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귀동 “민주주의 원칙 지킨 YS가 있었기에 민주주의 만들어진 것”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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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 “민주주의 원칙 지킨 YS가 있었기에 민주주의 만들어진 것” [현장에서]
  • 유경민 기자
  • 승인 2025.03.14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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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 민 정치컨설팅 전략실장
“YS, 통합의 리더십 통해 성공적인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불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경민 기자]

조귀동 민 정치컨설팅 전략실장이 14일 김영삼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시사오늘
조귀동 민 정치컨설팅 전략실장이 14일 김영삼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시사오늘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 정치를 감행한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박정희 정권을 향해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놀랍게도 이 말이 예언처럼 실현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유신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도화선 역할을 했던 ‘YH 사건’이다. 

조귀동 민 정치컨설팅 전략실장은 14일 동작구 김영삼 도서관에서 진행된 김영삼 대통령 기념재단 주최 특강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을 단순히 그의 굳건한 의지로만 평가할 수 없다”며 “사람들을 규합을 하고 하나의 대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YS는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성공적인 민주화의 지도자로 불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1966년 설립된 가발 회사 YH무역은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 덕분에 4년 만에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었다. YH무역의 노동자들 역시 열악한 근로 환경에 처해 있었고, 1979년 회사는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지만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나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YH무역 노동자 189명은 1979년 8월9일, 신민당 당사에서 생존권 보장과 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이 사건이 ‘YH 사건’이다. 

조 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갈 곳이 없었던 노동자들이 의지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신민당사다. 당시 신민당은 유신 정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다. YS는 189명의 YH 여성 노동자들에게 당사를 농성 장소로 흔쾌히 내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권은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자체를 사회불안 요소로 봤고, 그들이 야당인 신민당에서 농성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용인하지 못할 행위로 봤다”며 “당시 신민당에서는 노동청이나 복지부같은 부서 담당자들과 회동을 주선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와대에서는 곧바로 중앙정보부와 경찰 등이 참여한 대책 회의를 열고 강경 진압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일 뒤인 11일, ‘101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진압을 시작했다. 사법 경찰들이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며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조 활동을 주도하던 사람 중 하나인 김경숙 씨가 추락해서 숨졌다”고 말했다. 

조 실장은 민주주의 원칙을 굳건히 지킨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시사오늘
조 실장은 민주주의 원칙을 굳건히 지킨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시사오늘

조 실장은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니었다. 권력을 쥔 독재 정권이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상황과, 그들을 보호하려는 신민당과 민주화 운동 세력의 대립이 명확히 드러났다”며 “신민당은 YH 사건 진압에 강력히 반발하며 투쟁을 선언했고, 이에 유신 정권은 신민당에 대한 탄압 강도를 높였다”고 전했다.

이에 “9월 10일, 김영삼 총재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하야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로 인해 김영삼 총재는 10월 4일 국회의원에서 제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10월 16일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다”며 “이 운동은 마산, 창원까지 번졌다. 이 부마항쟁은 단순하게 민주주의를 원하는 운동이 아닌, 유신 독재 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였다”고 했다.

아울러 “부마항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김재규 정보부장의 반란은 권력에서 멀어진 것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결국 따져보면 유신 정권 내부의 온건론과 강경론의 갈등”이라고 평가했다. 

끝으로 조 실장은 “79년 5월 30일 신민당 경선에서 YS가 총재가 됐기 때문에 YH 노동자들이 신민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민주주의 원칙을 굳건히 지킨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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