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의혹 등 검찰 수사 압박
국내 유일 우리종금도 증권사 합병 초읽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종합금융회사, 즉 종금사(綜金社)는 1970년대 국내 금융시장의 글로벌화를 위해 관련법이 제정된뒤 정부차원에서 육성을 지원하며 한때 30여개까지 늘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종금사는 우리종금이 유일하며 이마저도 모회사인 우리금융이 우리종금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시사오늘>은 한때 금융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종금의 흥망성쇠를 살펴봤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종금사는 단기 외화 장사를 통해 이익을 거뒀으나 IMF라는 거대한 풍랑을 만나면서 침몰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급격하고도 광범위했다.
정부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금융지원을 요청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임창렬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이날 저녁 정부제1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셸 캉드쉬 IMF 총재에게 IMF의 유동성 조절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전화통화를 통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1997년 11월22일 <매일경제> IMF구제금융 공식요청
정부의 IMF구제금융 요청은 대기업·금융사 부도, 대량실직, 경기침체의 예고였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의 시작이었다. 이는 종금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80~90년대 호황기 시절 이뤄진 종금사 난립은 IMF 당시 금융권과 당국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해 위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대한·삼삼·삼양·영남·고려·경남·한길·경일 등 외화자금난이 심각한 8개 종금사의 외화자산과 부채가 내달 1일부터 은행에 일괄 양도된다. 이에 따라 이들 종금사의 외환업무가 중단되며 부실 종금사의 은행인수라는 본격적인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시작될 전망이다. 25일 임창렬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과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은행회관과에서 조흥·상업·한일 등 3개 은행장 및 12개 은행 전무와 16개 종합금융사 사장단 모임을 각각 갖고 이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1997년 11월26일자 <매일경제> 8개 종금 외환업무 정지
종합금융회사들의 무더기 인가취소로 은행들이 떠안게 되는 부실자산이 지금까지 6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현재 자본잠식 상태에 있거나 합병과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3월말까지 영업정지 기한이 연장된 대한·나라·삼양종금도 추가 인가취소될 가능성이 높아 종금사 폐쇄가 마무리된 뒤 사후정산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의 직접적인 손실은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1998년 3월5일자 <한겨레> 은행, ‘종금 부실’ 6조 부담
1998년부터는 앞서 영업정지를 맞은 종금사들이 부실자산을 감당하지 못해 연쇄적으로 폐쇄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아울러 IMF사태 책임을 묻기 위한 검찰의 수사망이 종금업계를 강하게 압박했다. 여기에 정치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며 종금사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김영삼 정부 경제실정을 수사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명재)는 15일 두차례에 걸친 종금사 인허가 과정에서 종금사 비자금이 구(舊)여권 실세 정치인과 옛 재정경제원 관계자들에게 흘러간 혐의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이날 “종금사 인허가 등 외환위기와 관련된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그러나 “이 수사는 표적수사를 결코 아니며 그럴 의사도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1998년 4월16일자 <동아일보> 종금協 사무실 압수수색…舊與민주계 수뢰혐의 추적
종금사 수사와 별개로 당시 정부는 종금사발(發) 금융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따른 국민부담 가중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종금의 영업정지 및 폐쇄로 예금 등 자금이 묶여있던 국민들에게 또한번의 고통을 안겨 준 셈이다.
정부가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종합금융회사의 외채만 지급보증하겠다는 당초 방침을 변경, 부실경영으로 폐쇄당한 종금사의 외채까지 갚아주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국민세금으로 폐쇄 종금사의 외채를 갚아주겠다는 것이다.
-1998년 3월13일자 <조선일보> 정부, 폐쇄종금 외채 갚아주기로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종금사 폐쇄를 막을 순 없었다. 은행권 인수가 추진되던 종금사마저도 최종 불발되며 문을 닫아야할 상황에 처해졌다.
한때 30곳이 넘었던 종금사는 1999년 8월말 기준 한국, 한불, 아세아, 동양, 충앙, 나라, LG, 금호, 경수, 울산 등 11개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증권사에 흡수합병되는 등 우역곡절을 거치면서 2024년 5월말 기준 우리종금(舊 금호종금)만이 살아 남았다. 증권사 합병 등을 통해 종금 타이틀을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기업 신용공여, 발행어음형 CMA, 투자은행업무 등 폭넓은 업무를 할 수 있는 종금업 라이선스를 포기하고 증권업으로 활로를 모색한 이유는 △외환위기 주범이라는 낙인 △발행어음의 가치 하락 △투자상품 다양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종금 역시 포스증권과 합병을 통해 증권업 진출을 꾀하면서 한때 금융시장 한축을 담당했던 종금은 이제 자취를 감추게 됐다. 현행법상 종금사가 증권업 라이선스를 취득할 경우 기존 종금업 라이선스는 10년후 자동 만료되기 때문이다. 현재 종금업 신규 라이선스 획득 역시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종금의 종금업 라이선스가 만료되는 순간 국내에서 종금사는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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