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야생 본능’ 못 살리면 1% 쇼크도 사치…0% 역성장 우려” [정호성의 시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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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야생 본능’ 못 살리면 1% 쇼크도 사치…0% 역성장 우려” [정호성의 시시각각]
  • 정호성 알앤비리서치 연구소장
  • 승인 2024.12.1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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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20년 뒤, 방글라데시·필리핀보다 뒤처질 수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호성 알앤비리서치 연구소장]

“한국 경제는 2060년부터 GDP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해 2075년이면 필리핀,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국가들보다 뒤처질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Goldman Sachs)가 ‘2075년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경고음을 낸 2022년 12월 8일로부터 정확히 2년이 흘렀다. 올해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50살이 될 때쯤이면 방글라데시, 필리핀, 말레이시아보다 국력이 약해진 나라에 살게 된다는 섬뜩한 경고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20년대에 평균 2%를 유지하다가 2040년대에는 0.8%로 떨어진 뒤, 2060년대부터는 오히려 역성장하면서 마이너스(-0.1%)를 기록하기 시작, 2070년대 –0.2%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망치를 분석한 34개국 중 마이너스 성장률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의 경제의 흐름을 보면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차라리 후한 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전망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들이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밖에 없는 한국은행은 내년 1.9%, 2026년 1.8%의 경제성장률이 나오리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내년에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 성장률은 1.7%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가 2020년대는 2%대를 기록하리라는 것도 암울한 전망인데, 이 예측마저 2020년대 초반기 5년 만에 깨질 수 있다는 엄중한 전망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지는 어둠의 터널 입구에 들어섰다는 전망이 한낱 기우가 아니게 되었다. 국제정치 상황도 단기적으로는 녹녹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관세 전쟁과 미·중 패권 전쟁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우리는 고래 싸움의 새우 신세가 될 수 있다. 모두 비상계엄 사태 이전의 분석들로 정국 불안정 지수가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이니 살벌하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5년 1%포인트 하락 법칙’에 따라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률이 1998년 김대중 정부 이래 매 정권이 바뀔 때마다 1% 포인트 안팎으로 감소하였다. 김대중 정부 연평균 성장률은 5.6%였으며, 노무현 정부 4.7%, 이명박 정부 3.3%, 박근혜 정부 3%였고, 문재인 정부는 다음 정권에 부담을 떠넘기는 정부 재정 쏟아붓기에도 2.4%를 기록했다. 특히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평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2년간 겨우 유지하던 2%대가 깨지면서 1%대 저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1% 성장률은 고사하고 0%대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대의 어두운 성장률은 일본 30년 불황의 시발점인 1991년과 비슷하다. 2000년 이후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계속 내리막을 걷다가 2021년~2022년 2%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자본, 노동력, 자원 등 모든 생산 요소를 투입해 물가 상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뜻하면서 경제 기초체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이마저도 일본의 1990년부터 1996년까지의 2.8%보다 더 악성이다.

한국 경제가 역성장을 기록한 것은 역사상 세 번에 불과하다. 2차 석유파동이 벌어졌던 1980년 오일쇼크(-1.6%),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5.1%), 그리고 2020년 코로나 19사태 직후(-1.1%) 때였다. 그러나 최근 불거져 나온 비관적 경제 전망이 불길한 것은 일시적인 쇼크가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외부요인이나 특별한 모멘텀이 없는 데도 성장률 1%대가 장기화하고 바로 이어서 빠르면 15년~20년 이내에 ‘0% 제로 성장시대’로 들어서는 ‘L자형’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30년’의 일본과 유사하다는 데 위기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위기를 직감했을까, 조선일보는 냉혹한 경고를 내놨다. 11월 30일 자 특집기사를 통해 인구구조, 잠재성장률, 재정수지, 가계부채, 노동생산성 등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제ㆍ사회지표인 딥팩터(deep factor) 24개 요소를 분석한 결과, 42%인 10개 지표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불황 초기와 비슷하고 합계출산율과 노인부양비 등 6개 지표(25%)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70% 가까이가 일본의 불황 초기와 비슷하거나 일본보다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지난 12월 18일 한림원(한국공학한림원)은 “한국 반도체 산업은 역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유례없는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에서 이대로 가면 산업 전반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3대 첨단 전략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는 중국의 추격으로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월 23일 정부는 반도체 생태계 경쟁 주도권 확보를 위해 26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민들 살기 팍팍한데 또 대기업 지원이냐는 볼멘소리가 야당을 중심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는 세계가 반도체 패권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사실에 눈감은 소리이다. 같은 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 세계 각국은 지금까지 3800억 달러(551조 원)의 정부지원금을 퍼부었고, 이중 공개를 안하고 있는 중국은 1420억 달러(205.9조 원)를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했다. 앞으로 미국은 390억 달러(56.6조 원), EU 463달러(67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고 일본도 640억 달러(92.8조 원)를 2030년까지 투자한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이들 경쟁국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말 그대로 껌값에 불과한 금액이다.

저출산ㆍ고령화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노동ㆍ연금 등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골드만삭스의 마이너스 역성장 전망 연도인 2060년대보다 20년은 앞당겨진 2040년대부터, 더 심하면 2030년대 중반부터 제로 성장의 먹구름이 닥칠 수도 있다. 장기 불황의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는 사이렌이 울리고 있지만, 정치권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들처럼 극명한 편을 갈라 싸움에 여념이 없다. 나라가 망해가는 구한말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나라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위기에 대한 진지한 대책을 논의한다는 소리는, 선거 때 빼고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고 있다.

일찍이 1936년 경제학자 존 매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기업인의 야수적 충동(Animal spirits)을 유지하게 하라“라고 설파하고,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George A. Akerlof)와 2000년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 붕괴를 예견한 금융경제학의 거목 예일대학의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가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야수적 충동”이라고 말했는데, 한국의 정치권은 기업인을 순한 양으로 길들이려고 하고 있다. 미국은 185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150여 년간 쉬지 않고 GDP 2~3%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다. 최근 몇 년간 중국과 유럽이 저성장에 고전할 때도 미국 홀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힘은 끊임없이 공급되는 이공계 교육과 펄펄 나는 과학자들, 성숙한 정치 문화와 정치적 리더십,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나타나면 야수처럼 달려드는 모험의 문화를 들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모든 게 거꾸로다. 야수적 모험 정신은 둘째치고 오히려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곳으로 몰려든다. 청소년들의 꿈이 공무원이 대세인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이공계 푸대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도체 분야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상위 성적 순서대로 의대로만 몰리고 있다. 

경직된 주 52시간과 최저임금법으로 일자리 왜곡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규제를 쏟아 내고 있다. 국회는 매년 1천 건에 가까운 규제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 쟁의로 인한 손해배상 제한으로 기업활동을 옥죄는 일명 ’노란봉투법‘ 같은 악법, 경쟁적인 퍼주기 예산을 남발하는 포퓰리즘이 나라의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때만 되면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연공서열제와 노동 경직성으로 청년들 일자리 진입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경제 활력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다. 

“반도체 구조물의 특성을 무시하고 ‘클린룸’에 소방관이 들어갈 수 있는 창문을 설치하라는 규제가 있는 곳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설비도 국제안전인증을 획득했지만, 대형 화학 공장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한 규제 사례다. 경제 6단체는 최근 12월 12일 120건의 불합리한 규제를 선정하여 정부에 개선해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경제 성장과 사회진보를 가로막는 4류라고 비난받는 정치는 그러거나 말거나 허구한 날 싸움박질이다. 4차원의 비상식적인 사고에 고집불통인 대통령에, 중범죄 혐의자가 야당과 국회를 장악하고 나라를 나락으로 몰고 가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호성은…

프로야구단 히어로즈 대외협력본부장과 이준열사순국백주년사업회에서 사무총장을 거쳐 국회의원 수석보좌관, 서울시부시장 정무특보를 역임하고 서울메트로환경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알앤비리서치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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