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에서 친박… 신구 권력 변화, 과도기에 있던 전대는 달랐다 [옛날신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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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에서 친박… 신구 권력 변화, 과도기에 있던 전대는 달랐다 [옛날신문보기]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4.07.09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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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초중기 모두 친이계 당대표 됐지만 
후반기 전대는 계파색 옅은 홍준표 체제로 
5개월 만에 과도기 거쳐 박근혜 비대위 출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제12차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2011년 7월 4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다.ⓒ뉴시스
제12차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2011년 7월 4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다.ⓒ뉴시스

2011년 7월 4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12차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계파색이 옅은 홍준표 후보가 득표율 1위에 올라 당대표로 선출됩니다. 

뒤를 이어 친박계(박근혜)가 밀어주던 유승민 후보가 2위, 친이계 나경원 원희룡 남경필 박진 권영세 후보가 각각 3, 4, 5, 6, 7위를 차지했습니다. 

당대표 선출을 따로 하지 않을 때라, 전대에서 1위한 홍준표가 자동 당대표가 되고, 나머지 5위까지가 최고위원 자리에 올랐습니다.

 

7·4 한나라당 전대


당시 전대는 국민여론조사 30%, 대의원+당원+청년선거인단 70% 반영 비율로 치러졌고 1인 2표제를 행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홍 후보는 일반 국민여론조사와 선거인단투표에서 모두 제일 앞서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1인 2표제였기 때문에 친박 진영에서 유승민 외에도 여당 내 야당으로 불렸던 홍준표에 몰아줬고, 여기에 더해 당내 소장파의 지원까지 받게 되면서 당선될 수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계파색이 옅은 홍준표 후보가 한나라당 12대 당대표로 선출된 후 승리의 표시로 양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뉴시스
계파색이 옅은 홍준표 후보가 한나라당 12대 당대표로 선출된 후 승리의 표시로 양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뉴시스

 

“집권여당의 새 대표로 중립 성향인 4선의 홍준표 후보가 선출됐다. 소장파와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원을 받으며 '변화'를 내세운 홍준표 대표 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한나라당은 당 쇄신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신주류(소장파+친박근혜계)가 원내 지도부에 이어 당권까지 장악해 여권 권력지형이 급속히 신주류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구주류(친이명박계)의 당내 입지는 크게 위축되고 분화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 2011년 7월 4일 <세계일보> 기사 중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명박 정부 말기에 치러진 집권여당의 당시 전대 결과를 놓고 신구 권력에 변화가 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주도권을 잡고 있던 친이계의 몰락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역으로 친박계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선거 결과였다고 분석되고 있습니다. 
 

“친박 중진들의 측면 지원을 받은 홍 대표와 친박 후보인 유승민 최고위원이 1·2위를 기록하면서 한나라당의 중심축은 급격히 박근혜 전 대표 쪽으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선 ‘그간 당을 이끌어온 친이계의 쇠퇴와 박 전 대표의 힘을 보여준 게 이번 전당대회’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선출된 대표·최고위원 5명과 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 7명 중 최소 5명이 친박 성향이거나 박 전 대표에 우호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
- 2011년 7월 5일 <조선일보> 기사 중 

 

 

MB 정부 초중기 때와 다른 온도


앞서 이명박(MB) 정부가 정권 탈환에 성공하면서 2008년 7월에 가진 10차 전당대회는 물론 중반기 치러졌던 7‧14 전대(12차)만 해도 친이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박희태, 강성 친이계로 분류됐던 안상수 후보가 각각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친정 체제 중심으로 진용을 잘 유지한 바 있습니다. 
 

“'친이명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박(희태) 대표는 이날 1인 2표로 실시된 대의원 투표에서 4264표(29.5%)로 1위를 차지했고, 30%가 반영되는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30.1%를 얻었다.(중략) 이에 따라 친이계는 박 대표를 비롯해 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을 당선시켜 한나라당내 다수파 주류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08년 7월 3일 <경향신문> 기사 중 

 

강성 친이계로 분류되고 있는 안상수 후보가 한나라당 11대 당대표로 선출된 후 승리의 표시로 양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뉴시스
강성 친이계로 분류되고 있는 안상수 후보가 한나라당 11대 당대표로 선출된 후 승리의 표시로 양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뉴시스

 

“안 신임 당대표는 전체 유효표 중 7816명 중 대의원 3021표, 여론조사 1295표(20.3%)로 1위를 기록 최종 당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중략) 2위는 3854표를 얻은 홍준표 후보가 차지했으며 3위는 2889표의 나경원 후보, 4위는 2436표를 얻은 정두언 후보가 그 뒤를 이었다. 마지막 5위는 1924표를 얻은 유일한 친박계 서병수 후보가 차지했다.”
-2010년 7월 14일 뉴시스 기사 중


하지만 한나라당이 2011년 상반기 재보궐에 참패하면서 안상수 체제는 조기에 물러나게 됩니다. 당에서는 변화와 쇄신의 목소리가 커져갔습니다. 바로 이러한 요인이 ‘한때 친이계’로 분류됐으나 점차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둬오던 홍준표 후보 쪽으로 당심이 모아진 배경이 돼줬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당내 세력 구도의 변화를 가져왔던 2011년 전대는 신구 권력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과도기에 있었다는 관측입니다.

 

과도기 거쳐 박근혜 체제로


표면상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론 때문이라고는 해도 홍준표 당대표 체제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조기 종료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만 것 또한 세력 구도 변화의 이 같은 과도기적 성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홍준표 대표를 향한 사퇴 압박 분위기가 거셌습니다. 신흥 주류의 기세에 눌린 홍 대표는 “다수가 원하면 물러나겠다”며 배수진도 쳐보고 쇄신안도 내놔 봤지만 별 효험이 없자 결국 당대표에 오른지 5개월 만인 2011년 12월 9일 사퇴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맙니다.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다. 그동안 서민대표로서 애환을 살피고 반값아파트, 국적법 개정 등 대한민국 바꾸는 개혁정책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유일하게 혁신에 성공하고 개혁과 쇄신에도 앞장을 서왔다. 그러한 저를 최근 일부에서 쇄신대상 지목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혼란을 막고자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쇄신하고 내부정리하고 사퇴하려는 게 기득권 지키기로 매도되는 것을 보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당내 계파투쟁, 권력투쟁은 없어야 한다.”
- 2011년 12월 9일 홍준표 당대표 사퇴 회견문 중
 

 

2011년 11월 홍준표 당대표 체제가 물러난 뒤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2011년 11월 홍준표 당대표 체제가 물러난 뒤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며칠 뒤 한나라당은 재창당을 둘러싼 내홍을 모두 봉합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할 것을 결정합니다.

잠시 반짝였던 홍준표 체제를 지나 본격 신흥 권력의 판 갈이가 시작됐고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명은 그 시작과도 같습니다.
 
오는 23일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열고 새당대표를 선출합니다.

원희룡 한동훈 나경원 윤상현 4파전 양상의 결과에 따라 신구 권력도 재편될 조짐입니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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