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비친 ‘불쌍한 한국 노인들’ [金亨錫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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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비친 ‘불쌍한 한국 노인들’ [金亨錫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12.24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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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국가 중 노인빈곤율 10여 년째 1위”
“대한민국에서 노인 된 죄로 늙도록 막노동 계속”
“워커홀릭 세대, 웬만해선 일손 못 놓는다”
“이대로면 젊은이들 늙은 후엔 더 악화”
“어느 한 세대쯤은 연금 등에서 조금 양보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추위가 이어진 지난 19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마련된 '사랑해 밥차' 무료 급식소에서 한 어르신이 식사하는 가운데 많은 시민이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OECD 회원국 중 1위로 나타났다. ⓒ 연합뉴스
추위가 이어진 지난 19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마련된 '사랑해 밥차' 무료 급식소에서 한 어르신이 식사하는 가운데 많은 시민이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OECD 회원국 중 1위로 나타났다. ⓒ 연합뉴스

K팝이나 K드라마가 세계 1위를 넘나 든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노인들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세계무대에서 이렇게 우뚝 서게 됐나…!’

노인들은 이번 성탄절에도 종로 파고다 공원 주변에 삼삼오오 춥게 춥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온 79세 미국 여가수 ‘브렌다 리’가 불렀던 캐럴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녀가 65년 전 부른 캐럴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트리(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이달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적’을 이뤘다는 외신 보도다. 해외 팝계에서는 당분간 복고풍이 이어질 거라는, 노인들에겐 여간 신나는 게 아닌 얘기까지 오간다.

그러나 한국의 할아버지들에겐 추억 속 얘깃거리, 먼 나라 소식일 뿐이다. 노인빈곤율이 십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 1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런 ‘호사’를 함께 누릴 여유가 없다.

압축성장 이룬 주역들이 가장 못 사는 역설

OECD가 지난주에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 66세 이상 노인들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빈곤율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 인구 비율이다. OECD 회원국 중 노인 소득 빈곤율이 40%대에 달할 정도로 높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고령층으로 갈수록 더 악화한다. 66~75세 소득 빈곤율이 31.4%인데 비해 76세 이상은 52.0%였다. 2명 중 1명 이상이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반면 고용률은 매우 높았다. 작년 기준 65~69세 고용률은 50.4%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0.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OECD 회원국들의 해당 연령대 평균 고용률은 24.7%였다.

이 수치, 가난한 한국노인들의 높은 고용률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그들의 여전한 워커홀릭 현상에 다름 아니다. 

열사 현장에서 횃불 켜놓고 밤샘 작업하던 건설근로자, 파독 광부, 가발·와이셔츠·앨범·문구류 등을 싸들고 각국을 누비던 수출전사. 그렇게 일에 중독됐던 노인세대들이 여전히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정부가 지난 2002년부터 주5일제 근무제를 부분 채택하기 시작하자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걱정했다.

국가는 이제부터 그들에게 약간의 보답이라도 해줘야 한다.
국회가 지난주 확정한 657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 중 고령층과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한 일자리는 모두 117만 7000명 분. 그 중 97%는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는 것으로 돼있다. 4월 총선을 겨냥한 것이 됐든 어쨌든 노인들에겐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물론 형식적인 지원이 돼서는 안 되고 선거 후 정부와 정치권이 또 “나 몰라라!”하는 식이 돼서는 더욱 곤란하다.

그러나 그런 일시적인 일자리 제공 등에 앞서 해야 할 일은 노인 포함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공적 의무’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 첫걸음은 당연히 연금개혁으로 시작돼야 한다.

노인 지원대책은 연금이 우선돼야 하지만…

일찌감치 국가 연금제도를 시행해 온 미국 등의 연금시스템은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촘촘하게 짜여있다. 예를 들면 이혼한 부부 중 한쪽이 사망할 경우, 살아있는 전처 또는 전남편에게까지 찾아가 사망한 사람이 남겨둔 연금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다. 미국에서도 한참 전부터 연금 고갈 우려가 나오고는 있으나 여전히 여유 있는 연금 운용 실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다소 엄살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국가 연금 역사가 일천한 우리의 경우, 애초 설계가 치밀하지 못했던 데다가 노인 인구 급증으로 인해 제대로 서비스를 하기도 전에 연금 고갈 우려를 맞고 있다. 당연히 연금개혁이 필수적 과제가 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은 당사자들 반발이 무서워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중이다. 

연금 개혁 문제를 논의할 때 반대파들은 흔히 복잡한 수치를 들이대며 여론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실은 간단한 덧셈 뺄셈 문제일 뿐이다. 국가 연금을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적당하게 내고 적당하게 받게 하며, 연금 수령 시기를 다소 늦추면’ 된다. 얼핏 그렇게 간단한 문제로 보이긴 하지만 이해당사자들, 특히 연금 적립시기나 수령일이 임박한 계층의 양보가 쉽지 않기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걸고 그 ‘살벌한 전투’ 끝에 가까스로 연금 개혁을 이뤄내기도 한 것이다. 겨우 국민연금 수령일을 2년 늦추는 정도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연금지급액 증액은 그래서 필요는 하지만 섣불리 채택할 사안은 못된다. 노인들에겐 연금 혜택을 늘리는 대신 간병인 및 간병비 보조, 요양원 혜택 확충 등 의료 혜택 확대를 중심으로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노인층이 실제 바라는 것도 그런 것들이다.

‘가난한 노인’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젊은 세대에게까지 ‘가난한 노년’을 대물림할 수는 없다. 연금개혁을 최우선 정책 순위로 두어 일정 계층부터 연금 수령시기를 늦춰야 하는 이유다.

앞서 말한 대로 빈곤의 늪에 빠진 고령층을 위한 연금 증액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아이도 낳지 못 하며 사는 젊은 층에게 과도한 적립액 증가를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다. 

따라서 파리처럼 서울의 길거리가 데모대로 어지럽혀져도 개혁을 단행,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적립액과 수령액을 조정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고령층이 오랜 세월 그만큼 희생해 왔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연금 증액도 포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장년층과 젊은 층의 맞장구도 기대해 볼 만하다.

미래의 한국에는 가난한 노인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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