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의 일화, 발언 등 ‘재조명’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故전태일 열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영원한 재야의 민주화운동가 대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장 원장은 지난 7월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후 담담히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초기에는 매주 1회 여의도 사무실에서 지지들과의 만남도 가졌지만 최근에는 방문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악화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로 옮겨진 뒤에는 가족들과의 만남만 허락되다 이날 새벽 1시 35분 눈을 감았다.
민주화운동은 서울대 법대 입학 전부터 청소년기 때부터 시작됐다. 박정희 정권을 향해서는 유신독재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 대학생 친구를 소망했던 전태일 열사의 친구로 나서 이소선 여사(전태일 어머니)에게 든든한 힘이 돼줬다. 전태일 분신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림으로써 노동계 저항의 불씨를 확산시켰다. 민청학련 및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 등에 몰려 12년간 수배생활을, 9년 간 투옥됐다. 간첩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인사 가운데 가장 오랜 수배생활과 옥살이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민주화보상금 청구 안 해‥ “할 일 했을 뿐”
이 일로 10억 원대 정도 되는 거액의 민주화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청구하지 않았다. 장 원장은 관련해 지난 2021년 8월 <시사오늘> 인터뷰 당시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 힐 일을 했을 뿐이다. 나만 민주화운동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 중 당시 최루탄 가스 안 마셔 본 국민들이 얼마 있겠나. 6월항쟁 당시 넥타이 부대(직장인 참여)가 있었다. 많이들 민주화운동을 했다.”
영원한 청년이라 불릴 만큼 평생에 걸친 이상주의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오랜 기간 독자노선을 고집했다. 87년 민주화가 된 이래 양김(김영삼 김대중)을 비롯해 MB(이명박)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거절했다.
지난해 5월 <시사오늘>은 이 점을 언급하며 결과적으로 관운이 없게 된 이유가 아니냐고 물은 바 있다. 그러자 장 원장은 답이다.
“내가 재야 출신 아니오. 기존 정당에도 안 따라가고, 군소 정당을 만들어 이끌다 보니 잘 안됐지. 그러면 누가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역대 3지대 정당에서 성공한 경우가 정주영‧안철수 정도밖에 더 있소? 지금 이 나이에 앞으로 또 독자정당을 만들면 희망이 잘 안 보이잖아요. 정치 양극화 때문에 어려워요.”
정치인으로서 복지 제도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공공근로의 무제한 공급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누구나 자아실현하며 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다.
장기표의 인간 사랑…교도소의 일화
장 원장은 사랑이 모든 역사 발전의 기저임을 설파했는데 다음은 그에 대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는 일화다. 장 원장이 마산교도소에서 징역살이 할 당시 교도관이었던 임점호 씨가 지난 2017년 2월 <시사오늘>에 들려준 얘기다.
“장 대표는 포승에 똘똘 묶여 재판정에 나가 ‘인간 사랑’을 강조하다 돌아와서는 고단해 쓰러졌다. 먹을 게 있으면 동료들과 나눠먹었다. 제 한 몸 살기도 힘든 감옥에서 정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실천했다. 하루는 대구에서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가 포승에 묶여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이 독방에 수용되기 직전에 얻어맞았는데 장 대표가 그걸 보자마자 감옥 창살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눈물로 항의했다. 또 마산 지역의 깡패 조직을 교도소 직원들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때렸는데 때마침 같은 곳에 수감돼 있던 장 대표가 이를 보더니 필사적으로 감옥 문을 발로 쾅쾅 치면서 나를 대신 때리라 라고 소리를 지르고 소동을 일으켜 멈추게 했다. 장 대표는 그때 매 맞는 사람이 깡패였던 것을 전혀 몰랐다. 장 대표는 그 주체가 직원이든 수감자이든 교도소에서 자행되는 모든 폭력에 사실상 목숨을 걸고 맞서는 사람이었다고도 강조했다.”
보수 진보 초월…부조리함 규탄
생전 “국민 모두 고발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장 원장은 기득권의 특권 의식을 꼬집었고 부조리함을 규탄했다. 노동계 대부였던 장 원장은 지난 2019년 1월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갖고 민주노총을 망국 10적 중 제1호로 규정했다. 다음은 <시사오늘>이 현장에서 들었던 연설 일부이다.
“지금 이 자리는 대한민국을 멍들게 하는 10적 가운데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을 규탄하는 대회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76만 명이고, 100만 명 돼간다고 하지만 전체 임금노동자의 3.6%밖에 안 됩니다. 많은 국민들이 저임금과 무소득에 시달리고 있는 데도 민주노총은 자기들이 마치 최대 피해자인양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민주노총이 고임금을 받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실업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을 요구해서 계속 파업을 하면 경영주는 어쩔 수 없이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경영주는 하도급의 납품단가를 후려칩니다. 협력업체에서 납품하는 물건값을 깎게 되고 그곳의 노동자들은 더욱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임금의 양극화를 말하는 것이고 소득의 양극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 전체 수준은 그 나라 국민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 나라 국민을 바로잡고 민주노총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국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 합리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장 원장은 정치권 일각의 밑도 끝도 없는 친일몰이를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7월 페이스북에서는 이런 일갈을 전했다.
“군사독재 시절 데모하지 않고 유신헌법 공부해서 판사나 검사 또는 변호사가 된 사람들이나 또는 공무원이나 직장인이 된 사람들을 모두 군사독재에 부역한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처럼,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에 입대하거나 관공서에서 일했다고 해서, 그리고 심지어 창씨 개명 등을 하며 일제에 저항하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친일부역자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 더욱이 지금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적을 강하게 비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투쟁을 별로 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군사독재시절에 민주화투쟁을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독립운동 곧 반일투쟁에 별로 나서지 않았을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과연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적을 그렇게나 강하게 문제 삼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20대 초반에 보통사람의 수준에서 독립군 토벌대에 근무한 경력을 두고 본인이 그것을 참회하는데도 그의 다른 공적을 다 무시한 채 친일부역자로 모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북한 정권 추종의 주사파 사람들이라는 것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 고위층 인사들의 대부분이 북한을 짝사랑하는 북한 정권 추종자들인데 이들이 백선엽 장군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적을 성토하는 것은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에서 북한군을 물리친 공적이 싫기 때문일 것이니,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이니 나라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겠는가? 정신 나간 짓들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22년 10월 대진범(대장동게이트진상규명범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맡았을 무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겨냥해서는 “대장동 몸통을 구속 수사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그 일로 재판에 넘겨지자 “도둑놈 잡으라고 외친 사람을 기소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꾸짖기도 했다.
고위공직자 특권 폐지 운동으로
최근까지는 고위공직자들의 특권 폐지 운동에 앞장서왔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정치개혁을 촉구했다. 다음은 지난 2023년 3월 국민운동을 벌이기에 앞서 고위공직자들의 특권 폐지에 대한 정치 개혁 방향성 관련해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특권과 특혜를 없애야 한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는 200여 가지가 된다지만, 우선 1억3000만 원(매월 약 1160만 원)의 세비에다 7명의 보좌관을 두며 보좌관의 연봉 총액이 5억 2000만 원이나 된다. 연간 특별활동비 564만 원, 간식비 600만 원, 해외시찰비 약 2000만 원, 차량 관련 지원 1740만 원, 택시비 1000만 원, 야간 특근비 770만 원, 문자 발송료 700만 원 등 국회의원 1인당 1년간 7억 700만 원이 든다. 첫째 국회의원의 월급을 근로자 평균임금(2022년 387만 원)으로 하고, 일체의 수당을 없애며,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국회사무처에 신청해 사용토록 한다. 둘째 보좌관은 2명만 둔다. 셋째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헌법개정으로 폐지하되, 그 이전에는 국회의 결의로 행사할 수 없게 한다. 넷째 선거는 완전한 공영제로 하면서 선거를 위한 후원금 모금과 선거비용 환급을 없애고,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도 없앤다. 다섯째 국민소환제를 도입해 국회의원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는 지역 유권자의 투표로 해임한다. 국회의원과 사법부, 행정부 등 고위공직자의 특권과 특혜 폐지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정치란 국민 편안히 하는 것…”
장 원장은 담낭암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도 시국을 걱정했다. 지난 7월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광란의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는 일침을 가하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과도한 양극화와 이에서 오는 위화감과 패배의식, 그리고 높은 물가와 과다한 부채, 여기에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온갖 사건 사고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더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 있는 터에 이를 극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정치는 그야말로 무지의 광란이라 불러 마땅할 팬덤정치가 횡행해,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그러면서도 “물극즉반(物極則反) 곧 사물이 극단에 치우치면 반드시 대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19년 10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정작 본인은 편히 산 적이 없다. 민주화운동으로 고초를 겪은 일 외에도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으로 평생을 고엽제 후유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코로나 팬데믹 정국 때는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노구의 몸임에도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며 곡기를 끊고 장외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전태일 열사의 투쟁기를 세상에 처음 알린 그때처럼 불굴의 의지로 반독재,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거쳐 끝까지 특권과 싸워온 고인의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3층 1호에 마련됐다. 특권폐지운동을 함께 했던 지지자들은 SNS 등을 통해 “천상에서 평안하시길 기원드리며 명복을 빈다”, “하늘나라에서 뜻하는 바를 이루길 바란다” 등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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