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오해 해소하고 ‘막연한 두려움’ 걷어내야
치료받을 권리와 적극적 이해 형성을 우선 과제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제은 기자]

우리 사회,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부터 지독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부터,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한 끝없는 경쟁을 지속하다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을 호소한다. 빈부격차와 취업 어려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절망감을 느끼고, 남들보다 잘나지 못했다는 그릇된 생각에 아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우울감을 해소하려면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우울증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한 게 현실이다. '약해 빠졌다, 정신병이다. 강력 범죄로 이어진다'는 식의 무차별·반지성적 비난과 색안경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좀먹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대한민국, 우울증에 차별적 시선을 보내는 우리 사회는 과연 건강해질 수 있을까. 우울한 세상의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을 뜻하는 프랑스어)을 위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범행 동기는 우울증?…위험 요소로만 보는 삐뚤어진 현실
최근 우울증을 이유로 내세우는 범죄가 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졌다. 범행 동기와 관련해 개인의 폭력성보다는 우울증에만 초점을 맞춰, 위험한 병이란 식의 잘못된 오해가 커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낙인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월 발생한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교사인 피의자가 자신의 우울증을 범행 이유로 자백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을 범죄와 연관 짓기 시작한 것이다. 피의자의 폭력성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사건의 스포트라이트는 우울증으로 옮겨졌다. 우울증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임에도, 잠재적 위험 요소로 간주됐다.
하지만, 우울증은 범죄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게 학계와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울증에 따른 심신미약은 범행 감경 사유로도 인정되지 않는 추세다. 범행의 중대함을 우선 고려하는 데다, 법원에서 정신질환을 범죄 원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발생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그랬다. 피의자 김성수는 범행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30년 형을 선고했다.
전문가들도 정신질환이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주장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울증과 조현병 모두 약물치료로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며 “범죄의 원인으로 정신질환이 이유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소수 경우를 제외하곤 정신질환이 범죄를 촉발하지 않는단 설명이다.
뒤처진 인식, 낙인찍기가 ‘아픈 나라’ 만들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 요구 목소리는 분명하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보편화되면서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에 따르면,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90.5%였다. 지난 1년간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비율은 73.6%로, 상대적으로 많은 시민들이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같은 조사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험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64.6%였다.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동시에 배척하거나 사회적 위험 요소로 간주하는 잣대가 공존하는 상태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나아가 치료에 방해가 될 우려도 있다. 치료 기피가 지속될 경우 사회적, 국가적 부담 역시 가중된다.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결국 낙인을 지워야 한다는 게 학계 의견이다. 정확한 정보를 통해 편견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어서다. 이수정 교수는 “정보가 부족한 정신질환이 부정적 평가와 연관될 때 편견이 발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도 지난 2월 11일 소셜미디어(페이스북)에서 “정신 건강에 대해서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공개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여느 질환과 같이 치료받을 기회를 보장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병력을 관리하고 치료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중요해진 시점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우울증을 위험한 병으로 낙인찍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편견을 밀어내기 위한 사회 전반의 고민이 우선시된다. 누구나 심리적 회복을 도모할 환경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아픈 것이지, 죄가 아니다.”

좌우명 : 오늘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