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취재원과 대화하다 보면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라는 말이 자주 오간다. ‘보도에서 제외해야 할 사항’이란 뜻의 이 마법 같은 단어는 입에 오르는 순간 업계의 비밀 이야기들을 터트린다. 이 코너는 기자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오프더레코드’다. 정제된 기사 한 편엔 싣지 않은 현장 뒷이야기, 행간 사이 묻어 둔 경험담을 은밀하고 시시콜콜하게 풀어내려 한다.
“출근할 때 보면 항상 철거 중이에요. 팝업스토어 쓰레기가 정말 많긴 하더라고요.”
취재원과 밥을 먹다 들은 한마디에 르포(현장) 취재를 결심했다.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며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는지 자랑(?)하면서도, 신제품을 출시할 때면 거대 팝업스토어를 열어 수 톤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유통기업들의 두 얼굴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요즘엔 친환경 팝업스토어도 있단 말에 “그건 ‘그린워싱(Greenwashing)’ 아니냐”고 받아치자, 취재원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거리로 나가 취재를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예상했던 정보를 얻지 못 할 수도 있고, 취재 거부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기자’라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요청하면 경계 어린 눈총과 함께 입을 다물기 일쑤다.
그럴 땐 원하는 정보가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현장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 현장에선 ‘못 먹어도 고(go)’ 마인드로 ‘일단’ 밀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터뷰 기회가 왔을 때 현상에 파고들 수 있는 ‘순발력’은 필수다.
그날도 그랬다. 마침 한날에 팝업스토어 두 군데가 철거한단 소식에 곧바로 ‘팝업 성지’ 성수동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한창 철거 중일거란 예상과 달리 이미 주말 새 철거가 깔끔히 끝난 뒤였다. 그나마 또 다른 팝업스토어는 얼마나 폐기물이 많았던지 미처 철거하지 못 한 쓰레기와 뼈대만 남은 설치물이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허무했다. 난감하기도 했다. 르포 기사는 현장감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 만큼, 폐기물이 철거 중인 현장을 꼭 기사에 담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 있겠는가. 지난 수개월간 <시사오늘>에서 르포 기사를 쓰며 배운 건 ‘집요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거 현장은 놓쳤지만 취재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 남아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팝업스토어 밀집 거리를 거닐다 문득 ‘팝업 공간 문의’ 푯말이 적힌 부동산을 발견했다. ‘못 먹어도 고’다. 일단 들어간다.
팝업스토어를 알아보고 있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냈다. 공인중개사 A 씨는 “직함을 뭐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기자’라는 직함은 가끔 취재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체득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매, 매, 매니저라고 불러주세요.”
날이 더운 탓인지,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 때문인지 비 오듯 오는 땀을 손등으로 연신 닦아야 했다.
그와의 대화는 기사의 핵심 내용이 됐다. 팝업스토어 하나를 철거하는 데 1톤 트럭이 세 대씩 필요하다는 것, ‘공장형’ 팝업스토어는 인테리어가 필요한 만큼 더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이를 선택하는 유통사들이 많다는 것.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사실들이다.
늘 ‘현장’이란 단어에 왠지 모를 부채감을 갖고 산다. 지금은 은퇴한 한 선배가 ‘기자는 현장에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뇌리에 박혀 잊히질 않아서일까. AI 시대, 현장에서 ‘나’만의 시각으로 기사를 발굴해내는 것만큼은 ‘기술’에게 뺏기기 싫어서일까.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양심’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독자에게 카더라식 기사가 아닌 현장의 산증인으로서 현안을 생생히 전달하고픈 마음이다.
27일 르포 기사가 송고된 뒤 동료에게서 ‘지나가다 팝업스토어를 볼 때마다 얼마나 많은 폐기물이 발생할까 걱정되더라’는 얘길 들었다. 알리면 조금씩 달라지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 현장의 일들을 생생하고 정확하게 잘 전달하고 싶다. 가끔은 기자가 아닌 ‘매니저’가 되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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