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은 있었는데…‘패배’ 쓴맛 본 행동주의펀드 [박준우의 준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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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있었는데…‘패배’ 쓴맛 본 행동주의펀드 [박준우의 준VEST]
  • 박준우 기자
  • 승인 2024.03.27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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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 폐지·밸류업프로그램 등 행동주의에 힘 실려
자사주 중요성 부각되는 가운데 전량 소각 요구해
요구 주주환원율 50% 육박…제안 안건 모두 부결
소액주주·국민연금공단의 외면…상반기 이후 주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준우 기자]

올해 1월 열린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언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1월 열린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언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행동주의펀드들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이어 패배하고 있다. 올해 초 정부와 금융당국이 증시부양책을 공개하면서 이들 행동주의펀드에 ‘명분’이란 나름의 정당성이 채워졌음에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 한 것이다.

행동주의펀드들은 주총에서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상장사를 상대했다. 시티오브런던, 안다자산운용 등이 모여 행동주의펀드연합을 구성했고,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대주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았다.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의 경우는 개인이 상장사와 표 대결을 벌였다.

이들 행동주의펀드는 공통적으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요구했다. 배당 결산일 변경을 시작으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ISA 지원 확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까지 증시 부양을 위한 정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타이밍 또한 절묘했다.

하지만, 그뿐. 막상 뚜겅을 열고 보니 실상은 달랐다. 주주환원 확대를 비롯해 제안 안건이 통째로 부결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분명 주주환원을 요구할 뚜렷한 명분이 갖춰졌고, 소액주주 입장에서 보더라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은 다다익선이다. 그럼에도 행동주의펀드는 표심을 얻지 못 했다.

행동주의펀드는 대주주가 아닌 소액주주다. 적은 지분으로 기업 및 대주주를 견제하고,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주가 상승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긍정적이다. 다만,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이후 언제든 엑시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행동주의펀드연합은 삼성물산에 보통주 주당 4500원, 우선주 주당 4550원, 총 7365억 원의 배당을 제시했다. 반면, 삼성물산은 4173억 원의 배당을 결정했다. 행동주의연합 측과 삼성물산이 제시한 배당금의 배당성향은 각각 27%, 15%다. 차이가 12%포인트에 이른다.

행동주의펀드연합 측이 제시한 5000억 원의 자사주 소각까지 더하면 이들이 요구한 주주환원율은 45%다. 삼성물산이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의 절반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란 얘기다. 자사주 소각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를 직접적으로 상승시킨다는 데서 가장 확실한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연합 측의 요구에 힘이 실렸던 이유다.

차파트너스의 경우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한 자사주 524만8834주(18.4%)를 전량 소각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말 기준 금호석유화학의 부채비율을 보면 36.77%다. 만약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시 자본이 줄어들어 부채비율이 40%를 넘기게 되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금호석유화학 측은 가장 확실한 주주환원 정책인 자사주 전량 소각 제안에 난색을 표했고, 기존 주주들 역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그러나 우리사주조합이나 우호관계에 있는 기업에 처분함으로써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늘리는 용도로 쓰일 수 있기에 소액주주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기도 한다. 다만,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혹은 불황 시 팔아치워 자금을 확보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이 때문에 자사주는 기업 입장에서도 일정량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필요성이 존재한다.

더욱이 금융위기, 코로나19, 미국 금리 인상, 나아가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PF 부실 등에 따른 경기 우려도 감안해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코로나19, 부동산 PF 등의 사태로 인해 충당금 적립 등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며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를 대량 소각하기보다 매도의 상황을 열어둔 상태에서 일정량씩 분할해 소각하는 방식이 늘 것”이라고 봤다.

행동주의펀드들의 다소 과도한(?) 요구는 소액주주는 물론 삼성물산과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각각 7.64%, 9.27%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의 선택 역시 받지 못 했다. 이번 표 대결을 앞두고 국민연금의 선택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결국 국민연금이 상장사 측 안건에 몰표를 던지는 것으로 싱겁게 마무리됐다.

결과적으로 올 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는 대패했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다만, 당국의 증시부양 정책과 더불어 행동주의 행보에 힘이 실렸고, 그만큼 많은 관심이 집중됐던 주총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올 상반기 시장에 정착될 밸류업 프로그램 이후 이들 행동주의펀드가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소액주주들과 연기금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모인다.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증권·핀테크 담당)
좌우명 : 닫힌 생각은 나를 피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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