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을 올해의 ‘스타일리시’한 인물로 선정
칼럼은 ‘Is South Korea Disappearing?’
“흑사병 때 유럽의 인구 감소와 섬뜩한 비교”
“인구정책 포함, 안정화 대책에 매진할 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사실 ‘노래를 아주 잘했다’거나 ‘열창했다’는 평은 썩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가수 윤석열’은 국제무대 데뷔에서 노래가 괜찮기는 했지만, 그보다 여유로운 제스처와 자연스러운 무대 매너가 돋보였다. 한마디로 스타일이 좋았다. 과거 서초동 일대에서 갈고닦은 솜씨 같다,
뒤늦은 평가지만 ‘아메리칸 파이’ 선곡도 탁월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참석자들 환호는 ‘아메리칸 파이’를 외국 정상이 스타일리시하게 부른 지점에서 터져 나왔다고 보면 될 거다. 선곡에서, 대통령실 참모진이 모처럼 한 건 올렸던 셈이다.
뉴욕타임스가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을 올해의 ‘스타일리시’한 인물로 선정한 건 그런 점에서 대체로 적절한 평가였다고 본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신문은 섬뜩한 제목을 달아 윤 대통령의 나라 한국을 중세 유럽 흑사병 위기에 비교하며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으되, 의도적이 아니고 객관적 자료에 근거했기 때문에 메시지의 울림이 더욱 컸다.
‘한국은 사라질 것인가?’라는 극단적인 제목과 중세 흑사병 때보다 더 빠르게 인구가 감소할 것 같다는 내용. 이제까지 한국의 저출산 현황을 다룬 어떤 다른 기사보다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외교 성과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아메리칸 파이’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은 요즘 국제무대에서 비교적 잘 통하는 스타일이다. 검찰총장 신분으로 문재인 정부에 맞서 싸운 뚝심과 맷집이 외교무대에서 통했다고 본다.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관계에서 일부 양보하며 기선을 제압한 예도 그렇고, 바이든과의 공고한 관계 설정에서도 그런 스타일이 통했을 거다.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은 물론 예외다. 실무진의 엉터리 정보 보고가 있었다고는 하나, 변명의 여지 없는 완전한 실패였다.
그ㄹㄴ데도 중동지역에서의 공사 수주,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협력 등 잇따른 경제분야 실적은 ‘尹 외교’ 성과물로 쳐줄 만하다. 야당을 비롯해, 반대파의 윤 정부 공격 중 외교 성과에 대한 폄하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다만 문제는 모든 외교 성과물이 항상 그렇듯이 그 효과가 금세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결실은 잘해야 윤 대통령 임기 말, 아무리 빨라야 내년 4월 총선을 지나서야 국민 눈에 제대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사이에 거대 야당의 포화는 지속될 것이고 이런저런 일로 불안해 하는 민심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지금처럼 정부 여당의 수세적 상황은 지속될 거다. 한마디로 화려한 외교적 성과가 내치의 벽에 가로막혀 윤 정부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게 할 것이라는 얘기다.
윗목까지 달궈줄 당장의 경제 성과가 미흡하다면 정부로서는 우선 국민들이 안고 있는 불안감과 각종 리스크부터 차근차근 해소해 나가는 게 순서겠다. 그러나 그 부분에서 윤 정부는 출범 이래 지금까지 내내 미흡했다. 사법부, 언론계와의 관계도 그렇고, 특히 고위직 인사의 거듭된 실패는 과잉 청문절차를 거듭해 온 야당에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국정운영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 ‘윤 스타일’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도전자와 챔피언의 자세는 달라야
뚝심과 맷집, 배짱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러나 그게 대통령 윤석열의 트레이드 마크로 계속 이어져서는 별로 득 될 게 없다. 선진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바람직한 이미지로는 포용 그리고 가끔은 ‘져주는 제스처’도 필요하다.
편협한 엘리트 의식에서 비롯된 독선 대신 두루두루 끌어들이는 탕평인사와 정책의 균형 개발을 위한 내각 및 전문가의 적극적인 활용도 긴요하다. 시중에 떠도는 말처럼 회의 내내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진심’인 게 윤 스타일이라면 내각과 전문가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을 거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선 우선 ‘尹 스타일’부터 확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변해서 최우선으로 각종 불안 요소로부터 국민들을 풀려나게 해야 한다.
멀리로는 나라가 소멸할 거라는 불안감, 끝없는 정쟁으로 인해 소멸하기도 전에 망가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북한이 침공해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청년세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런 각종 불안감을 없애줄 정책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한다.
위기극복 잘해온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
며칠 전 외신은 일본이 세 자녀 이상 가구 모두에게 2025년부터 대학 무상교육 혜택을 주기로 했다는 기사를 전해왔다. 육아휴직 하는 젊은 부부들을 위해 연간 7000억엔 이상 예산을 쓰기도 한단다. 우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26명으로 0.78명인 우리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합계출산율 1.8명인 북한도 벌써 인구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한국, 소멸하나’를 쓴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는 북한의 남한 침공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인구문제를 침공 가능성으로까지 연결한 건 과하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크게 과한 것만도 아니다. 20년 전부터 출산율을 비롯한 인구문제는 우리 주요 이슈로 등장해 왔다. 그 기간 내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아니,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정쟁에만 몰두해 온 게 우리 모습이었으니 외국의 칼럼니스트가 북한 침공 가능성까지 본 것이다.
2차 대전 때의 처절한 패배를 딛고 단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나라. 수시로 지진과 태풍 피해를 겪으면서도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나라. 지난 20년간의 정체기를 딛고 다시 멀쩡하게 일어서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 인구 문제도 착실하게 해결책을 찾아갈 그 나라로부터 최소한 유비무환의 자세부터 제대로 배울 일이다.
외국 순방보다 훨씬 더 급한 일들
이민청 설립, 아파트 층간 소음 방지 대책, 사교육 대책 등은 담당 장관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인구문제에서 비롯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문제는 법무부뿐만 아니라 범부처적으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끊임없이 말썽을 부르며 살인까지 불렀던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는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법무부, 산업자원부 등의 협조하에 대통령이 직접 장악력을 발휘하며 해결할 문제다. 출산율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온 사교육 문제도 대통령이 일과성으로 언급하고 지날 일이 아니다.
다소 지나치게 말하면, 대통령이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면서 국민적 관심을 끌어모을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한 번의 외국 순방을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에너지와 시간 소모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지금 대통령 앞에는 외교 활동을 벌이는 일보다 훨씬 시급한 현안이 국내에 겹겹이 쌓여있다. 국민의 시선을 해외 성과에 돌리게 할 만큼 국내 상황이 한가하지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여전히 대통령과 여당의 형편없이 낮은 지지도가 그를 반증하고 있지 않는가.
대통령은 화려한 세계무대의 출연을 당분간 보류하고 답답한 국내무대로 되돌아올 때다. ‘스타일’보다 ‘실속’ 차릴 내치에 진심인 윤 대통령이기를 기대한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아주 시기 적절한 논평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