노 세력은 새천년민주당에서 호남 색채를 버려야한다고 주장했고, 이들이 ‘전국정당화’를 위해 호남 세력을 배제하고 창당한 정당이 열린우리당이었다. 요컨대 열린우리당의 성공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과 노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라는 정치 상황이 더해진 결과물인 셈이다.

신한국당은 ‘군사독재 척결’,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시대정신을 등에 업고 만들어진 정당이었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의 ‘힘’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 ‘공감’이라는 동력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반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그럴 만한 명분이 없다. 명분이 충분했던 신한국당과 열린우리당마저 기존 세력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힘든 싸움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윤석열 신당’의 경쟁력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DJ나 YS는 지역의 맹주였기 때문에 확실한 지지 기반이 있어 신당이 가능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역풍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그런 소재가 없다. 지역 기반도 없고 지지율도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신당 창당이 가능할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비명(非明)계 신당의 운명도 그리 밝지 못하다. 현재 정치 지형에서 비명계 신당은 여당의 종속변수적 성격이 있다. 비명계 신당이 유의미한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유권자들이 비명계 신당을 위기에 빠진 친명(親明)계의 대체재로 인정할 때뿐이다. 여당이 과감한 변화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동안, 친명계가 ‘기득권 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여야 비명계 신당에도 기회가 생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진하는 신당에 대한 여론은 그리 좋지 못하다. ⓒ연합뉴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진하는 신당에 대한 여론은 그리 좋지 못하다. ⓒ연합뉴스

그러나 여당의 혁신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민주당은 친명계 중심의 현재 체제로도 총선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명계 신당은 창당 명분이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사익(私益)을 위해 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지금 같은 구도에서 비명계 신당이 유의미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신당 창당을 선언하자, 친명계는 물론 비명계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 민주당을 분열시켰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여론도 좋지 않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주)>에 의뢰해 11~12일 수행,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신당’은 7.9%의 지지율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로 범위를 좁히면 4.8%까지 떨어졌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양당 정치에 실망한 부동층이 많아진 정치 환경에서 제3지대 신당은 당위(當爲)지만, 이런 요구를 받쳐줄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 같다”면서 “창당하겠다는 몇 그룹이 있지만, 정치적인 동력이 약한 상태라 이번 총선에서는 의미 있는 세력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성공한 신당’이었던 1996년 자유민주연합, 2016년 국민의당, 1995년 신한국당, 2004년 열린우리당에는 대권주자급 인물, 탄탄한 지역 기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이라는 ‘3요소’가 갖춰져 있었다. 반면 이준석 신당과 금태섭·류호정 신당, 윤 대통령 중심의 신당, 비명계 신당 등 현재 거론되는 신당설에는 이 같은 ‘최소 요건’이 결여돼 있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깃발을 치켜든 ‘도전자’들은 과연 역사가 설정한 ‘성공 문법’을 깨뜨리고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세울 수 있을까.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