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체포…정치적 쇼 정도껏 해야”
“의도와 목적 따져보면 진실 보일 것”
“내란 주장, 납득할 수 없는 정치공세”
“헌법재판소, ‘정치재판소’로 바꿔야”
“尹, 직무 복귀하면 외교복원부터 해야”
“개헌,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최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경민 기자]

이정현이 걷는 길은 곧 역사였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한 그는 ‘노무현의 남자’ 서갑원 후보를 꺾고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호남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건 18년 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호남에서 재선에 성공한 보수정당 정치인이 됐다. 같은 해 열린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서는 최초의 호남 출신 보수정당 대표가 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정현’이라는 이름을 아로새겼다.
하지만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영광스러웠던 건 아니다. 그는 가장 가까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지난 10여 년 간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걸어왔던 그는 또 한 번 요동치는 대한민국의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시사오늘>은 지난 11일 정부 서울청사를 찾아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尹 체포는 보여주기식…이런 게 바로 반란”

-정치권에 격랑이 일고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수없이 봐 왔던 풍랑 중 하나다. 충격이 컸지만 국민이 빨리 평정심을 되찾아 다행이다. 최근 후쿠시마 사태만 봐도 우리 국민은 반일 선동보다 전문가들의 말을 신뢰했다. 국민은 항상 현명한 선택을 해 왔다.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는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12·12 담화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다 밝히지 않았나.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 없는 1급 국가 재앙이 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분단된 국가에서 반국가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에서 투개표의 부정 의혹을 밝힐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다.
게다가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를 마비시키고 있어 국정운영이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윤 대통령이 헌법적 권한을 행사한 거라고 이해하고 있다. 물론 다른 방법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라고 본다.”
-민주당은 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데.
“내란이나 반란은 체제전복이나 정권 탈취가 의도이자 목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내란은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반란이라고 알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는 정치공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체포되지 않았나.
“‘보여주기식’ 체포였다. 전 세계적으로 뉴스가 보도되는데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헬리콥터까지 동원하는 건 정상적인 게 아니다. 체포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대통령은 그 자체로 국가 안보이자 보안이며 정보다. 국가 안보와 정보에 관련된 기관을 압수하거나 수색할 때는 절대적으로 관계자인 경호실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게 법이다. 그런데 판사가 대통령을 체포할 때 ‘예외 조항’이라며 이를 허용했다. 정작 체포 뒤 얻어낸 건 하나도 없다. 탄핵이 인용되든 안 되든, 이 과정에서 불법으로 관여된 사람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공수처가 체포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마무리를 지었어야 하는데, 진전이 없으니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그게 대통령을 갖고 할 장난인가. 정치적인 쇼를 하는 데도 정도가 있다. 이런 게 바로 반란이다.”
-윤 대통령 체포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얻으려 한 게 뭘까.
“대통령에게 망신을 줘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조기 선거를 치러 진보 정권을 들어서게 하려 한 것이다. 내란, 수괴, 체포, 구속, 사형…. 법정이 아닌 국회와 길거리에서 쓰인 판결문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기소부터 재판까지 국회가 다 하려고 한다. 헌법상의 삼권분립은 그저 장식용 머리핀인가. 의도와 목적을 따져보면 진실이 보인다. 만약 내란죄가 무죄가 되면 어떻게 감당하는지 지켜보자.”

-지금까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과정 전반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회는.
“고장난 저울을 보는 듯한 심정이다. 불신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재판소’로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헌재가 위헌 심사나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을 처리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탄핵 심판을 할 때는 이념 명찰을 떼야 한다. 명예로운 법복에 어긋남 없이 판결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의 여신 디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법복보다 당 점퍼가 훨씬 더 어울릴 것 같은 재판관도 있다.”
-보수 대통령은 항상 임기 중에 위기를 맞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까지 보수는 임기 중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세력의 공격을 예외 없이 받아왔다. 대통령은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등 국정 전반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매일 매일이 위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수 정권은 타협이나 설득, 대국민 설득에 소홀한 경향이 있다. 소통보다는 강행을 선호하다 보니 국민 저항을 초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막무가내로 퇴진을 외치니 더 어려움에 빠지는 거라고 본다.”
-야당은 21대 국회 내내 다수당으로서 폭주를 이어 갔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 줬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손자병법>에서 ‘이기게 하는 방법은 없지만, 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있다’고 했다. 그 방법은 ‘실수하지 않는 것’이다. 선거는 심판인데, 심판관인 국민에게 정부여당이 실수를 많이 했다. 국민이 그런 정부여당의 오만과 교만, 실수를 놓칠 리 없다.”
“정부여당 선전하는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국회 탄핵”

-두 달여 동안 보수 진영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잇단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와 전한길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애국 시민들이 백척간두의 국가 운명에 깊은 우려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나는 이걸 ‘대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6·25 이후 오랜만에 애국적인 무명용사들이 의병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고 본다. 국민이 진보까지는 이해하고 지켜봐 왔지만, 국가 마비를 기도하는 세력의 무도함에 대해서는 그냥 지켜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앞으로도 전한길 같은 무명의 강호 영웅들이 계속해서 나올 거라고 본다.”
-이번 사태 이후 윤 대통령과 국민의 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지지율이 아니라 실용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걱정 지수라고 본다. 약 2년 사이에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직무 정지시키고, 장관들, 검사장과 검사들, 감사원장과 방통위원장을 포함해 총 29번의 탄핵을 진행한 정치권을 국가 마비 세력으로 간주한 것이다. 지금의 지지율은 국민에 의한 국회 탄핵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여론조사는 경고의 의미지만, 선거 때 본 때를 보여 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젊은 층의 보수 지지도가 높은 것도 특기할 만한 현상이다.
“젊은 층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그저 불공정하고 오만하며 야비한 정치인들, 그리고 미래 세대들의 미래를 망치는 정치인들을 싫어한다. 보수가 잘해서가 아니라, 좌파 정치인들이 29번의 탄핵을 추진하며 국정을 마비시킨 점이 젊은 층의 반감을 산 것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자신들이 옳고 잘해서 젊은층 지지도가 높게 나왔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도 상승이 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에 영향을 미칠까.
“법원 판결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한 일부 법관을 제외하고는, 법관의 앙식과 양심을 믿고 싶다. 하지만 헌재 판결은 다를 수 있다. 이른바 ‘정치재판소’라고 불리는 헌재 탄핵 판결은 여론이 법리와 대등한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야당이 저토록 계산적인 재판관 추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복을 더럽히는 이념 판결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많은 사태들을 지켜봤었을 텐데, 탄핵 심판 결과를 포함한 이슈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한쪽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본다. 길거리나 마이크를 잡았다고 권한 밖의 공소장을 쓰거나 판결문을 발표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제일 먼저 해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나.
“제일 먼저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준비부터 제대로 하고, 외교적인 부분들을 신속히 복원해야 한다. 외교의 복원은 곧 안보의 복원이다. 외교와 안보를 복원하는 동시에, 새로운 진용을 꾸려야 한다. 정부 부처는 물론 대통령실까지 제대로 구성해, 지금까지 우리가 하지 못했던 걸 해야 한다.”
-개헌에 대한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개인적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총리나 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되, 국정 권한을 대폭 분산시켰으면 한다. 또한 분권형 국가에 가깝게 지방자치단체에 재정권·입법권·조직권·계획권을 대폭 이양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면 좋겠다.”
-단순히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을 넘어 4차 산업혁명과 밀려오는 국내외 위기들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체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나.
“내각제나 이원 집정부제에 대한 의견도 있지만, 대통령제가 국민에게 익숙해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최적이라고 본다. 다만 제왕적 대통령, 승자독식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부통령 혹은 총리에게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양원제 국회와 지방자치를 위한 분권형 개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과 사법부,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첫째는 개헌이 추진돼야 한다. 1000만 명 서명 개헌 청원 운동이 전개돼야 하고, 분권형 개헌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둘째는 분야별 대각성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사법부와 법률 전문가들은 사법부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를 막기 위해 그 실태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셋째는 삼권 분립의 허구와 그 실태가 국민 조사단에 의해 하나하나 파헤쳐져 바로 잡혀야 한다. 전반적인 정상화, 현대화, 선진화를 위한 시민혁명이 필요하다.”
-큰 폭의 변화를 위해서는 결국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할 텐데, 여당인 국민의힘에게 조언을 한다면.
“국민의힘은 변화되기 힘들다. 호남을 포기하더니 점차 수도권을 포기하고, 땅 짚고 헤엄치는 곳만 관리하려 든다. 호남, 청년, 노동자를 모두 포기하고 있다. 외부에 당의 진단을 맡겨 ‘혹독한 처방전’을 받아야 약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공천은 미스트롯 방식의 공개경쟁을 통해 후보를 선발해야 한다. 특히 대선 때는 호남인사와 런닝메이트가 돼야 하고, 40세 미만 청년들에게 정무직과 예산, 정책의 1/3 이상을 과감하게 배정해야 한다. 지금 상황은 마치 젖병 물고 유모차 타려는 미운 네 살 같다.”
-민주당에게도 조언할 말이 있나.
“민주당에 대해선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민주당이 급진과격 세력과 결별하는 순간 국민의힘에게는 최대의 위기가 닥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서민이 잘 살아 중산층에 편입되거나 호남이 발전하게 되면, 민주당은 자신들의 영구 표밭이 붕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재집권은 요원할 것이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지 40년이 넘었다. 본인의 정치 철학이 궁금하다.
“내 정치 철학은 ‘머슴’이다. 모든 선출직은 머슴이 돼야 한다. 머슴과 주인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머슴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즉, 내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보스의 역할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모두 본인의 철학대로 실현하고 싶은 것을 해왔다. 그러나 그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항상 국민이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 그리고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모든 것이 국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전부 본인 위주로 생각해왔고,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끝으로 정치인 이정현의 계획이 뭔지 궁금하다.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 의외로 근본적인 부분에서 너무나 허술하고 취약한 점들이 도처에 많이 있다. 시민혁명에 불을 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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