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격발사, 10·26 진실은? [그날의 증언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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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격발사, 10·26 진실은? [그날의 증언들+영상]
  • 아카이브팀|정세운·윤진석/신성일 PD·내래이션 우한나
  • 승인 202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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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 vs 계획, 그날의 증언 추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아카이브팀|정세운·윤진석/신성일 PD·내래이션 우한나]

40여 년이 넘은 과거의 일들을 추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증언자가 고령에 접어들어 가물거리는 기억을 복원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흩어진 기억들을 하나로 묶어 그날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시사오늘>은 지난 10여 년간 사실에 근거한 정치사를 기록하고자, 증언자의 증언을 추적했다. 첫 번째로 유신의 심장을 겨눴던 김재규의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 봤다.

 

 

유신의 종말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그리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은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저녁 6시 50분경 대중가수인 심수봉과 여대생인 신 양이 술자리에 들어갔다, 저녁 7시 뉴스에서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이 방영됐다. 

김재규는 밖으로 나가 부하들에게 거사 결행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7시 20분경 박정희에 이어 차지철과 심수봉 등이 노래를 불렀다. 7시 35분쯤 주방에 있던 남효주가 들어와 김재규에게 귓속말을 했다. 김재규가 옆방으로 나가자 의전과장이었던 박선호가 ‘준비 끝났다’고 했다. 김재규는 술자리로 돌아오고 5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7시 40분경.

김재규는 차지철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박정희의 이마에도 권총을 발사했다. 역사적 그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유신체제도 막을 내렸다. 
 

“미국에 있었는데 그날 방송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국내언론이 통제되던 실정이어서 각별한 관계에 있던 최형우에게 알려줬어요. 하지만 최형우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노승우, 2012년 4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중


과거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는 등 ‘6월항쟁의 주역’으로 꼽히는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전 의원.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예, 그날 저녁이었지요. 친구들과 북한산인가, 도봉산인가로 놀러 갔어요. 이상했어요. 그날따라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술을 엄청 많이 마셨습니다. 근처 후배네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지하철을 탔죠. 숙취 때문에 선로에다 구토하고,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앞의 누군가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신문 바탕 위에 큼지막하고 시커먼 글자로 ‘박정희 대통령 유고’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순간, 유고? 유고가 뭐지……?”
-유기홍, 2019년 8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중

 

유신을 향한 장전


방아쇠를 당긴다고 해서 총알이 바로 발사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총포에 탄약을 재어 넣는 장전(裝塡) 단계를 거쳐야만, 총은 온전하게 격발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부마항쟁이 당긴 ‘유신의 종말’ 방아쇠는, 그 이전의 장전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유신의 심장을 저격할 수 있었다.

1979년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YS의 역전승(逆轉勝)이 유신정권 몰락을 부추기는 ‘장전’의 역할을 했다.
신민당 전당대회는 이철승과 YS의 싸움이었다. 다만 이철승 쪽의 세력이 명확하게 더 컸다. YS는 1975년 박정희와의 ‘일대일 영수회담’ 이후 ‘사이비 야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그의 최측근이었던 조윤형이 떨어져 나가는 등 불리한 상황이었다.
반면 이철승은 ‘YS 낙선 공작’을 벌인 유신정권의 측면 지원 등을 통해 1976년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당선되면서 세(勢)를 넓힌 모양새였다. 게다가 전당대회를 이틀 앞둔 28일 고흥문·이충환·유치송 등 유력 정치인들이 이철승 지지를 선언하면서, 그의 당선은 유력한 듯 보였다.
 

1967년 창당한 신민당은 1980년까지 지속되며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1967년 창당한 신민당은 1980년까지 지속되며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29일, 이철승은 한일관에서 ‘이철승 추대 대연합의 밤’ 행사를, YS는 아서원에서 ‘민권의 밤’ 행사를 열었다. 그런데 이때, 아서원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가택연금 중이었던 김대중(DJ)이 깜짝 등장해 YS 지지를 표명했다. 여기에 이기택까지 YS를 지지하게 되면서, 대역전극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YS는 이철승을 꺾고 신민당 총재가 됐다. 신민당 당수가 된 김영삼은 강경한 대여(對與) 투쟁에 나섰다. 신민당 당사를 찾아온 YH 여공들을 보호하며 경찰 병력과 맞섰고, 경찰 연행 과정에서 YH 여공 김경숙이 사망하자 원내 철야농성을 진두지휘했다. 

YS 행보에 참을 수 없었던 박정희는 끝내 그의 정계 축출을 시도했다. YS와 경쟁했던 이철승계 인물들을 모아 ‘전당대회 결과 무효 소송’을 제소했고, 법원은 YS 총재직을 강제로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정권은 더 나아가 YS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박정희에 대한 지지를 끊어야 한다’고 한 발언을 ‘사대주의’라고 문제 삼아, 10월 4일 그의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꺾이지 않았다.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겁니다. 쓰러지는 방법도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 하는 것을 예언합니다.”
-김영삼, 1979년 10월 의원직 제명 뒤


이에 억눌려왔던 국민의 불만이 폭발했다. 불꽃처럼 터진 YS의 정치 기반이었던 부산과 마산·창원 등지에서 벌어진 유신반대 시위. 이는 후에 유신체제의 종말을 초래한 ‘부마항쟁’으로 명명된다. 결국 ‘김영삼 제명 사건’은 부마항쟁을 촉발시켰고, 이것이 유신 종말의 계기가 됐다.
 

“1979년 5월 30일 전당대회 이래 YH사건-가처분-뉴욕타임스 파문-부마사태로 이어진 5개월 간 대치정국은 신민당 김영삼의 선명노선과 박정희 정권 타도항쟁이 주도한 결과, 유신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고흥문, <못다 이룬 민주의 꿈> 중에서 

 

유신심장 격발, 우발 vs 계획


김재규의 유신심장을 향한 격발은 유신 체제의 종말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격발은 우발이었을까?

박정희의 측근이었던 김종필(JP) 전 총리는 10·26 사태와 김재규에 대해 ‘발작증 살인자가 법정에서 민주화 투사로 둔갑됐을 뿐’이라며 우발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 즈음 박 대통령은 김재규를 경질하려 했습니다. 김영삼과 신민당에 대한 정보부의 정치공작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에요. 김재규도 그런 공기를 눈치챘습니다. 부마사태를 잘 처리해 공기를 한 번 바꿔보려 했는데, 차지철이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다고 봐요. (중략) 김재규는 살인 망동 한 달여 뒤 자기가 무슨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처음부터 계획적인 혁명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스스로 속아 꾸민 얘기일 뿐입니다.”
-김종필, 〈김종필 증언록: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중에서


김재규가 차지철과의 다툼 끝에 이날 만찬에서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박정희를 살인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재규의 국선 변호인’으로 잘 알려진 안동일 변호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10·26 사건의 역사적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면서, 2005년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 2017년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를 펴낸 안동일.
 

김재규의 유신의 심장을 향한 격발을 두고 우발인 것인가, 계획인 것인가 관련해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그날의 증언들을 통해 진실을 추적해본다. ⓒ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김재규의 유신의 심장을 향한 격발을 두고 우발인 것인가, 계획인 것인가 관련해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그날의 증언들을 통해 진실을 추적해본다. ⓒ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그는 거사(巨事)에 대한 생각은 분명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김재규의 증언이기는 하지만 많은 정황증거가 나온 바 있다’며 계획설에 힘을 실었다.
 

“1972년, 유신 선포 당시 3군단장이었던 김재규는 ‘아무리 한국적 민주주의라지만 이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재규는 대통령의 부대방문 시에 담판을 지으려고 했어요. 통상 바깥쪽을 향하는 철조망을, 안으로 향하게 미리 설치해서 박정희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읍소하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도 건설부장관 시절, 게양된 태극기가 늘어뜨려진 곳에 권총을 숨기는 등 박정희를 저격하려고 마음먹었던 시도가 이미 수차례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의 휘호(揮毫)들을 보면, 유독 1979년 봄부터 ‘자유민주주의’, ‘민주민권 자유평등’ 등의 문장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변호인들이 10·26이 김재규가 가진 민주주의 신념에 의한 행동이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또한 결정적으로 김재규가 사선변호인단을 처음 만났을 때의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면, 거기서부터 이미 김재규는 혁명이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안동일, 2019년 9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중


또한 금녕김씨 종친회부회장이자, 1979년 동력자원부 차관보였던 김동규는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 <시사오늘>에 이 말을 남긴다.
 

“1979년 10월 16일로 기억됩니다. 그날 저녁 한 일식당에서 김재규를 만났습니다. 김재규가 ‘이대로 두면 나라가 어찌될지 모릅니다. 제가 역사 앞에 큰일을 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때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김동규 전 국회의원, 증언  
 


YS 측근 김봉조 민주동지회 회장도 김재규와 만난 일화를 들려주며 그의 행동은 우발이 아닌 계획에 무게를 뒀다.
 

“김재규가 금녕김씨 종친회 회장을 하던 날 나도 금녕김씨니까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김재규가 광화문에 있는 자기 사무실에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해서 YS한테 이를 보고하고 부담 없이 찾아갔습니다. 김재규가 YS는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어른입니다. 잘 모시세요 라고 말해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만난 김재규는 자상하고 판단이 올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차지철에 대한 사사로움 때문에 쏜 게 아니고 부마사태로 말미암아 수습할 길이 없으니 박정희가 하야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권총을 쏜 거라고 봅니다.”
-김봉조, 2023년 12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중

 

김재규, 암살자 vs 열사


고(故) 김동규 전 의원을 비롯한 안동일 변호사와 김봉조 동지회장 등이 들려준 이야기의 요지는, 김재규가 단순 우발적 감정으로 박정희를 살인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10·26 사태는 계획됐다고 확언했으며, 나아가 김재규는 체제 전환을 꿈꿨던 양심범(良心犯), 즉 열사로 보고 있었다.
 

“김재규가 재평가되지 않으면 모든 역사적 논의는 껍데기입니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중간에 김재규가 있어요. 김재규가 없었다면 부마가 광주처럼 됐을 겁니다. 부마도 광주도, 나아가 우리 모두 김재규에게 빚을 졌습니다. 진정한 혁명에 대한 역사적 의식을 환기할 때입니다.” 
-함세웅 신부, 2019년 9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중 


물론 반론도 전해진다. JP 회고록 집필에 참여한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은 자신이 들은 정황적 근거를 토대로 김재규는 혁명가가 아닌 암살범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김재규는 암살범이죠. JP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봐요.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JP는 김재규가 옛날 사람들이 쓰던 말로 ‘간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발작이 벌어지면 아무도 못 말렸다고 해요. 그것을 알면서도 박정희가 기용한 거죠. 그리고 김재규는 어떤 인간적인 고뇌가 있었냐면 김형욱 죽음과 관련된 게 있었어요. 남은 쟁점은 김재규한테 박정희가 시켰을까 인데, 그건 아직 빈 공간으로 남아 있어요. 김재규로서는 직접 집행한 자로서 갖는 인간적 고통, 발작증을 둘러싼 육체적 불안, 대통령과 차지철로부터 받았을 스트레스 등 이런 게 복합돼 10‧26 당일 폭발했다고 봐요.”
-전영기, 2023년 12월 <시사오늘> 인터뷰 중

 

**영상은 유튜브 채널 <시사오늘>에서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책임 총괄 : 정세운 
글·자료 : 정세운·윤진석
음성·녹음 : 신성일 PD
내래이션 : 우한나
제작 : 시사오늘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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