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지난 3일 오전 10시. 취임 후 첫 국정 브리핑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은 경북 포항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산업통상자원부에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탐사 결과대로라면 이번에 발견된 석유·가스전은 천연가스 최대 29년, 석유 최대 4년을 쓸 수 있는 양으로 알려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연히 여권에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확률이나 가능성에 관해선 아직 정확히 얘기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기대를 갖고 볼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면서 “전문 기관이 앞으로 순차적으로 여러 과정들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야권에선 윤 대통령의 발표를 ‘지지율 전환용’이라며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해서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었다”며 “‘박정희 시즌2’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꼬았습니다.
그렇다면 박 의원이 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포항 석유발견 발표 해프닝’은 뭘까요.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76년 1월. 우리나라에선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직접 “경북 영일만 부근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며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성분 분석한 결과 질이 좋은 것으로 발견됐다”고 밝힌 겁니다.
경북 영일만 부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은 15일 상오 “석유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연두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석유 발견 사실을 확인하고 석유의 매장량 등은 “4~5개월 후면 판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 기술진의 오랜 시추 결과 “서너 개의 구멍 가운데 한 군데서 가스와 석유가 발견됐으며 이를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성분 분석한 결과 질이 좋은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히고 “외국 기술자와 장비를 투입, 이달 말경이나 내달 초에는 본격적인 탐사작업에 착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하 1500m에서 석유가 발견돼 몇 드럼 정도를 채취했으나 매장량, 개발의 경제성 여부는 앞으로 과학적인 탐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석유가 처음 발견된 사실은 중요한 일이며 반갑고 고무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대륙붕 제7광구도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나 결과는 금년 가을이나 연말께 판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을 안 뒤 발표하려 했기 때문”이라 말하고 “국민들이 흥분하는 심정은 충분히 알 수 있으나 지하에 있는 것이니 참고 기다리자”고 당부하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했다.
한편 석유의 부존 가능성에 대해 국가원수가 이를 확인했다는 사실은 비록 매장량 등 확실한 결과가 밝혀지지는 않았더라도 앞으로 4~5개월 후 역사적인 한 전기가 도래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76년 1월 15일 <매일경제> 영일만 부근서 석유 발견
박 전 대통령의 발표에 포항은 일순간 축제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당시 포항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기사 한 토막을 옮겨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회견을 통해 석유가 나왔다고 처음으로 발표하자 포항시민들은 서로 얼싸안고 “우리 고장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함성을 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날 라디오와 TV로 중계된 박 대통령의 연두회견을 듣고 있던 포항시민들은 “포항에서 석유가 몇 드럼 나왔다”는 발표가 있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감격의 함성을 질렀고, 포항시내는 건국 이래 가장 흥겨운 축제 무드에 젖었다.
김모 노인은 “석유가 나왔다는 얘기가 사실이냐”면서 울먹였고, 이상문 씨는 “이제 우리도 잘 살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1976년 1월 15일 <경향신문> 우리 고향에 경사…부둥켜안고 춤도
증시도 급등했습니다. 석유관련주뿐만 아니라 증시 전반이 폭등, 무려 55개 종목이 상종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석유발견의 낭보에 증시는 민감한 자극을 받아 증시개설 이후 최고의 폭등세를 나타냈다. 박정희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이 있었던 15일 증시는 55개 종목이 가격폭제한선인 상종가로 치솟았으며, 시세형성된 155개 종목 중 130개 종목이 큰 등폭을 갖고 상승한 반면 9개 종목만이 하락했다.
특히 이날 하루 동안 거래량이 407만6050주에 47억5700만 원의 약정고를 올려 연초발회 이후 활황을 지속했던 거래량보다 배증됐음은 물론 지금까지 최고 수준인 35억 원 규모보다 12억 원이 늘어나 공전의 폭주현상을 빚었다.
이에 따라 종합주가지수가 하루 새 8.1포인트가 올라 72년 1월 4일 지수산출 이후 처음으로 400선을 넘어서 402.8을 기록, 연초 1월 5일 배당락지수 379.3보다 23.5포인트가 올라 불과 10일 사이에 6.2%의 주가신장률을 가져왔다.
재무부는 이 같이 증시가 급변함에 따라 상·하오 2회에 걸쳐 주가 진정책을 발표해 신용거래매수잔고가 6만8700주가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왔으나 주가 진정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한편 당국의 규제조치가 내려진 16일 전장시가에서는 전일의 급등세가 다소 둔화됐으나 계속 강세를 지속해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976년 1월 16일 <매일경제> 증시개설 이후 최고의 폭등세
외신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한국의 석유 발견이 북한에 미칠 영향을 심도 있게 다뤘습니다. 석유 발견으로 한국이 경제·군사적으로 북한을 압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겁니다.
거의 대부분의 미국 주요 신문·방송들은 16일 영일만에서 양질의 석유가 발견됐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발표를 자세히 보도하고 한국의 석유 발견이 북괴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을 보였다.
뉴욕타임즈는 이날 박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석유 발견 소식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한국 정부는 이 소식이 북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석유발견 발표’ 제하의 서울발 기사에서 뉴욕타임즈는 만약 매장량이 상당한 것이기만 하다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북괴를 압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도 ‘박 대통령 석유발견을 발표’ 제하의 1면 기사에서 외국 석유 기술자들과 장비들이 본격적인 석유 탐색 작업에 참여키 위해 속속 한국에 도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한국 석유발견’ 제하의 기사에서 매장량만 충분하다면 해마다 석유 도입에만 15억 달러의 외화를 지불하고 있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커다란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엔 본부에서도 한국의 석유발견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유엔 외교관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일부 외교관들은 마치 한국이 곧 산유국 대열에 끼어들게 된 것처럼 한국 특파원들을 찾아와 축하인사를 하기도 했다.
1976년 1월 17일 <매일경제> 미 언론들 깊은 관심
하지만 뜨거웠던 1월이 지나자, 석유시추 문제는 갑자기 자취를 감췄습니다. 3월에는 국회의원들이 상공부에 석유시추현황 보고를 요구했는데도 상공부는 이를 숨기기에 급급했다고 합니다.
18일 국회 상공위에서 신민당 의원들이 상공부 업무보고에 포항 영일지구 석유시추현황이 빠져있음을 문제 삼아 시추진행작업과 전망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자 상공부 측이 계속 이를 숨기려 해 한동안 입씨름이 벌어졌다.
김동영 의원(신민)은 “대륙붕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정작 석유가 나온다는 포항 영일지구 시추현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라고 물었고 박찬 의원(신민)도 “자료에 제3기층이니 중생대 경상계 등 석유부존가능지역 탐사계획이니 하는 막연한 얘기보다 포항 석유가 어떻게 됐는지 말해 달라”고 요구.
심의환 상공부차관은 이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연초에 석유가 일부 나왔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현재 본격적으로 시추 중이나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진전이 있다고 들었지만 상세히 모르고 있다”는 등 밝히기를 꺼려하자 박 의원이 “진전이 있는데 발표할 수 없는 것인지 추가로 발표할 것이 없는지 분명히 해 달라”고 말하고 김 의원도 “소관부처가 상공부인가 또는 다른 부서인가. 왜 모르는가”고 따졌다.
최형우·엄영달 의원 등도 이에 가세, “알고 있으면서도 보안상 문제가 있다면 비공개회의에서라도 윤곽이나마 얘기해줘야 할 게 아니냐”고 말하자 심 차관이 “내일 비공개회의에서 아는 범위 내로 보고하겠다”고 말해 일단락.
1976년 3월 18일 <동아일보> 숨기려 든 석유시추작업
이후 언론에서는 한동안 포항 영일만 석유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석유 발견 발표 1년 7개월여 뒤인 1977년 8월 12일. 박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포항 영일만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발표합니다.
(전략) 포항지구의 석유개발은 기름이 조금씩 나오고는 있으나 희망은 희박한 것 같다. 그러나 자원개발공사에서 낙동강계와 남해안지대 등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탐사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7광구의 석유개발은 지난번 일본 국회에서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이 비준됐기 때문에 이번에 한-일 각료회의가 열리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본다. (후략)
1977년 8월 12일 <조선일보> 선거제도 고칠 필요 없다
1978년 최규하 국무총리도 관련 질문에 대해 “포항 석유 문제는 75년에 시작, 11개 공을 시추해 봤으나 석유가 소량 나왔을 뿐 경제성에 비춰 탐사할 가치가 의문시돼 일단 중단했다”고 답했습니다.
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포항 영일만에서 발견된 석유는 휘발유, 경유, 등유, 가스 등의 여러 물질이 골고루 섞여 있는 원유가 아니라 인위적인 정제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경유 비중이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정유를 원유로 오인해 대통령이 직접 석유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해프닝이었던 셈입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