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쉽게 지지 않는다 [정진호의 정치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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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은 쉽게 지지 않는다 [정진호의 정치여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1.19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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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총선 이후 여당이 6차례 원내 제1당 올라
인사권 활용한 인재영입·교통정리에 강점 있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인재영입에는 여당이 유리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다. ⓒ연합뉴스
인재영입에는 여당이 유리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다. ⓒ연합뉴스

여러분은 선거에서 여당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야당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흔히 대통령 임기 초에는 여당이, 중반 이후에는 야당이 유리하다고들 합니다. 대통령 인기가 좋은 초반에는 여당이 이기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야당이 이긴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좀 다릅니다. 지금과 같은 양당 체제가 정착된 1992년 제14대 총선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8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요. 그 중 대통령 임기 초 치러진 선거는 단 두 번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총선 승패를 보면 6번이나 여당이 원내 제1당을 차지했습니다. 원내 제2당에 그친 두 번의 선거조차도 야당에 단 1석 뒤진 석패(惜敗)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본적으로 여당은 정책 주도권을 쥐고 이슈몰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역 단위로 당선자가 배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숙원 해결이 가능한 여당의 ‘힘’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고요. 다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여당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인재 영입’이 용이하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로 인물과 구도, 바람을 꼽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개별 정당이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경쟁력 있는 인물을 영입·공천하고, 정치력을 발휘해 구도를 재편하는 것 정도입니다.

여기서 여당의 힘이 발휘됩니다. 국민은 항상 정치권의 ‘쇄신’을 원합니다. 뭔가 달라지길 바라죠. 선거를 앞두고 그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정치권에서 때 묻지 않은,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인물을 영입하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인물을 영입하려면 당선이 거의 확실한 지역에 공천한다는 약속을 해줘야 합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인재가 험지(險地)에 출마하려고 정치에 뛰어들지는 않을 테니까요.

문제는 ‘당선되기 쉬운 지역’일수록 이미 우리 당 현역 의원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데요. 교통정리 없이 현역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한다면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뿐더러, 탈당 후 무소속 출마라는 최악의 경우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총선 시점과 무관하게 여당의 승률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시사오늘 박지연 기자
총선 시점과 무관하게 여당의 승률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시사오늘 박지연 기자

교통정리를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죠. 여당의 위력이 나타나는 게 이 지점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최소 1000개 정도라고 합니다. 심지어 8000개에 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이 가진 인사권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확실합니다.

여당은 이 인사권을 ‘물갈이’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불출마를 권유하면서 대신 ‘자리’를 주는 식의 회유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현역 의원 입장에서야 마뜩찮은 제안이겠지만, 어쨌든 4년 동안 떵떵거리면서 먹고 살 방도는 마련되니 비교적 무난하게 교통정리를 할 수 있죠.

비슷한 맥락에서, 정치권 입문을 망설이는 인재에게 ‘낙선하더라도 최소한의 자리는 보장하는’ 식의 설득도 가능할 겁니다. 국가를 위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정권을 막론하고 인사권의 적잖은 부분이 이런 식으로 활용되는 게 현실입니다.

반면 야당에게는 이런 권능이 없습니다. 야당 현역 의원이 원외로 밀려난다는 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개업 가능한 다른 직업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직업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춥고 배고픈’ 4년을 보내야 합니다.

때문에 이들에게 공천은 협상 가능한 대상이 아닙니다. 여당 현역 의원과는 입장이 다르죠. 이러니 야당은 인재 영입전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고, 국민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물갈이’ 자체도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자연히 국민들은 ‘여당은 쇄신하려 노력하는데 야당은 밥그릇 싸움만 한다’고 느끼게 되죠. 이런 이미지는 표로 연결되고요.

이 같은 특성은 ‘구도’에도 영향을 줍니다.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야 어떻든, 야당도 ‘물갈이’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이 멤버 그대로’를 외치는 건 선거에서 지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물갈이 대상이 된 야당 의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당을 위해 불출마하고 4년 동안 춥고 배고픈 길을 걷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려 할 공산이 크겠죠. 여당에 비해 야당이 ‘분열’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인기는 1~2년 차에 최고치를 찍고 3년차부터 하락세에 접어듭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여당은 늘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둬왔습니다. 과연 이번 선거에서도 ‘여당은 쉽게 지지 않는다’는 우리 정치의 오랜 법칙이 통용될까요.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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