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교내 커뮤니티…일반인들도 동참
정계 · 연예가에도 잇따른 격려의 목소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인턴기자)
이화학당의 학우들이 일어섰다. 2002년 일어난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의 피해자인 故 하지혜 양은 이화여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법학도였다. 최근 이 사건에 대한 의문점이 재조명되고 범인이 법의 손길을 피해 호의호식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선배의 억울한 죽음 앞에 후배들이 나선 것이다. 진실 규명을 목표로 이제부터가 시작인 이들의 발걸음을 쫓아가봤다.
사회에서 돌아온 반응은 뜨거웠다. 신문에 광고를 내기 위해 지난달 26일부터 2일까지 일주일간 이루어진 1차 모금에 2800만원이 모였다. 버스와 지하철 광고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 중인 2차 모금은 마감일을 20여일 남기고 이미 목표액인 1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각계 인사들의 응원 메시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밤 SBS의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이 방영됐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2002년 ‘공기총 청부 살인 사건’의 주범인 윤 모씨가 살인교사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음에도 형집행정지 허가를 받아 병원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씨는 수감 기간 동안 유방암 등을 이유로 40여 차례 입 · 퇴원을 반복하며 VIP병동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방송이 전파를 타자 여론은 들끓었다. 사회 곳곳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속에서 가장 분노하고 누구보다 빨리 행동으로 옮긴 것은 고(故) 하지혜 양의 동문들인 이화여대 학생들이었다.
이대의 인터넷 커뮤니티 ‘이화이언’에는 하씨를 추모하고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광고를 내자는 의견이 올라왔다. 자발적으로 모인 재학생과 졸업생 6~7명은 이 의견을 실행으로 옮겼다. 이들은 모금계좌를 개설하고 추모광고 시안 등을 직접 작성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일주일간 이뤄진 1차 모금은 성공적이었다. 1500여명이 2800만원을 보내왔다. 기부자들은 입금자명에 ‘첫 월급 선배님께’ ‘고시생의 전 재산’ ‘백수라 미안해요’등의 메시지를 띄웠다. ‘아버님 힘내세요’라며 유족을 위로하기도 하고, ‘기억 하겠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하는 문구가 눈에 띄기도 했다. 1만원에서 50만원까지, 다양한 액수의 금액이 기부자들의 마음과 함께 전해졌다.
모금의 결과는 다음날 일간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의 3일자 1면 하단에는 ‘정의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 일동’의 이름으로 광고가 실렸다.
이들은 광고를 통해 "2002년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던 스물세 살의 법학도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2013년 가해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병원 특실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며 "허위 진단서와 형집행정지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 한다”고 호소했다.
광고는 이어 “대한민국에서 더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용납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게 심판받는 그날까지 이화가 지켜보겠다"라고 경고했다.
한 학생은 “TV 방송을 보고 고(故) 하지혜 선배님 사건을 알게 됐다“며 ”돈이 곧 권력이 돼 죄가 있어도 처벌받지 않는 이 나라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대생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방식을 통해 일반인까지 참가하는 2차 모금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의 동의하에 펀딩 사이트 <유캔펀딩>에서 진행되는 2차 모금의 목표는 7월 중 지하철 또는 버스에 광고를 싣는 것이다.
목표인 천만원을 초과할 경우 지하철과 버스, 포털사이트 상단 배너까지 모금액에 따라 광고 영역도 넓혀갈 계획이다. 또 약 7천만원에서 1억원 상당의 돈이 모일 경우 ‘형 집행 정지자 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될 예정이다.
국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달 말까지 천만원 모금이 목표였는데, 프로젝트 오픈 하루만에 50%를 달성했으며 12일 현재 1500여만원이 모였다.<유캔펀딩>에도 “오늘 점심값을 후원 했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꼭 기억 하겠습니다” 등 다양한 응원과 위로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운영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2차 프로젝트에도 이렇게 까지 많은 관심을 주실 줄 몰랐다”며 “사회적으로 더 큰 반향을 일으켜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프로젝트 설립 취지를 전했다.
사회 각계각층의 지원사격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민주당 김관영 의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논평을 내고, 12일 “이 사건에서 법무부의 행정상 허점과 의사들의 관행적인 허위진단서 발급이 문제로 드러났다”며 “투명한 조사와 자정노력이 있어야 사회의 신뢰도 올라갈 것이다. 검찰과 의료계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계 인사들 뿐 아니라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수, 개그우먼 곽현화 등 여러 유명인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故 하지혜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오프라인 광고 제작’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참여를 독려했다.
법의 심판은 허술함을 드러냈고, 정의는 구현되지 못했다. 일어난 지 10년도 지난 사건이 또다시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동문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젊은 이대생들의 모습과 이를 지지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이 엿보인다. 모쪼록 그들의 바람대로 진상이 규명되고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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