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군의 ‘허리’가 무너지고 있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에 따르면, 2023년 학군장교(ROTC) 지원율은 1.8:1, 3사관학교는 2.5:1, 부사관은 2.6:1로 전년 대비 급락했다. 전역자 수도 증가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5년차 장교 전역 지원자 수는 지난 해 29명에서 올해 56명으로 늘었다. 해군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전역 지원자 수 역시 지난해 각각 12명·6명에서 올해 26명·23명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군 간부의 인기가 떨어지는 건 낮은 급여수준 탓이 크다. 올해 기준 하사의 월 실수령액은 약 200만 원 정도다. 소위 초봉도 212만 원에 불과하다. 최저시급으로 주5일간 하루 8시간만 근무해도 19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 병장의 월 실수령액도 약 170만 원에 달한다. 최저시급이 상승하고, 일반 병사들의 처우가 개선되는 동안 군 간부들은 외면 받은 결과가 지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군 간부는 ‘소수(少數)’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한다. 일반 병사들의 임금 현실화도 약속한다. 최저임금은 근로자 수천만 명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병사 임금 역시 적잖은 청년 남성들과 관련이 있다. 정치인들은 이 ‘표밭’을 놓치지 않는다.
반면 군 간부는 일반 근로자는 물론, 일반 병사에 비해서도 수가 월등히 적다. 정치인들이 입맛을 다실만한 표밭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이들에 대한 처우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일반 병사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게 된 간부들은 군을 떠나고 있다. 군 간부 역시 조직을 지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인재 절벽’에 놓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 소멸 이슈도 마찬가지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산다.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방을 살리려면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표’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대통령이 되려면, 또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수도권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 당연히 지방보다는 수도권에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정작 인프라 개발이 필요한 건 지방인데, 수도권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다 보니 지방은 도외시하게 된다. 그 결과 수도권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지방은 소멸의 길을 걷는다.
2030세대가 외면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22대 총선 기준 40대 미만 유권자 수는 60대 이상 유권자 수보다도 적었다. 2030에 18~19세를 모두 합쳐 봐야 전체 유권자의 28.8%에 불과했다. 정치인들이 여러 청년 관련 이슈는 뒤로 제쳐두고 민주화세대, 산업화세대의 목소리만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배경이다.
그리고 이 모든 아이러니의 기저에는 민주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본디 민주주의란 국가에 속한 모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체제다. 문제는 주권을 지닌 모든 국민이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지방의 어떤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세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수도권의 어떤 동네에 지하철을 뚫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의견이 갈라질 때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와 타협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개개인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흐를 수밖에 없고, 이익을 얻게 되는 사람이 많은 쪽으로 결정될 공산이 커진다.
그러나 소수라고 해서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군대에는 허리 역할을 할 중간 간부가 필요하고, 국가가 유지되려면 지방에도 사람들이 살아야 한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집단이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길을 열어둬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의 선의나 거시적 판단에 따른 시혜 정도가 전부다. 표에는 도움이 안 되더라도 국가 전체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조직의 허리가 끊어지고, 지방이 소멸하고, 청년들의 미래가 저당 잡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물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는 버릴 수도 없고 버려서도 안 된다. 다만 정치인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표가 안 돼도 국가를 위해 할 일은 하는’ 정치인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 대한민국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의 빈틈을 시스템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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